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 흔히 창문이나 액자의 틀, 정지된 영상 속 필름의 낱장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기도 하죠. 우리는 종종 일정한 프레임 속에 갇혀 틀에 박힌 사고를 합니다. 이번 학기 문화부는 프레임을 벗어나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 이를 깨뜨리고자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이번 주 프레임은 ‘에세이와 자기계발서’입니다. 힐링과 치유를 외치는 도서들이 과연 우리의 마음에 진정으로 위안과 행복을 안겨주는지, 그 현주소를 살펴봤습니다.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비치돼있는 에세이 스테디와 에세이 베스트의 모습. 바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잠시 멈춘 채 에세이를 들춰보곤 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비치돼있는 에세이 스테디와 에세이 베스트의 모습.
​​​바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잠시 멈춘 채 에세이를 들춰보곤 한다. 사진 이서정 기자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 씀)는 2018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8년 베스트셀러 10권 중 6권이 모두 ‘힐링’을 주제로 한 에세이였다. 성공의 법칙을 말하던 자기계발서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씀)와 같이 자신을 돌보는 내용이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책 속에서 위로를 찾기 시작했다.

  책에 붙은 ‘힐링’ 수식어
  2018년 힐링 도서 열풍은 2019년 개인의 감정에 초점을 둔 에세이의 인기로 이어졌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를 키워드로 한 자기계발서가 주목받았으며 지난해에는 사람 간 공감과 감동을 의미하는 ‘휴먼터치’가 주요 가치로 떠올랐다. 해마다 주제는 조금씩 달라도 ‘위로’라는 키워드는 꾸준한 강세를 보인다.

  유성호 교수(한양대 인문과학대학장)는 힐링 도서의 유행이 시대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취업난으로 지친 사람들은 작가의 체험과 고백을 통해 위안을 얻어요. 힐링 도서는 독자가 삶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주죠.”

  오세정 교수(충북대 국어국문학과)는 현실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위로받는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는데 오늘날 사회에서는 그 답을 찾기 어려워요. 이런 상황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힐링 도서를 찾아 읽는 거죠.”

  멘토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
  과거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교훈적인 성격을 띠었다. 2010년대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씀) 등 멘토가 조언하는 내용의 도서가 인기를 끌었다면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작가 개인의 경험과 일상을 담은 책이 늘어났다.

  김정숙 교수(충남대 자유전공학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보통 교훈적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죠. 요즘은 SNS부터 시작해 개인의 삶을 표현하는 작가의 영역이 다양해졌어요. 독자에게 공감의 힘을 확산할 수 있게 됐죠.”

  특히 에세이 분야에서 힐링 열풍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교보문고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소윤 씀)와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김재식 씀)는 모두 ‘나’를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동혁 교수(서일대 미디어출판학과)는 출판계의 관점에서 힐링 에세이 유행을 분석했다. “출판 현상 중 하나가 한 분야의 책이 인기를 끌면 그에 편승하는 도서가 확산한다는 거예요. 힐링을 주제로 한 에세이가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부터 비슷한 도서들이 출간되고 있죠. 책의 다양성 측면에서 무척 아쉽습니다.”

  김영재 교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도 ‘팔리는 책’인 힐링 에세이 열풍은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출판 산업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니 수요에 맞춰 유사한 내용의 책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현상이죠. 문제는 유행만 좇다 보면 함량 미달의 책이 쏟아진다는 거예요. 이를 읽는 독자들이 즉각적인 위로에 중독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죠.” 힐링 에세이가 독자들이 원하는 말을 전하는 동시에 현실에만 안주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힐링 에세이를 읽는 젊은 독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에세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20대 독자 비중은 2017년 약 17.3%에서 2020년 약 24.8%까지 약 7.5%p가 올랐다. 김동혁 교수는 힐링 에세이를 찾는 이유를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과 연관 지어 이야기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 부의 불평등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젊은 세대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죠.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책을 찾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힐링 에세이에서 말하는 ‘이대로 괜찮다’가 언제까지 깊은 위로와 공감을 줄지는 의문이에요. 청년이 공감할만한 현실적인 해결책도 마련해야 하죠.”

  돛을 달아 먼바다로 나아갈 때
  팍팍한 현실 속 따뜻한 언어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다만 그 책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박수연 교수(충남대 국어교육과)는 힐링 도서가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힐링 도서는 현실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나와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안심하도록 만들어요. 공감의 공동체지만 사실은 안주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힐링 도서만 읽는다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며 제자리에 멈춰있을 수 있다.

  유성호 교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뜻한 날 항구에 정박한 배를 보면 아주 평화롭고 안전하죠. 그렇지만 배는 정박하려고 만든 게 아니에요. 침몰할 가능성이 있어도 바다로 나가야죠. 우리는 작고 확실한 행복에만 머무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닙니다. 앞으로 겪을 아픔을 인내하면서 현실에 뛰어들어야 해요.”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하지. 하지만 난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 곰돌이 푸가 전하는 위로의 한마디다. 언제나 여유 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곰돌이 푸의 태도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삶의 주체는 곰돌이 푸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에세이와 자기계발서는 다양한 삶의 자세와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넓은 세계를 탐색하며 위기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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