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와 함께하는, 나는 앨라이입니다
  • 백경환 기자
  • 승인 2021.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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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수첩

나치의 일원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말했습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는 죽어가는 이들의 절규를 듣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었죠. 폭력은 악이 아니라 무감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소수성과 다수성을 섞어 들고 살아갑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울려 살고있는 수많은 개성을요.  

  앨라이(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는 알록달록한 개성을 민감하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혜민씨(고려대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박사수료), 자캐오 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원장 신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더욱더 많은 앨라이가 세상을 수놓기를 소망하고 있었죠.  

  ※ 해당 기사는 개별 취재한 인터뷰를 좌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기 궁금하다.  

  이혜민씨: 20대 초반에 친구가 저에게 커밍아웃해서 그때부터 성소수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여러 책이나 논문을 찾아보다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라는 단체에 관심이 생겨 그곳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죠.  

  자캐오 신부: 성소수자 당사자로부터 “이런 저도 하나님이 사랑하실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긴 공부와 토론, 반성과 성찰 끝에 ‘성소수자라도 똑같이, 아니 어떤 의미로는 더욱더 사랑하신다’라는 답을 얻었죠. 이 경험으로 인해 성공회 목회자가 되면서부터 공개적인 연대 발언을 하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자캐오 신부: 우리는 대부분 ‘소수자성’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차별이나 혐오를 당해 본 적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제 지인은 서구 사회로 유학을 떠났다가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주류일 수 있으나 처한 상황과 맥락이 달라지니 그가 갖고 있던 소수자성이 드러난 것이죠. 그러므로 사회 안팎에 자리 잡은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대할 때에 당신과 내가 가진 소수자성을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평등법’ 입법 통과가 중요한 디딤돌이 될 거예요. 

  이혜민씨: 내 주변에 언제나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남자라면 여자친구, 여자라면 남자친구가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이성애자 중심적 사고를 지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앨라이임을 주변에 알릴 필요도 있어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혐오 표현을 하려던 사람도 조심할 수 있거든요. 앨라이임을 밝히는 것은 성소수자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게 문을 열어 놓는다는 의미도 있죠.  

  -모두가 커밍아웃하는 세상이 올까? 

  자캐오 신부: 여러 이유로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하는 성소수자들을 지지합니다. 우리 사회의 한계와 편견에 의미 있는 균열과 틈새를 만드는 일이기에 응원하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서 단순 명료하게 말할 수 없고, 그만큼 쉬운 일도 아니에요. 결국 한국 사회와 교회, 우리들의 관계가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동행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것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스스로 찾고 선택하는 과정을 존중한다는 뜻이죠. 

  -앨라이로 가득 찬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혜민씨: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성소수자와 앨라이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목소리가 시너지를 발휘하리라 생각해요. 앨라이들이 성소수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성소수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예요. 많은 앨라이들이 존재를 드러내면 좋겠어요.  

  자캐오 신부: 제가 한 성소수자를 만나 그의 질문을 계기로 변하기 시작했듯이, 성소수자를 특정한 관점과 틀 안에 가둬놓기 전에 ‘존재 자체로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소수자 문제는 개개인의 영역에서 해결하기 어렵기에 모두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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