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 흔히 창문이나 액자의 틀, 정지된 영상 속 필름의 낱장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기도 하죠. 우리는 종종 일정한 프레임 속에 갇혀 틀에 박힌 사고를 합니다. 이번 학기 문화부는 프레임을 벗어나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 이를 깨뜨리고자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이번 주 프레임은 ‘광고’입니다. 한 편의 광고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심도 있는 고민과 노력, 정성이 필요하죠. 그러나 광고가 공개되자마자 대중들로부터 거센 비판과 항의를 받는 사례가 종종 존재합니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광고들은 대부분 한 가지가 모자랐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젠더 감수성입니다. 광고 속 낡고 굳어진 프레임, 우리 함께 깨뜨리러 가볼까요.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여자답게’, ‘남자답게’를 규정짓는 광고
광고 속 결여된 젠더 감수성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기도 
나답게 하는 광고는 어디에 있나요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는 질소와 산소 그리고 광고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광고 전문가 로베르 궤링이 했던 말이다. 광고가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릇된 젠더 감수성을 주입하는 광고를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성 고정관념을 부각하는 광고였다. 오늘날 광고는 우리를 어떤 프레임에 가두고 있을까.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 모델 ‘제니’. 어깨가 반쯤 드러난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 모델 ‘제니’. 어깨가 반쯤 드러난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다. 사진출처 처음처럼

  맥주는 남자, 소주는 여자?

  주류 광고에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공식이 있다. 높은 비율로 맥주는 남성 모델, 소주는 여성 모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광고 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맥주 광고와 비교해 소주 광고는 모델의 성적 매력을 주제로 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소주 광고에서 여성 모델은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요염한 자세를 취하는 등 상품과 관계없이 성적 매력을 부각하고 있었다.

  나미수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는 소주 광고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다고 분석했다. “소주 광고는 젊고 섹시한 여성 모델을 등장시켜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어요.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의 몸을 시각적 유희의 대상으로 구성하는 거죠. 많은 광고에서 여성 혹은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이윤 창출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광고에 나타난 성 고정관념이 사회적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류 광고에 등장한 여성 또는 남성의 특정 이미지는 성 역할을 정형화할 수 있어요. 성별에 따른 가치나 외모에 대한 시각을 규정하고 소비자에게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줄 수 있죠.” 광고에서 부각하는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가 사회적인 기준으로 내면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을 젖소로 비유하고 불법촬영을 연상시켜 대중들의 뭇매를 맞은 서울우유 광고.
여성을 젖소로 비유하고 불법촬영을 연상시켜 대중들의 뭇매를 맞은 서울우유 광고. 사진출처 YTN news 유튜브

  광고가 제시하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

  지난해 11월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우유 제품을 홍보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광고 속 한 남성은 카메라를 들고 산에 올라가 물을 마시는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다. 풀밭 위에서 스트레칭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순간 사람들은 젖소로 변한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성을 젖소로 묘사한 것과 남성이 몰래 사진을 찍는 장면에 부적절한 의도가 담겨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경숙 교수(고려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는 서울우유 광고에 여성을 소비 대상으로 보는 오래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개입됐다고 이야기했다. “여성의 몸을 볼거리로 삼는 시각 문화의 발달 과정에서 카메라에 나타난 여성의 몸을 젖소에 비유하게 된 거예요. 여성의 생산 기능만 부각한 거죠.”

