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문화예술 향유를 미뤄두곤 합니다. 감상의 순간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등을 돌리기도 하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문화예술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성’을 전해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 문화부는 음악 감상, 그 향유의 역사를 돌아보며 LP와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의 진한 매력을 만나고 왔습니다. 예술은 결코 삶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죠. 그러니 편히 마음을 내려놓고 다 같이 감성 스위치를 딸깍- 올려볼까요? 감미로운 선율로 가득한 따뜻한 감성의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일러스트 구순모
일러스트 구순모

귀족 문화에서 시민 문화로
듣는 음악에서 소통하는 음악으로

우릴 거쳐 온 다양한 모습의 음악
소통과 위로의 공간으로 자리하길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지친 마음 을 위로받고자 유튜브를 열어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한다. ‘좀 더 편안한 퇴근길이 될 수 있도록’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 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인간의 삶에서 음악은 익숙한, 어쩌면 당연한 존재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가사 속 이야기와 멜로디를 선물하는 음악. 음악은 우리의 일상 속에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고귀한 음악, 일상으로 스며들다
  바로크 시대까지 음악은 귀족계급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였다. 대부분 궁정이나 귀족 저택에서 음악 연주가 이뤄졌으며 일반 시민은 교회나 시 축제 행사에서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1678년 런던의 공개 연주회를 시작으로 유럽 주요 도시에서 연주회가 열렸고, 이는 음악가와 대중을 매개하며 근대 음악 시장의 문을 열었다.

  음반 발명 전까지 음악은 공연자와 청중이 모인 특정한 공간에서 라이브 형식으로 소비됐다. 그러다 1948년 지름 30cm에 23분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LP(Long Playing Record)가 시판됐다. 1887년에 나온 SP(Standard Playing Record)의 수록 가능 시간은 3~5분, 1949년에 등장한 EP(Extended Playing Record)는 7~8분 정도였다. 이와 달리 LP는 20~40분 정도의 음악 수록이 가능해 여러 곡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었다. 한국에는 1960년대에 국내 음반사들이 설립됐고 LP는 1956년 도입됐다.

  김시범 교수(국립안동대 한국문화산업 전문대학원)는 물리적 형태의 음반이 등장하며 음악 소비층이 변화하고 사업가 영향력이 증대됐다고 설명했다. “음반이 등장한 후 더 많은 사람이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며 향유 계층이 대중으로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예술가 중심의 음악 산업이었다면 음반이 상품화되면서 유통과 홍보, 관리가 중요해졌죠. 음악 유통 및 사업가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 거예요.”

  음악 산업 기술이 발전하며 LP에서 CD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 소비 형태가 변화했다. 1976년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CD를 개발했고 1982년 CD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CD가 LP를 뛰어넘어 음반 시장 대부분을 점유했다. 사람들은 소니의 워크맨(작은 크기의 카세트테이프 레코더)에 CD와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음악을 소비하곤 했다.

  서근영 교수(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실용음악학과)는 카세트테이프와 CD의 등장이 음반 산업의 부흥을 일으켰 다고 말했다. “카세트테이프, CD가 등장 하며 이동 중에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됐어 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음반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만족이 대중의 음악 소비를 자극 해 음반 산업에 크게 기여했죠.” 김시범 교 수는 음악의 개인 소비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LP를 듣기 위해서는 특정 공간에 가야 했고 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음악을 들어야 했어요. 그러나 카세트테이프, CD가 등장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개별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됐죠. 문화의 차별성과 다양성을 충족시켜주는 단말기가 만들어진 거예요.”

  디지털에서 연주를 시작하다
  워크맨으로 카세트테이프와 CD를 듣던 우리 앞에 디지털 음악이 등장했다. 1997년 이후 MP3 파일과 같은 압축 오디오 파일이 개발되며 사용자는 PC에 음악 파일을 저장할 수 있었다. 서근영 교수는 MP3 등장 후 나타난 음반 산업의 변화를 설명했다. “MP3라는 무형 형태 음반이 등장하자 소비자는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고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이로 인해 음반 산업의 매출이 축소했죠. 디지털 음악 시장의 성장으로 음악 생산자에 돌아가던 대부분 수익이 통신사, 포털사이트, 유통사 에 돌아가는 구조로 변화했습니다.”

  최근에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대중화되고 무선 인터넷이 발전하며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원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음악 산업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주 1회 이상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 이용 비율은 약 46.3%인 반면 음악 스트리밍을 사용하는 비율은 약 81.6%였다. 음악 스트리밍 시장이 음원 다운로드 시장을 뛰어넘은 것이다. 음악 스트리밍 이용률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사업은 빠르게 확산되고 통신 기술 발전으로 끊김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김시범 교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해 소비자와 문화적 측면으로 나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훨씬 합리적으로 음악을 소비할 수 있어요.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면 모든 곡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월정제 덕분이죠. 알고리즘을 통한 곡 추천은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주기도 했어요. 이때 알고리즘은 플랫폼 사업자와 이동통신사의 권유로 이뤄지는데 알고리즘에 없는 예술가 음악은 향유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서 사업가가 주도권을 가지게 됐죠. 또한 알고리즘은 소비자가 음악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다양한 문화 향유에서 오는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는 점은 문화적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멜론, 지니 등과 같은 플랫폼은 정해진 금액으로 음악을 무제한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다수 소비자의 사용을 유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고공행진을 막은 플랫폼이 있었으니, 바로 유튜브다.

