일러스트 이든

짧지만 재미있고, 가볍지만 강력한 
시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일상이 되다

넘쳐나는 숏폼에 짧아져 가는 생각 
적절한 자정 작용이 필요한 순간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만 넘기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몇 분만 투자하면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뚝딱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스낵컬처와 숏폼은 바쁜 일상 속 우리가 원하는 콘텐츠를 순식간에 즐길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 잠깐의 달콤한 여유 속에서 놓쳐버린 것은 없었을까.

  그 많은 짧음에서 무엇을 얻었나 
  우리는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작품과 프로그램을 짧게 요약한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에는 총 9화 분량 드라마를 약 30분 만에, 영화 한 편을 약 10분 내외로 즐길 수 있는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짧게 편집한 예능 하이라이트 영상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틱톡의 짧은 챌린지 영상들은 이용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나 짧아져 가는 콘텐츠 속에서 대중은 문화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까.

  전성민 교수(가천대 경영학부)는 정보의 홍수 속 숏폼이 개인에게 미칠 영향력을 언급했다. “정보 과잉 시대에서 개인은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판단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럴수록 자기 주관성이 점점 중요해지는데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미 소화한 것을 공부하듯, 숏폼 형태로만 문화를 소비한다면 자신만의 생각을 갖기 어려워지죠.”

  이성민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는 개인의 사유와 상호 간의 이해가 부족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숏폼처럼 빠른 속도의 내용만 보면 스스로 사색하는 시간이 줄어 사고방식이 얕아지게 될 겁니다. 또한 문화를 경험하는 데 있어 나에겐 없는 타인의 이야기를 접하고 자신을 확장시키는 과정이 중요한데요. 스낵컬처나 숏폼을 통해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다면 상호 간 이해가 부족해지죠.”

  문화·영상 콘텐츠 자체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전성민 교수는 스낵컬처 시대 속 사라지는 문화 콘텐츠에 관해 이야기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 방식으로 유통되던 콘텐츠는 대중의 선택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과거의 비디오방, 만화방 같은 곳이 사라지고 있고 책 유통 관련 업체도 영향을 받았죠. 음반사나 레코드 가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민 교수는 영상 콘텐츠 다양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짧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내용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대중이 주로 숏폼을 소비하면 콘텐츠 창작자도 대부분 짧은 시간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를 공급하려 합니다. 더욱 깊이 있는 사색이 필요한 콘텐츠들은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거예요.”

  편한 향유 속 불편한 영상들 
  짧은 영상 속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콘텐츠도 문제다. 로그인 없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틱톡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오징어 게임>을 검색하면 아무 인증 없이 드라마 장면을 볼 수 있다. 또한 ‘여자’라는 단어를 입력만 해도 여성이 성적 불쾌감을 느낄 만한 연관 검색어가 함께 나열된다. 이처럼 자극적이고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콘텐츠를 미성년자가 손쉽게 접할 수 있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임종섭 교수(서강대 신문방송학전공)는 콘텐츠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소비자를 문제에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본 소비자는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존 사회 지배 질서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죠.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강자가 약자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는 성적 만족을 목적으로 한 콘텐츠를 게시하면 영상 삭제 또는 채널 폐쇄 등을 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틱톡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따라 폭력성, 선정성 등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게시하거나 스트리밍, 공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처럼 기업 자체의 사적 규제는 있으나 국가 차원의 규제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성민 교수는 플랫폼과 문화 자체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공적 규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금을 통한 정부의 규제가 나을지, 시민사회에서 자율적인 피드백을 통해 규제하는 게 좋을지 현재로서는 결정하기 어려워요. 아직 숏폼이 대중에 퍼지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아 관련 연구와 데이터가 미흡하고 적정 기준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짧더라도, 문화는 깊을수록 좋으니까 
  일상에 스며든 스낵컬처와 숏폼. 보다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낵컬처를 이용하고 즐기는 이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성민 교수는 창작자와 소비자의 자정 작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크리에이터는 주목받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한, 더 나은 영향력을 주는 콘텐츠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소비자들도 콘텐츠에 미치는 정도가 커지는 만큼 선한 영향을 주는 크리에이터가 성장하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야죠.”

  개인의 노력에 더해 규제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박웅기 교수(숭실대 언론홍보학과)는 스낵컬처와 숏폼에 적용할 수 있는 콘텐츠별 규제에 관해 논했다. “나라와 문화, 시대마다 정신이 다르므로 상식에 맞는 관리와 통제, 규제가 필요해요. 성인물이나 부적절한 콘텐츠는 사업자와 법적 규제에 앞서 어른들이 적절한 규제 범위를 제시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스낵컬처와 숏폼을 보는 내내 무엇을 얻었는지, 어긋난 방향의 콘텐츠를 무심히 지나치진 않았는지 떠올려보자.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인간의 목적과 이상을 실현할 때 문화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문화의 유의미한 존재를 위해, 좋은 스낵컬처와 숏폼의 모습은 무엇일지 휴대폰을 쥔 이 순간에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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