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 우리 선수들이 지난 5년 동안 흘려 왔던 땀과 눈물, 뭐 그에 대한 대가. 충분히 이것만으로도 우린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0 도쿄 하계올림픽 73kg급 유도 남자 동메달 결정전 MBC 캐스터의 발언 中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경력단절 혹은 정말로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런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시작하셔도 됩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아이를 낳고 은퇴했다가 복귀한 글로리아 코트니크 선수가 동메달을 땄을 때 KBS 캐스터의 발언 中

경쾌하게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는 목소리, 경기에 감동해 울먹이는 목소리. 중계진의 이야기에 우리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관람한다. 경기가 끝난 후 포털사이트에는 해당 선수에 관한 기사가 쏟아진다. 그러나 즐겁고 벅차기만 할 것 같은 올림픽을 편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구시대적인 보도와 중계에 분노를 느끼는 순간도 존재한다. 많은 이들이 문제를 지적해 왔으나 아직도 일부 올림픽 보도와 중계는 차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국가대표일 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 표현이 와닿지 않은 모양이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신유빈 탁구 국가대표 선수를 ‘아기 선수’라고 표현하거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이상화보다 3살 많은 고다이라 나이’라는 제목으로 나이를 강조한 기사도 있었다.

  이한주 교수(연세대 체육교육학과)는 나이를 권력으로 보는 한국 문화로 인해 연령 차별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부터 한국에서는 나이를 권력으로 간주했어요. 이런 문화에서 자란 기자는 자연스레 연령 차별을 드러내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죠. 선수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운동 역량을 잘 발휘했는지가 더욱 중요함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이로 선수를 표현하곤 합니다.”

  여성을 향한 차별 표현도 여전하다.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한 방송사의 중계진은 ‘얼음공주가 웃고, 여전사들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 언론사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알파인 여제’, ‘피겨 요정’ 등 여전히 선수의 기량보다 여성성을 부각해 보도하기도 했다.

  김한범 교수(한경대 웰니스스포츠과학전공)는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여성 참여 및 표현 차별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 차별은 스포츠계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차별이에요. 요정, 여신 등의 표현은 여성 선수의 경기 결과나 성과보다 외적 측면을 부각해 그들의 업적을 작게 나타내려는 경향을 띠죠. 체육계에서 결정권을 가진 집단은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부분도 남성 중심 문화를 흐르게 하는 영향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장승현 강사(부산대 체육교육과)는 시청자 주류를 남성으로 보는 시각 때문에 미디어가 계속해서 차별 표현을 써왔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가 내재된 스포츠는 여성에게 자리를 늦게 내어주려 했어요. 남성 시청자 중심의 스포츠 중계를 하게 됐고 여제, 여신과 같이 남성이 표본이 되는 용어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은 거죠. 시대가 변화하면서 여성 시청자가 본인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어 이러한 용어도 점진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올림픽이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니까
  지상파 3사에서 모두 동일한 인기 종목의 경기만 중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도쿄 올림픽 당시 여자 배구 한일전은 케이블 채널에서만 중계되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지상파에서 방송됐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은 지상파 방송사의 누적 시청률이 약 40%대에 달하기도 했지만 바이애슬론, 노르딕 복합 등 비인기 종목은 중계에서 소외되곤 했다. 경기 시간이 겹치는 경우 비인기 종목이 편성에서 제외된 경우도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봅슬레이 남자 2인승 예선 경기는 여자 컬링 한일전에 밀려 중계되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의 중계 내몰림 현상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한범 교수는 제한된 자원에서 영리를 얻기 위한 방송사의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종목에 대한 선호 편중성이 심해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종목은 방송하기 힘들어요. 방송 채널도 적은 편이라 다양한 종목을 방영하기 어렵죠. 방송사는 중계에 필 요한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보는, 돈이 되는 종목 위주의 중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권을 수십억원 주고 샀는데 비인기 종목만 중계해서 광고료를 10억원도 못 번다면 방송사에서는 중계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남상우 교수(충남대 스포츠과학과)는 비인기 종목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방송기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방송국 이외에 유튜브에서도 종목별 중계가 가능하다면 방송이 분산되므로 비인기 종목에 대한 차별적 보도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복싱 선수의 헤드기어에 카메라를 달거나 서핑 보드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비인기 종목의 보도 기법을 바꿔 스포츠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도 좋겠네요.”

