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 흔히 창문이나 액자의 틀, 정지된 영상 속 필름의 낱장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기도 하죠. 우리는 종종 일정한 프레임 속에 갇혀 틀에 박힌 사고를 합니다. 이번 학기 문화부는 프레임을 벗어나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 이를 깨뜨리고자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이번 주 프레임은 ‘역사 드라마’입니다. 역사 드라마는 반드시 사실만을 담아야 할까요? 무한한 각색을 어디까지나 인정해야 할까요? 팩션(faction)을 알아보며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사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프레임, 우리 함께 깨뜨리러 가볼까요?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일러스트 이든
일러스트 이든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팩션 
 
지나친 역사 왜곡은 피하고 
사실과 허구 사이의 균형이 필요 

조선의 왕비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현대인이라면 어떨까. 왕과 똑같이 생긴 노비가 왕의 대행을 하거나, 남성으로 알려진 화공이 사실은 남장 여자라는 설정까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정말 실존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팩션(faction)’, 그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Fact + Fiction = ? 
  팩션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신조어로 역사와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사실을 만들고 해석하는 서사다. 팩션이라는 용어는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1960년대 소설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카포티 씀)를 비평할 때 처음 등장했다. 작가는 밝혀낸 사건을 순서대로 기록하는 대신 범인과의 대화와 심리상태에 상상력을 더해 글을 썼고 이는 세계 최초의 팩션 소설로 일컬어졌다. 

  용어 자체는 20세기부터 언급됐지만 그 전에 팩션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경량 교수(가톨릭대 국사학과)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팩션이 실재했다고 말했다. “넓은 의미에서 팩션은 인류가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래 계속 존재했어요. 작가가 역사를 소재로 사실과 허구를 섞어 이야기를 창조하는 행위는 『삼국지연의』, 『박씨전』 등 전근대 문학에도 많이 있었죠.”

  역사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팩션은 대중의 요구 속에서 등장했다. 『역사들이 속삭인다』(김기봉 씀)에 따르면 기존 역사 연구의 중심에 인간의 이야기가 없어지자 대중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팩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역사적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해나갔다.

  오혜진 교수(남서울대 교양대학)는 한국에서 팩션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 과정을 설명했다. “대략 1990년대부터 한국에 외국 팩션 작품이 들어오는 분위기였어요. 이때 팩션은 기존 역사관을 흔드는 계기가 됐는데요. 역사가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상상력도 반영할 수 있다고 여겨졌죠. 그러다 <주몽>이나 <선덕여왕>과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팩션이 대중에게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작품으로 만난 그때 그 이야기 
  <대장금>, <뿌리깊은 나무>, <명량> 등 팩션은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때 이야기가 많고 극적인 인물이나 사건일수록 팩션의 대상이 된다. 기경량 교수는 조선 시대가 팩션을 만들기에 가장 좋다고 언급했다. “고대는 너무 먼 과거인데다 자료가 많지 않고 고려는 다소 낯설어요. 이야기와 배경에 세부적인 요소를 부여할 게 많은 조선 시대와 근현대가 팩션을 제작하기에 좋죠. 다만 근현대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시기이다 보니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조선 시대가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오혜진 교수는 조선 시대 중 정조 시대를 꼽았다. “정조는 세손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어렵게 오른 왕위, 노론과의 힘겨운 정쟁 등 극적인 삶을 살았어요. 강력한 리더십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던 정조 자체도 매력적인 인물이죠. 더구나 문화적으로도 풍성했고 정약용 등의 실학자나 김홍도, 신윤복 등 문화예술인처럼 많은 인재가 있었던 점도 한몫합니다. 소설 『바람의 화원』(이정명 씀), 드라마 <이산>, <옷소매 붉은 끝동> 그리고 영화 <역린>이 해당하겠죠.”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팩션 소설 『바람의 화원』은 18세기 정조 때 조선의 화가였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애를 보여준 미스터리 탐정물이다. 극 중 등장인물인 신윤복은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공식적 사료가 제한적이었기에 당대의 삶을 기록한 시각 이미지로만 그를 재현할 수 있었다. 이때 작가는 신윤복이 남장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더했고, 이는 초판 발행 후 평단의 호평과 독자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작가의 손에서 피어나는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변화를 잘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다윈의 『종의 기원』 속 문장이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김기봉 씀)에서는 디지털 신세대로 들어서면서 원본과 복제보다 창조가 중요해졌다고 언급한다. 즉, 단순히 지식만을 전하는 역사학보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극이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기경량 교수는 대중이 느끼는 팩션의 몰입감에 관해 논했다. “실화는 작가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는 느낌을 들게 해 독자에게 상당한 몰입감과 즐거움을 줘요. 팩션도 허구 이야기보다 더 몰입감 있게 다가오죠. 팩션 속 강한 시대적 세부 요소는 우리 삶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최희수 교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는 역사물을 통해 대중이 역사에 주목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2000년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해 <주몽>, <대조영> 등 고구려, 발해 소재 드라마가 나왔어요. 이들의 인기로 대중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렇듯 역사 콘텐츠는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켜 역사 자체에 관심을 두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허구라는 모순적인 두 요소가 항상 사이좋을 수는 없다. 드라마 <기황후>는 역사 왜곡으로 비판받았던 작품 중 하나다. 고려사에서 기황후는 그의 형제들이 고려의 정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공민왕의 기씨 세력 제거 이후 고려에 대한 공격을 가한 점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진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원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와의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보여지며 고려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인물로 그려진다.

