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사회적 소수자를 조명할 때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곤 합니다. 소수자가 아닌 우리가 소수자를 조명한다는 전제가 깔린 셈이죠. ‘보통의 이야기’는 소수자를 이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같은 사회 구성원의 위치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죠. 오늘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을 만나 보통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니다. 채식주의자 사이에는 ‘채밍아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부담과 염려를 껴안고 본인이 채식주의자임을 주변에 밝히는 걸 말하죠. 가치 소비의 시대로 채식주의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적인 눈초리가 가득합니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발을 딛어봤습니다.

 

채식주의는 김지원 학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인들이 비건 음식을 맛있게 먹고 관심을 가지면 날아갈 듯 신이 난다. 사진제공 김지원
채식주의는 김지원 학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인들이 비건 음식을 맛있게 먹고 관심을 가지면 날아갈 듯 신이 난다. 사진제공 김지원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채식 지향인이 세상에 더 강한 영향을 준다는 말이 있어요. 너무 심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야 오래가죠. 저는 쓸 수 있는 에너지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흔히 채식주의를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채식주의는 8단계로 구분되는데요. 프루테리언(과일, 곡식만 섭취)과 가장 유명한 비건(과일, 곡식, 채소까지 섭취)부터 육류만 섭취하지 않는 폴로 베지테리언까지 7단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채식을 중심으로 가끔 육식을 겸하는 준채식주의자 플렉시테리언까지 총 8단계죠.

  최근 채식주의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소수라는 이유로 편견 어린 시선을 마주하곤 합니다. 학내 공간에도 만연하죠. 당장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도 채식주의자를 비난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은 무너지지 않는 신념으로 묵묵히 개인의 가치를 실천해나갑니다. 기자는 올바른 미래로 향하기 위해 일상에 비거니즘을 녹여내고 있는 대학생 채식주의자 김지원 학생(사회복지학부 4)을 만나봤습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었나.

  “생활관 편의점에서 ‘채식마요김밥’을 사 먹었습니다. 309관(블루미르홀309관) 1층 편의점에 채식 김밥과 채식 삼각김밥을 항상 판매하고 있어 편하더라고요.”

  -언제부터 채식주의를 결심한건지.

  “2019년 여름에 비건을 접해 202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채식주의를 결심한 정확한 시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관심을 갖다 보니 하나, 둘 안 먹기 시작했죠. 어느 순간 안 먹는 음식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채식주의를 실천하게 됐습니다.”

  -현재 어떤 단계의 채식주의인가.

  “정석적인 단계를 지킨 건 아니라서 애매해요. 채식 공부를 시작했을 땐 우유와 달걀이 생산되는 방식을 보고 충격을 받아 유제품과 달걀을 아예 안 먹기도 했어요. 생선은 먹어도 말이죠. 개인적으로 채식의 분류가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정의한다면 비건을 지향하는 페스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페스코는 가금류와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 단계를 말하죠.”

  -페스코를 선택한 이유는.

  “페스코가 밖에서 식사할 때 그나마 어려움이 덜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채식주의는 신념과 의무감으로 하는 건데 가능한 범위를 고려하는 게 부끄럽긴 해요. 하지만 밥은 먹어야 하는데 주변에 비건 식당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죠. 그래서 페스코 범위 내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기 시작했어요.”

  -물품을 구매할 때도 비거니즘을 실천하는지.

  “그럼요. 제가 사용하는 지갑도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질감의 제품이에요. 동물 가죽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튼튼하고 부드러워서 마음에 듭니다. 화장품도 비건 화장품 중 동물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 제품을 찾아서 쓰고 있죠.”

  -궁극적으로는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을 목표한다고.

  “비건은 동물권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의의도 큽니다. 그렇다면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소비인 셈이죠. 그래서 화장품은 가급적 이미 갖고 있거나 선물 받은 제품 위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기초 화장품이나 선크림 외에는 새 화장품을 사본지 조금 오래됐네요.”

김지원 학생은 상도역 근처에 있는 비건 빵집 ‘우부래도’를 좋아한다. 사진에 담긴 코코넛 크림빵과 두부피자롤 외에도 맛있는 비건 빵들이 많다. 사진제공 김지원
김지원 학생은 상도역 근처에 있는 비건 빵집 ‘우부래도’를 좋아한다. 사진에 담긴 코코넛 크림빵과 두부피자롤 외에도 맛있는 비건 빵들이 많다. 사진제공 김지원

  -단체생활이 많은 대학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채식주의를 지향한 후에는 비대면 학사가 시작돼 단체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캠퍼스 주변에 비건 인프라가 정말 적어 매번 같은 음식을 먹는 게 힘들더라고요.”

  -비건 학식 도입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이제 막 복학한 터라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무척 반가웠어요. 멀리 나가거나 아몬드 우유만 먹지 않아도 돼 신이 났습니다.”

  -학내에서 채식주의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마주한 적은 없는지.

  “조별과제를 마치고 같은 조원이셨던 다른 과 학생 두 분이 함께 치킨을 먹자고 제안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채식을 해서 정중히 거절했죠. 그랬더니 바로 앞에서 계속 소곤거리시더라고요. 제가 무슨 말을 하셨는지 묻자, ‘어차피 곧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며 당당히 이야기하셨어요. 그때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처음에는 공격적인 말들에 눈물이 났어요. 지금도 가끔 과한 비난을 보면 왜 혼자 날을 세우고 조롱하는 걸까 싶지만 요즘에는 웃으며 넘깁니다. 채식주의는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마다의 시작점과 속도는 다르니까요.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그 와중에도 들어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자세히 설명해 채식에 관해 최대한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중앙대 내 채식주의자들과 교류하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여름 학과 동아리에서 비거니즘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그 후로 동아리에 채식을 지향하려고 노력하시는 학생들이 많아져 그분들과 수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죠. 같이 만나서 밥도 자주 먹습니다. 최근에는 함께 비건 와인과 비건 안주를 먹으러 가기도 했어요.”

  -비채식주의자 지인과 식사할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제가 먼저 비건 식당을 알아봐 제안하기도 하고 비채식주의자 지인에게 맞출 때도 있습니다. 대신 최대한 동물성 식품이 적게 들어간 메뉴를 고르고 먹지 못하는 재료는 다 덜어내고 있어요.”

  -동물성 식품이 함유된 조미료가 많아 식자재를 고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건 식재료 구매 팁을 준다면.

  “보통 제품 뒤 성분표를 보시면 동물성 식품이 함유됐는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어요. 하지만 탄화골분 같은 건 직접 문의해보지 않는 이상 보통 알기 어렵죠. 이럴 때 저는 SNS에서 여러 비건 계정의 도움을 받습니다. 직접 판매처에 문의하고 공유해준 정보들이 많아 참고하기 좋아요.”

  -이제 어떤 음식을 드시러 가실 건지.

  “아직 못 먹어본 비건 학식을 지금 먹어보고 싶네요!”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