  유튜브에서 당신과 나, 음악을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많은 이의 공감을 일으키는 제목과 감성 가득한 사진,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 ‘네고막을책임져도될까’의 영상 중 하나인 ‘봄, 너라는 계절’은 봄에 있었던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이용자 스스로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건넸다.

  이렇게 감성을 자극하는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네고막을책임져도될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이요한 씨는 우리 삶 속에서 공감할 만한 주제와 제목을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 주제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제목과 사진으로 풀어내요. 특히 계절감이라는 주제를 좋아하는데요. 봄에는 봄꽃 향기가 떠오르도록, 겨울에는 춥고 쓸쓸한 느낌이 들도록 특정 계절을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게 제목을 정하죠.”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 유튜버 이지 스튜디오는 구독자 의견을 수용하거나 직접 곡을 찾아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많은 음악을 알고 있다 보니 쉽게 곡을 선정할 수 있었어요. 또한 대중의 높은 만족도를 위해 유튜브 커뮤니티 탭의 게시글이나 투표 등으로 구독자 의견을 적극 수용했죠. 현재 각광받는 곡을 직접 찾아 리스트를 선정하기도 해요.”

  그래서일까,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만이 갖는 감성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픈서베이의 ‘콘텐츠 트렌드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음악 콘텐츠 청취를 위해 유튜브를 1순위로 사용하는 비율이 약 2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단순히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소통하는 음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유튜버 이요한 씨는 유튜브 댓글 창이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저는 치유의 소통에 초점을 두고 싶어요. 댓글을 통해 이용자는 일 상에서 꺼내기 힘든 각자의 이야기를 털 어놓으며 위로를 주고받죠. 일상 대화로 하기 힘든 이야기를 노래 가사에 담아내듯,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댓글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생각해요.”

  유튜버 이지스튜디오는 유튜브의 높은 접근성과 알고리즘 시스템, 시청각이 즐거운 영상미가 사람들이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이유라고 이야기했다. “음원 사이트와 달리 기분과 상황에 따라 취향별로 들을 수 있고 플레이리스트만으로도 다채로운 아티스트 곡을 접할 수 있죠. 알고리즘 덕분에 검색 없이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추천받고 썸네일부터 영상의 사진까지 보며 즐길 수 있기에 몰입도를 높여줍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서로 유대감을 가지고 댓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유튜브 음악만의 묘미죠.”

  다시 음악의 세계로 들어온 LP
  디지털 음원의 등장으로 물리적 음반이 설 곳은 없어진 듯한 음악 시장에서 LP가 다시 우리의 감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MP3가 등장하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LP는 후퇴를 맞이했다. 그러다 복고 문화가 열풍하며 LP의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젊은 층의 관심까지 사로잡았다.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는 LP 부흥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MP3가 등장하면서 음반 시장이 추락하고 음원 소비 시대로 바뀌었죠. 그러다 디지털 음원에서 벗어나 7080세대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면서 복고 문화가 생겨났는데요. 리메이크한 음반이 발매되고 그 당시의 가수가 소환되곤 했는데 자연스럽게 LP도 그런 분위기로 이어진 거죠.”

  김시범 교수는 MZ세대가 LP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에 관해 예술가의 진정성과 소유욕을 들어 설명했다. “LP판은 음악 저장이 가능한 유형 음반의 원조라는 점에서 진짜 음원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세련미가 떨어지거나 잡음이 들릴 수 있으나 이 점에서 예술가의 진정성을 느끼는 거죠. 또한 인터넷 스트리밍과 달리 LP판은 그 음반에 한해 소유권을 가질 수 있어요. 불법이 아니면서 자신의 것을 가진다는 자기만족이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죠.”

  LP 판매량과 동시에 턴테이블(음반을 돌리는 동그란 받침대) 매출도 증가하며 국내 LP 시장은 점점 떠오르는 분위기다. 최규성 대표는 LP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디지털 음원을 향유하는 시대가 됐을 때도 약 1~2만명 정도의 LP 향유 소비자는 있었습니다. 디지털 음원과 달리 LP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소장할 수 있어 향유층이 증가하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LP 시장은 확대되고 있으며 좋은 음악과 콘텐츠가 나오는 한 계속 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LP에서 CD, MP3 그리고 스트리밍과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까지. 음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을 맴돌았다.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음악을 즐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힘들고 지친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힐링이 되고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이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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