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몇 살이든, 무엇을 하든 지금의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믿음은 언제나 옳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광고 <아름다움은 자란다>에 등장하는 문구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4인의 여성 예술가들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아름다움이 곧 젊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이다. 언제 어디서든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그들은 광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설화수 '아름다움은 자란다'는 여성의 모든 생애에 본연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진출처 Sulwhasoo 설화수 유튜브
설화수 '아름다움은 자란다'는 여성의 모든 생애에 본연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진출처 Sulwhasoo 설화수 유튜브

  똑똑, 광고 바로잡으러 왔습니다 
  오랜 시간 국내 광고 속 여성은 서구화된 이상적 아름다움, 남성 욕망의 대상,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러다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고착된 성 역할이 가진 문제점과 차별적 시선에 도전하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마케팅과 광고업계도 변화가 생겨났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현대자동차그룹 기프트카 TV - '가야위' 위주혜 가방 디자이너편>은 가죽 가방을 만드는 청년 창업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고 전문적인 일을 하는 여성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H&M의 <H&M: 드레스편>은 탱고 음악에 맞춰 인종·나이에 관계없이 다양한 여성이 함께 춤을 춘다. 몸에 딱 맞춘 옷을 입은 여성의 라인과 워킹을 강조한 기존 광고와 달리, 의류의 활동성과 자유로움이 드러나고 다양성을 통한 연대와 평등의 의미가 돋보인다.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에 관해 사회 전반적인 관심이 더 높아지면서 광고 역시 여성 인권 신장, 성 고정관념 탈피 등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담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 페미니즘(feminism)과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인 펨버타이징(femvertising)이 등장했다.

  진정한 여자다움이란 
  펨버타이징은 2014년 미국의 ‘쉬노즈미디어 광고주간(She Knows Media at Advertising Week)’ 행사에서 처음 쓰인 용어로 성별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현대 광고의 표식이 됐다. 이는 전통적인 광고에 드러나던 고정관념에 도전해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법이다.

  엄남현 교수(홍익대 광고홍보학부)는 광고 매체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펨버타이징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펨버타이징은 TV와 인쇄, 옥외, 소셜 미디어 광고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온라인 매체를 통한 숏폼(짧은 영상) 형식의 광고가 주를 이뤄요. 소셜 미디어가 미디어의 중심에 선 이후에는 소비자의 적극적 참여를 이끄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죠. 광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설치 미술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펨버타이징의 대표 사례 중 하나는 2014년에 시작한 P&G Always 브랜드의 <여자답게(Like a girl)> 캠페인 광고다. ‘여자답게 뛰어보세요.’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팔다리를 설렁설렁 흔들며 소극적으로 뛰었다. 그러나 사춘기 이전의 여자아이들은 있는 힘껏 달렸다. 엄남현 교수는 ‘여자답게’라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느끼게 한 캠페인으로 간주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여성에 가진 편견을 깨뜨리자는 광고 메시지가 좋았어요. 아직 편견에 물들지 않은 사춘기 이전 아이들이 여자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듣고 씩씩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여자답게’라는 표현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죠. 캠페인 후 이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약 19%에서 약 76%로 증가했다고 해요.”

P&G Always 브랜드의 '여자답게' 캠페인 광고 속 문구가 마음을 울린다. 사진출처 Always 유튜브
P&G Always 브랜드의 '여자답게' 캠페인 광고 속 문구가 마음을 울린다. 사진출처 Always 유튜브

  국내 펨버타이징, 걸음마를 떼다 
  국내에서도 펨버타이징을 통해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의 헤라가 2016년에 진행한 <서울리스타> 캠페인 광고는 ‘도시의 아름다움은 열심히 일하는 당신들로부터 빚어진다’는 컨셉을 잡았다. 광화문, 여의도 등 서울시 곳곳을 매우 세련된 공간으로 연출했고 광고 속 여성을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주체로 그린다.