  오혜진 교수는 팩션 장르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교육·문화적 측면에서 이야기했다. “상상력이 더해진 내용 때문에 독자가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혼동할 수 있어요.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은 역사 교육 측면에서 좋지 않죠. 또한 역사 왜곡이나 잘못된 역사관을 보여줄 수 있고 우리 입맛에 맞춘 역사로 해석될 수 있어요. 민족주의적 측면을 강조해 편협하거나 배타적인 역사의식을 불러오는 문제도 있습니다.”

  김현진 연세대 연구원은 팩션에 관한 독자의 무비판적 수용과 역사서술 왜곡의 심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독자가 팩션 장르를 참여의식 없이 수동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역사는 더욱더 왜곡될 거예요. 또한 허구를 만드는 작가와 독자의 상상력이 잘못된 근거로 뒷받침될 때도 문제가 됩니다. 기존의 역사 서술보다 더욱 주관적이고 치우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자칫 상상력이 역사의 진실을 덮어버릴 때, 그 작품은 대중의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사실만을 기반으로 역사 드라마를 창작해야 할까? 오혜진 교수는 역사 드라마에 나타나는 사실과 허구적인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주의 시각에서 정통 사극도 분명히 존재해야 합니다. 반면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실존 인물에 상상력을 더해 우리는 그 시대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죠. 또한 ‘덕임’이라는 여성을 통해 주체성을 드러내거나 주변 인물의 도움과 희생으로 왕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지금 시대를 돌아보게 해요.”

  최희수 교수는 대중에게 역사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팩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의 ‘사실 서사’만으로 역사학 연구가 공유되고 확산된다면 ‘허구 서사’인 팩션 사극은 필요 없겠죠. 그러나 전문가의 글과 말은 보통 이해하기 어려워 역사 내용을 충분히 대중에게 전달하기 어려워요. 이를 보완하고 역사를 향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환기한다는 점에서 팩션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중의 역사 인식을 잘못 인도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죠.”

  상상력을 제한하기 전에 역사물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바꿀 필요도 있다. 기경량 교수는 역사를 향한 시청자의 관심과 제작자의 존중, 애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허구와 사실의 허용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도,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와 맛이 있죠. 다만 시청자가 역사 시기, 인물, 사건 등에 관심을 갖고 실제 역사를 찾아보는 분위기는 필요해요. 역사 영상물을 만드는 사람은 역사에 존중과 애정을 갖고 제작하는 게 좋겠죠.”

  상상은 자유다. 상상의 날개를 단 역사는 우리의 마음에 깊이 와닿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과 왜곡은 한 끗 차이다. 자칫 역사가 삐끗해 왜곡의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남겨진 이들이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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