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메이씨
사진제공 메이씨

빨간색을 표현해야 했던 파란색 크레용 
마침내 드넓은 바다를 그리던 순간

지구가 뒤집어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당신 편에 서겠다는 다짐. 이 마음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가족들에게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사랑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커밍아웃 스토리』(성소수자부모모임 씀)에 담긴 말입니다. 미국의 ‘가족수용프로젝트’에 따르면 가족에게 거부당한 성소수자는 우울증 발생 위험과 자살시도 가능성이 크게 증가합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성소수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죠. 자녀에게 커밍아웃을 받은 어느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A씨는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입니다. A씨의 어머니는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메이씨(56)는 대학생이던 자녀가 커밍아웃해오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성소수자를 주변에서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당시 너무나 당황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망치로 머리를 크게 맞은 느낌이었죠.”  

  메이씨는 성소수자 혐오 속에서 자녀가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고칠수 있는 질병이 아닐까 막연한 기대를 품었죠. 하지만 자녀와 함께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성주체성 장애’, 즉 트랜스젠더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성주체성 장애가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고 태아기부터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어요. 성별정체성대로 살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생이 불행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죠.” A씨는 성별정체성과 다른 자신의 몸에 갖게 되는 혐오감으로 생을 접을 생각까지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자녀의 아픔을 마주한 메이씨는 A씨가 성별정체성대로 살 수 있도록 돕기로 결심했죠. 

  명확한 진단 이후 메이씨는 자녀를 다른 이들과 다르게 태어나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숨이 막혀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힘든 나날들이었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더니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있더라고요.” 자신부터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메이씨는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환경의 부모님들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으며 감정을 다독일 수 있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메이씨에게 큰 위로였습니다.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메이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달라졌습니다. “소외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소수자의 목소리는 다수성이라는 거대한 힘에 묻혀 버리고 있더군요. 아이 덕분에 좀 더 바른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커밍아웃해준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자녀의 커밍아웃은 메이씨의 커밍아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메이씨는 목소리를 높이죠. “버젓이 있는 존재를 없는 존재로 치부해 쉽게 혐오 발언을 하고,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나중에’를 남발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요. 지금은 당당하게 우리 아이는 트랜스젠더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면 혐오 발언을 일삼던 사람들이 적어도 제 앞에서는 조심하니까요.”  

  A씨는 올해 성확정수술을 받고 성별정정허가를 마쳤습니다. 메이씨는 성별 고정관념 자체가 사라지고 A씨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됐죠. 그림동화 『빨강』(마이클 홀 씀)은 빨간색 포장지를 입은 파란색 크레용 ‘빨강’의 이야기입니다. 메이씨는 빨강을 두고 자녀를 떠올렸죠. “빨강이 자신의 색을 찾고 주변의 환대와 지지를 받으며 용기를 얻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그 상처를 보듬고 낫게 하는 존재 역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았죠.”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세상을 지금 당장 바꾸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의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메이씨는 커밍아웃이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커밍아웃해온다면 여러분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변함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그 사람에게 꼭 상기시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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