‘도시가 빛나는 이유가 바로 당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헤라의 '서울리스타' 광고. 사진출처 헤라HERA 유튜브
‘도시가 빛나는 이유가 바로 당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헤라의 '서울리스타' 광고. 사진출처 헤라HERA 유튜브

  여성이 공적 상황을 주도하고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을 광고에 나타내기도 했다. <삼성 갤럭시 노트 7: 자유롭게 남다르게 출장편>은 여성 신입 사원이 여성 상사와 함께 해외 지사 일을 처리하며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포츠 브랜드 리복 광고 중 ‘나는 독하다’ 편은 강수진 발레리나가 계단 오르기와 덤벨, 복싱 등 다양한 체육 훈련을 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두 광고 모두 여성의 자기 계발과 능력을 제시하며 자유와 주체적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리복 광고 ‘나는 독하다’ 편.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누구보다 끈질기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강수진 발레리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출처 Reebok Korea 유튜브
리복 광고 ‘나는 독하다’ 편.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누구보다 끈질기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강수진 발레리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출처 Reebok Korea 유튜브

  펨버타이징은 많은 미디어와 광고에서 재현됐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등장했다. 김정현 교수(광고홍보학과)는 펨버타이징이 소비자의 긍정적 심리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는 펨버타이징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보고 그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표출할 수 있어요.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동참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제품 구매에 대한 만족도도 높일 수 있죠.”

  그러나 국내 펨버타이징의 학술적 연구와 인식은 해외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 ‘2020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돈을 버는 역할에 남성 인물의 비율이 높았고 육아와 가사 역할에 여성 인물의 비율이 높았다. 돈 버는 일은 남성, 가사는 여성의 몫이라는 성차별적 인식이 여전히 광고에 만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고 속 젠더 감수성 제고를 위해 이제 본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고정관념, 그 벽을 부수기 위해 
  건강한 펨버타이징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김지은 연구교수(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원)는 진정성이라는 가치와 사회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펨버타이징은 늘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너는 너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라는 메시지를 주는데 그 자체가 여성에게 하나의 과제로 다가옵니다. 사회가 규정한 미(美)는 변하지 않는데 여성 스스로 긍정적 생각을 가지기는 어렵죠.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기업이 미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의사결정권자의 젠더 감수성 제고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말하는 젠더 감수성이 없는 광고를 보면 ‘제작 과정에서 여성이 한 명도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죠.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나 목소리를 냈음에도 묵살당했을 가능성이 커요. 중요한 의사결정권자가 여성이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따라서 의사결정권자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요. 개인과 단체는 의견을 내고 불매운동과 같은 활동을 통해 광고 제작자의 잘못을 알릴 필요가 있죠.”

  엄남현 교수는 펨버타이징 제작 시 데이터에 근거한 기획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젠더 감수성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고 남성을 적대 관계로 표현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혐오의 메시지가 아닌 여성 입장에서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둬야 하죠. 그리고 펨버타이징 슬로건 제작 시 감정에 대한 집착보다 데이터, 즉 조사를 기초로 한 기획이 중요해요. <여자답게> 캠페인도 50% 정도의 여자 어린이가 사춘기 또는 초경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크게 잃는다는 사실 발견에서 시작됐죠.”

  이어 기업과 소비자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해외에선 다양한 펨버타이징 광고를 해요.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기업인 ‘만텔’은 성 중립 바비 인형을 제작했고 ‘레고’는 여성 과학자 및 탐험가 레고를 출시했죠. 그러나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스스로 펨버타이징 캠페인을 펼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한국 기업도 여성 평등, 젠더 감수성 등을 담은 펨버타이징을 생각해야 해요. 소비자는 펨버타이징을 남녀갈등 수단이 아닌 대화 매개체로서 바라봐야 하죠.”

  TV 프로그램이나 좋아하는 영상을 보기 전 우리는 늘 광고를 접한다. 당신을 지나간 수많은 광고 속에 무심코 지나친 성차별이 얼마나 있었을까. 단순히 메시지 한 줄, 영상 한 편을 만들고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바람직한 젠더 감수성을 바탕으로 광고를 평가할 때다. 나쁜 광고엔 채찍을, 좋은 광고엔 당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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