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든
일러스트 이든

짧지만 재미있고, 가볍지만 강력한
시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일상이 되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 A씨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켜 네이버웹툰에 접속한다.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며 그동안 밀린 웹툰을 읽는다. 커피 한 잔을 기다리는 동안 좋아하는 유튜버의 쇼츠를 보며 웃음 짓는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온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확인한다. 정신없이 보다 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다. A씨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 ‘스낵컬처’의 모습이다.

  짧게 더 짧게, 숏확행 시대
  스낵컬처(Snack Culture)란 과자를 먹듯 15분 내의 짧은 시간에 언제 어디서나 간단한 정보나 오락물을 즐기는 문화 현상을 말한다. 2007년 미국의 한 전문 잡지는 ‘스낵을 먹듯 쉽고 빠르게 소비되는 작은 포맷이 중요한 문화의 경향이 될 것’이라며 스낵컬처를 처음 소개했다.

  서용구 교수(숙명여대 경영학부)는 콘텐츠의 범람 속 소비자의 시간 부족 현상으로 스낵컬처가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넘쳐나는데 그것을 다 확인할 시간은 부족하죠. 이전에 보던 300쪽 넘는 소설이 부담으로 느껴지면서, 15분 내로 즐길 수 있는 웹툰이나 웹소설 같은 콘텐츠의 수요가 늘었어요.”

  설규주 교수(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는 스낵컬처의 성장에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환경 면에서 모바일 기기가 발달했고 콘텐츠 이용자 중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의 비중이 증가했어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스낵컬처를 활용한 홍보 전략을 짜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죠.” 디지털 미디어 분석기업인 메조미디어가 발표한 ‘2021 타겟 미디어 이용 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동영상 시청 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비율이 가장 큰 연령대는 10대였으며 평균 6~10분 사이의 동영상 콘텐츠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내가 스낵컬처 요리사
  단시간에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스낵컬처의 확산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낵컬처의 한 장르인 웹드라마는 편당 10분을 조금 넘는 분량임에도 투자 대비 효율이 높아 네이버TV나 유튜브에서 방영되며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방송사도 길이가 짧은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020년 tvN에서 방영한 나영석 PD의 ‘금요일 금요일 밤에’는 회당 상영 시간이 약 10분 내외로 구성돼 새로운 도전이라는 평을 받았다.

  설규주 교수는 스낵컬처의 장점으로 콘텐츠 제작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을 언급했다. “스낵컬처 이용자는 소비자인 동시에 제공자 역할도 하게 됐어요. 길이가 짧고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 기술만 있으면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작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어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효율적입니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스낵컬처 주자는 ‘숏폼(Short-form)’이다. 숏폼이란 ‘짧은(short)’과 ‘형식(form)’의 합성어로 틱톡과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가 3대 플랫폼에 해당한다. 휴대폰 하나로 원하는 콘셉트나 내용에 맞춰 쉽고 빠르게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미 틱톡은 전 세계에서 매달 접속하는 이용자만 약 10억명을 넘겼으며 넷플릭스, 네이버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들도 연이어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서용구 교수는 숏폼이 지닌 확장성에 주목했다. “동영상 콘텐츠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언어를 알 필요도 없어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얻을 수 있죠. 특히 틱톡, 릴스 같은 동영상 콘텐츠는 하나의 ‘밈(Meme)’이 되고 있어요. 세계에서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숏폼은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낵컬처가 꿈꾸는 미래
  가수 싸이가 발매한 노래 ‘댓 댓(That That)’의 포인트 안무를 활용한 ‘댓 댓’ 챌린지는 15일 틱톡에서 조회수 약 6억뷰를 기록했다.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 저절로 인기를 끈다는 점에서 각 기획사는 소속 가수의 숏폼을 이용한 댄스 챌린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홍보 전략으로 숏폼을 활용하는 추세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자마다 숏폼을 통한 온라인 유세가 치열하기도 했다.

  오승환 교수(국민대 영상디자인학과)는 숏폼 콘텐츠가 더욱 성장할 거라 예측했다. “어떤 플랫폼이든 ‘킬러 콘텐츠(매우 유명한 콘텐츠)’의 유무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수많은 밈이 등장하는 상황 속 숏폼 콘텐츠의 전망은 지금껏 접하지 못한 독창성,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메시지, 개성이 강한 브랜드형 지식 공유 등에 달려 있어요.”

  숏폼을 포함한 전반적인 스낵컬처의 미래는 어떨까. 류웅재 교수(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스낵컬처의 부정적인 측면에 관한 논의도 수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낵컬처를 통해 단순하고 수동적인 콘텐츠 소비를 넘어 창의적 생산과 매개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확산은 긴 글과 영상에 피로감을 느끼고 핵심적인 정보나 재미만 추구한다는 부정적 측면도 존재하죠. 긴 호흡의 콘텐츠와 문자 매체에 대한 경험과 활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포괄하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해요.”

  스낵컬처가 중요한 세상이 될 거라는 상상이 이제는 당연한 현실이 됐다. 손바닥 안에서 만나는 콘텐츠는 쉽고 가벼워 보여도 우리 삶에 큰 활기를 불어넣는다. 다음에는 어떤 맛의 스낵컬처가 출시될지 궁금해지는 세상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