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 흔히 창문이나 액자의 틀, 정지된 영상 속 필름의 낱장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기도 하죠. 우리는 종종 일정한 프레임 속에 갇혀 틀에 박힌 사고를 합니다. 이번 학기 문화부는 프레임을 벗어나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 이를 깨뜨리고자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이번 주 프레임은 ‘올림픽’입니다. 올림픽 정신이 훼손된 순간들과 구시대적인 올림픽 중계 및 보도를 포착해봤는데요. 올림픽 속 낡고 굳어진 프레임, 우리 함께 깨뜨리러 가볼까요?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여전히 갈 길 먼 올림픽
손에 손잡고 벽을 넘으려면
얼룩진 스포츠 정신을 씻어내야 할 때

메달보다 빛나는
선수들의 땀방울이 있어
오늘도 우리는 올림픽에 열광한다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은 전 국민의 가슴을 깊이 울리고 열광하게 만든다. 2월 20일 막을 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베이징 올림픽)에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화제의 올림픽’이었다. 외교적 보이콧 및 도핑 파문, 편파 판정 등 끊임없는 잡음이 발생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올림픽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올림픽에 붙은 불편한 꼬리표를 따라가 봤다.

  구불구불 올림픽 연대기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1894년 파리 국제회의에서 고대 올림픽의 부흥을 주장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오늘날 올림픽 정신의 바탕이 됐다. 1896 아테네 하계올림픽 이후 약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인의 친선과 평화를 도모하고자 올림픽은 이어지고 있다.

  1948 런던 하계올림픽은 한국이 광복 후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참가했던 올림픽이다. 지금도 회자되는 1988 서울 하계올림픽은 과거 이념 갈등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한국이 인류 화합의 장이 되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자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됐다. 이처럼 올림픽은 외교,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다.

  올림픽의 화려함 뒤에는 어두운 그늘도 존재한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1936 베를린 하계올림픽을 자신들의 정치 선전장으로 이용했다. 냉전 시대에는 올림픽이 각 진영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1980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때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킨 소련에 항의하는 의미로 미국이 불참을 선언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에서는 소련이 보이콧에 앞장섰다. 최근에도 올림픽에 특정 국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하는 일이 발생했다. 세계인의 결속과 평화를 외치던 올림픽 정신이 퇴색한 것이다.

  평화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은 ‘올림픽 장소, 베뉴 및 기타 구역에서 어떠한 형태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혹은 인종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올림픽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회 공식 사이트 지도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시됐다. 한국 외교부가 이를 항의하자 일본 관방장관은 독도는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이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이 한반도기에 그려진 독도를 정치적 의도로 문제 삼아 IOC에 시정을 요구한 것과 상반된 입장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소수민족으로 등장해 논란이 거세지기도 했다. 예전부터 문제시되던 동북공정의 일환이 아니냐는 여론과 함께 국내 반중 정서가 확산했고 정치권까지 가세해 한국과 중국 간 관계 악화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을 정치에서 해방하고자 고안된 올림픽은 역사 왜곡, 문화침탈 등의 문제를 일으켜 국제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박창범 교수(상지대 생활체육학전공)는 국가가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펼친다고 분석했다. “올림픽만큼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진 대회는 없어요. 특히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은 국가 간 갈등을 최대한 피하려 하죠. 그 기간에는 논란이 생겨도 국가 차원에서 쉽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노리고 국가 문제에 무지한 대중을 속이는 문화포섭이 나타날 수 있어요.”

  베이징 올림픽은 개막 전부터 ‘외교적 보이콧’이 큰 화제였다. 외교적 보이콧은 올림픽에 선수단만 보내고 정부나 정치권 인사로 구성된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 내 공공연한 인권 탄압에 반대하는 의미로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강효민 교수(강원대 레저스포츠학과)는 다가올 올림픽에서 국제사회 규범에 반하는 행태에 관해 더욱 강력한 저항이 나타날 거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외교적 보이콧을 보면 개최국의 정치적 문제를 포함해 종교, 인종 문제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죠. 세계인의 스포츠 무대인 올림픽이 갈등의 장으로 변한 상황에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실현하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지침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카밀라 발리예바 선수가 도핑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하고 있다. 사진출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사이트
러시아의 카밀라 발리예바 선수가 도핑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하고 있다. 사진출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사이트