  올림픽에 비해 패럴림픽을 향한 관심도 부족하다.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도쿄 올림픽과 2020 도쿄 하계패럴림픽 편성 시간을 비교했다. KBS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각각 2만5945분과 2045분을 MBC는 각각 1만3320분과 950분을 편성했다. 뉴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올림픽 기간인 2월 4일부터 2월 20일까지 ‘베이징 올림픽’은 7612건의 뉴스가 검색됐다. 반면 패럴림픽 기간인 3월 4일부터 3월 13일까지 ‘베이징 패럴림픽’ 보도량은 211건에 불과했다. 베이징 패럴림픽 보도량이 베이징 올림픽 보도량의 약 36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장애에 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애마저 뛰어넘을 열정’, ‘한계 넘는 장애 인 스포츠 선수들’ 등 장애를 뛰어넘어야 하는 극복의 대상으로 표현해 보도한 사례가 있었다. 2022 베이 징 동계패럴림픽에 출전한 선수를 묘사하는 데 있어 ‘두 다리 없는 美 옥사나’, ‘시각장애 스키선수 최사라’ 등 선수의 신체장애를 부각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남상우 교수는 장애인에 관한 잘못된 프레임이 패럴림픽 관심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패럴림픽에 관한 보도나 중계가 드물기에 대중은 경기 진행의 여부조차 알지 못하죠. KBS에서 일부 중계하거나 대부분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중계하는데 누가 관심을 가지겠어요. 또한 장애인 스포츠 선수를 멋있게 표현하기보다 그들의 장애를 극복한다는 프 레임을 만들기 때문에 이를 보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쌍한 프레임을 씌워서 시청자가 패럴림픽을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메달을 위한 올림픽은 이제 그만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 도쿄 올림픽에서 안창림 유도 국가대표 선수가 동메달을 땄을 때 MBC 캐스터가 한 발언이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5일차까지 ‘노메달’’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보도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금메달 획득이 당연하며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는 그릇된 가치관 이 드러난다.

  장승현 강사는 미디어가 메달 지상주의 프레임에 갇혀있다고 이야기했다. “미디어가 올림픽을 국가 대항 전쟁처럼 인식시키기에 시청자는 노메달을 패배라고 생각하고 올림픽을 심각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한국 선수의 경우 메달 획득을 통해서만 다른 진로로 나아갈 수 있어 메달 색깔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요. 엘리트 체육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죠. 그리고 국가주의적 스포츠에 갇힌 미디어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그러한 보도 방식을 원하고 요구하기 때문에 메달을 중시하는 프레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메달을 따지 못해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따뜻한 분위기가 만연하다. 도쿄 올림픽의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4위를 기록한 우상혁 선수를 향해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베이징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차준환 선수가 5위를 기록했을 때는 ‘세계의 벽 깬 차준환’, ‘한국 남자 피겨의 올림픽 최고 성적’이라는 표현으로 선수의 성과 자체를 칭찬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경기를 보는 모든 사람이 웃는 그날까지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 김한범 교수는 스포츠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체육활동이 단순 신체활동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교과 내용을 구성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차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기르는 거죠. 이를 통해 스포츠 내 불평등 개선이나 다양한 문제에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학생들이 늘어날 거예요.”

  남상우 교수는 스포츠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스키와 스노보드에 한국 선수가 참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 중계를 봤다고 해요. 스키, 스노보드와 같은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죠. 모든 국민이 최소 1개의 스포츠를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거주지와 밀접한 곳에 운동 시설이 많아야 하고 가장 좋은 건 학교 체육관을 개방하는 거죠. 아파트 단지 내 운동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다양한 종목을 즐길 수 있는 시설로 만들면 접근성을 확보할 수도 있고요.”

  장승현 강사는 경기를 보는 공중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언론은 승리 지상주의, 남성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중심의 중계에 관한 자기 검열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 공중이 직접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TV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시청자 게시판처럼 시청자와 1인 미디어가 언론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포맷을 형성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올림픽은 곧 메달이 아니다. 국가대표에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비인기 종목도 훌륭한 드라마다. 장애인 선수도 비장애인 선수와 동일한 국가대표다. 모두가 평등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참된 올림픽의 모습이다. 모두의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서 이젠 ‘금메달!’만 외치기 전에 기자도, 중계진도 모든 선수와 시청자를 향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담은 목소리를 내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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