  김상훈 교수(인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광고 제작 과정에서 이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광고는 브랜드와 관련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광고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반영하고 있어요.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을 젖소로 변형시킨 게 논란이 될 줄 몰랐던 거죠. 결과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합니다.”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와야 당당한 남자’라는 차별적 메시지가 담긴 병무청 홍보 영상.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와야 당당한 남자’라는 차별적 메시지가 담긴 병무청 홍보 영상. 사진출처 유튜브 캡처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드러낸 광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병무청 유튜브 채널에는 ‘친구에게 듣는 군 생활 이야기’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이 올라왔다. 광고 속 남성은 시력과 체중 등의 문제로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또는 5급 판정을 받은 사람이 현역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인 ‘슈퍼힘찬이 프로젝트’를 통해 현역으로 입대했다. ‘네 성격 같으면 군대라도 다녀와야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얘기하고 다니지.’라는 대사에 많은 이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라는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강조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청년들을 비하한다는 이유였다. 이처럼 고정된 성 역할을 부각하는 광고는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게임 왕이되는자 유튜브 광고는 여성 캐릭터가 몸을 수색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신의 속옷을 맞춰보라는 등 성 감수성이 결여된 장면을 담고 있다.
게임 <왕이되는자> 유튜브 광고는 여성 캐릭터가 몸을 수색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신의 속옷을 맞춰보라는 등 성 감수성이 결여된 장면을 담고 있다. 사진출처 게임어바웃

  선정적 게임 광고 ‘건너뛰기’

  ‘보면 볼수록 기분이 더럽네요.’ 한 유튜브 게임 광고를 본 대중의 반응이다. 30세, 24세, 심지어는 18세까지. 광고 속 여성 캐릭터는 나이가 적힌 팻말과 함께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게임 <왕이되는자>의 광고 내용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해당 광고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1항 제1호인 ‘등급을 받은 게임물의 내용과 다른 내용의 광고를 하거나 그 선전물을 배포·게시하는 행위’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차단 조치를 내렸다. 성적 대상화에 관한 제재나 위반 언급은 없었다.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은 해당 광고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이 광고를 보면 여성의 다리를 드러낸 게 선정적이죠. 여성이 손을 모으고 있는 자세와 목에 걸린 팻말, 특정 성이 다른 성으로부터 선택받는 설정까지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아요.”

  게임 광고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강신규 연구위원은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은 게임도 그 광고는 모든 연령이 시청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이용 가능 연령대는 심의를 거치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아요. 업계는 전 연령대가 광고를 본다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 자율 규제를 하고 있지만 잘못된 광고를 만들지 않도록 더 강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죠.” 문제가 있는 광고를 본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 역할 고정관념을 은연중에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신규 연구위원은 은밀하게 성 고정관념을 주입하는 게임 광고가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했다. “특정 연령이나 직업에 프레임을 씌우는 게임 광고가 있어요. 캐릭터가 너무 어려 보이거나 의사 가운 또는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경우죠. 이는 특정 성의 역할이나 직업 인식에 고정관념을 심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대놓고 선정적인 광고는 거부감을 주지만 은밀하게 연출된 광고는 문제를 알아채기 어려워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고, 우리 모두의 과제

  광고를 비롯한 미디어는 중요한 사회화 도구라는 점에서 수용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에 나타난 왜곡된 성 고정관념은 사람들이 그릇된 성별 가치를 학습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

  나미수 교수는 광고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고 등의 미디어에서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해요. 성 역할을 규정하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죠.”

  한편 수용자들의 비판 의식 함양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이경숙 교수는 수용자의 미디어 리터러시와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 생산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미디어를 이용하고 유통하는 규범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죠.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에는 구성원 간 많은 숙고와 합의가 필요해요.”

  강신규 연구위원은 수용자와 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수용자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명시적으로 성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광고는 쉽게 가려낼 수 있죠. 나아가 은밀하게 성 고정관념을 주입하는 광고도 알아낼 수 있어야 해요. 수용자는 올바른 리터러시 능력을 기르고 정부는 인식 조사를 통해 대중이 광고를 받아들이는 수준을 파악해야 합니다.”

  광고는 사회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광고도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실을 반영하는 광고를 멀리서 지켜만 봤다. 짧은 이미지가 만드는 고정관념은 사회에 오래도록 남아 불평등한 결과를 재생산한다. 수용자도, 사회도, 업계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눈을 떠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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