  유독 승리에 ‘약’한 올림픽
  메달의 반짝임만이 올림픽을 빛나게 하는 건 아니다. 경기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땀방울이 금메달보다 더 값지고 빛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종종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하면 선수를 비난하는 이른바 ‘금메달 지상주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성적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선수도 존재했다. 도쿄 올림픽 당시 ‘블레싱 오카그바레’ 나이지리아 단거리 육상선수는 도핑 양성 반응을 보여 출전이 금지됐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도핑 양성 반응을 보였던 ‘카밀라 발리예바’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제재 없이 경기에 출전해 논란이 됐다.

  박재우 교수(한양대 스포츠문화전공)는 승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국가주의 스포츠관이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부터 스포츠는 수단으로 여겨지며 올림픽 메달 순위를 통한 국력 과시에 집착했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마치 국가의 사명을 부여받아 전쟁에 나가는 전사처럼 육성됐어요. 자연스레 대중도 승리에만 집중하게 됐습니다.”

  천호준 교수(우석대 스포츠지도학과)도 올림픽에서 나타나는 국가주의가 우승자만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장했다고 언급했다. “국가주의란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배타적인 태도를 지니며 자신의 국가가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해요. 국가별 대항 경기로 진행되는 근현대 올림픽에서 자연스럽게 국가주의가 나타났고 우승자 또는 메달리스트만 찬양하는 문화가 형성된 거죠.”

  덧붙여 스포츠계 성적 지상주의가 선수나 지도자를 도핑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고 언급했다. “1등만 기억하는 문화인 성적 지상주의를 도핑의 주된 원인으로 볼 수 있어요. 도핑은 공정한 경쟁을 지향하는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고 약물에 따라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선수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입힙니다.”

핀란드의 리보 니스카넨 선수가 마지막으로 경기를 끝마친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퀸타나 선수를 격려하는 장면이다. 사진출처 Olympics 트위터
핀란드의 리보 니스카넨 선수가 마지막으로 경기를 끝마친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퀸타나 선수를 격려하는 장면이다. 사진출처 Olympics 트위터

  마침내 오륜기가 하나로 연결되려면
  베이징 올림픽의 표어는 ‘함께하는 미래’였다. 진행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선수들의 하나 된 스포츠 정신은 돋보였다. 남자 크로스컨트리 스키 15km 클래식 결승에서는 가장 먼저 도착한 핀란드의 ‘리보 니스카넨’ 선수가 남은 선수들을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결승이 끝난 후 김민석 선수가 울고 있던 다른 선수를 찾아가 다독여주는 장면도 화제였다. 국적을 초월해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함께하는 스포츠의 참된 면모를 보여줬다.

  박재우 교수는 바람직한 올림픽으로 도약하려면 대중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꿈의 무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는 선수들을 잊으면 안 돼요. 선수들에게 비난이 아닌 따뜻한 관심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태도를 함양해 올림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죠.”

  올림픽이 건전한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스포츠 행정이나 미디어 분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원용진 교수(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는 스포츠를 다루는 방식이 대중의식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임하는 태도는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성찰하는 데 이미 익숙하죠. 그에 비해 스포츠 저널리즘이나 스포츠 행정은 후진적인 편이에요. 경쟁을 빼놓고 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선수들의 노력과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천호준 교수는 사회 분위기 변화와 함께 올림픽 연구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도전 자체를 인정하는 동시에 올림픽 연구자들도 올림픽 이상을 실현하고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국가주의 폐단을 막기 위해 시상식에 우승국 국가 대신 올림픽 노래를 연주한다거나 국가별 메달 순위 집계를 공표하지 않는 등의 안건을 개진하고 있어요.”

  4년마다 찾아와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올림픽. 그 이름 뒤에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올림픽 정신이 그늘진 채 남아 있다. 언제쯤이면 스포츠를 있는 그대로 즐기면서 ‘다 함께’ 평화를 찾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올림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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