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역사를 기록하는 하나의 수단

상상과 사실의 경계를 명확히 한 후
창작의 자유를 이야기해야

‘본 드라마의 인물, 사건, 구체적인 시기 등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역사 드라마를 시청하기 전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문구다.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등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적절히 섞어 대중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그러나 재미보다 불편함이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왜 드라마를 보며 불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나.

태종이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는 조선구마사의 장면. 사진출처 논문 『조선구마사 역사 표현의 쟁점과 함의』
태종이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는 <조선구마사>의 장면.
사진출처 논문 『<조선구마사> 역사 표현의 쟁점과 함의』(주창윤, 2021)
중국 전통음식인 월병, 피단, 중국 술의 모습. 조선구마사의 중국풍 연출은 역사 왜곡 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사진출처 논문 『조선구마사 역사 표현의 쟁점과 함의』(주창윤, 2021)
중국 전통음식인 월병, 피단, 중국 술의 모습. <조선구마사>의 중국풍 연출은 역사 왜곡 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사진출처 논문 『<조선구마사> 역사 표현의 쟁점과 함의』

  우리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지난해 3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2회 만에 종영한 일이 있었다. 문제는 첫 화부터 발생했다. 조선 초기가 배경인 작품에서 태종은 이성계의 환시를 보며 죄 없는 백성들을 살해한 왕으로 등장한다. 태종이 무고한 백성을 죽였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명시돼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극 중 충녕대군은 기생집에서 서양인 신부에게 월병과 피단(삭힌 오리알) 같은 중국 전통음식을 대접한다. ‘보위를 물려받을 것도 아닌데 나도 주색잡기 좀 배워볼까 싶다’는 농담도 던진다. 우리가 알던 성군 충녕대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낯섦은 순식간에 불편함으로 번졌다.

  윤석진 교수(충남대 국어국문학과)는 <조선구마사>의 설정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구마 사제’라는 소재는 마치 조선 건국에 주술적인 부분이 개입했다는 오해의 여지를 드러내죠.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 한국의 역사를 소수민족 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설정은 국민 정서를 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언급했다. “<조선구마사>는 일종의 역사적 위인으로 평가되는 태종과 충녕대군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요. 다만 그 시각에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한데 그게 전혀 없었죠.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드라마에서 다루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구마사>를 향한 대중의 외면은 유의미하다. 김강원 강사(국어국문학과)는 이번 사태를 통해 창작의 가치를 지키는 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작가나 연출가는 시청자들이 거부하는 작품을 만들 이유가 없어요. 이는 외적인 금지보다 더 효과적이면서도 드라마를 제작하는 주체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설강화 속 남주인공이 안기부 직원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설강화> 속 남주인공이 안기부 직원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선명한데
  역사 드라마를 둘러싼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설강화>는 연이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방영 전부터 시놉시스가 유출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설강화>는 1987년을 배경으로 간첩인 남주인공을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해 도움을 주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는 설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JTBC 측은 <설강화>에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등장하지 않으며 대본 어디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987년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해다. 버젓이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드라마는 민주화 운동보다 ‘청춘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에 주목하라며 시선을 돌렸다.

  양동복 교수(나사렛대 방송·영상콘텐츠학과)는 제작자가 대중의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7년은 치열한 투쟁으로 얻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이 있는 해이자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 시기죠. 독재 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 의식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드라마는 이를 부정하고 있어요. 제작자의 감수성이 매우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설강화>가 아직도 진행 중인 그날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피해자를 모독했다고 설명했다. “1987년의 서울이 배경인데 남파공작원이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와요. 간첩이 무장 상태로 서울에 침투한다는 건데, 실제 민주화 운동에 간첩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특정 정치세력이 있잖아요. <설강화>의 설정은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강화할 수 있는 거죠.” 민주화 운동 가운데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피해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설강화>는 불편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한편 창작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택광 교수(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는 역사가 해석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역사관은 올바르고 어떤 것은 왜곡됐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를 볼 때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창작자의 권리를 더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강화> 역시 섣불리 왜곡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해요. 그다음에 해석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함께 논의하는 게 현명한 방안이죠.”

  함께 만들어온, 계속해서 만들어갈
  <조선구마사> 조기 종영, <설강화> 보이콧 논란은 역사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국내 드라마의 파급력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어느새 드라마는 오락거리를 넘어 사회문화를 형성하는 매체로 자리 잡았고, 제작자와 방송사도 작품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김성수 평론가는 앞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작품만이 살아남을 거라고 말했다. “<조선구마사> 종영과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린 <설강화>는 결국 소비자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작품 속 부족한 정밀성과 개연성에 불편함을 느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어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중은 점차 소비자인 동시에 창작자로서 권리를 행사하죠.”

  양동복 교수는 역사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고 전했다. “역사 드라마를 허구성이 전혀 없는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시대에 역사를 획일화해서는 안 되죠. 다만 역사 드라마를 창작할 때는 역사적 진실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사실관계를 충분히 검토하고, 시청자들이 허구적 상상력을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윤석진 교수는 창작의 자유를 인정하되 역사 드라마 제작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나 기록은 드라마 창작의 모티프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를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 또 다른 의미의 역사적 기록물이 된다는 거예요. 창작에는 그만큼의 책임 의식이 따라야 하죠.” 먼 훗날 사람들에게 지금의 역사 드라마가 당시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작가의 상상력이 사실로 여겨질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걸어온 과거에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과연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더는 창작이라는 명목으로 역사를 왜곡해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역사와 반복해서는 안 될 아픈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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