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어떤 장애물도 넘을 수 있는 사랑을 원한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21.03.2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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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어떻게 녹았나

혈육에 대한 반발, 사회이슈로 확대
순수하기에 현재 더욱 가치 있어


N포 세대라며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삭막한 시대다. 깊은 낭만보다는 친구와 맥주 한잔하며 삶을 달래는 게 더 익숙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사랑하고픈 낭만적 욕구는 숨길 수 없는 걸까. 로맨스물은 대중문화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는 낭만의 대명사 『로미오와 줄리엣』(윌리엄 셰익스피어 씀)이 현대 로맨스물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꽃을 든 좀비 R(로미오)과 줄리(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로맨스 서사는 현대 흐름에 맞춰 변형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적 예로 영화 <웜 바디스>가 있다. 영화는 자신의 이름, 나이도 전혀 기억 못하는 좀비 ‘R’과 우연히 만난 소녀 ‘줄리’ 간의 로맨스를 다룬 좀비물이다. 폐허가 된 공항에서 다른 좀비들과 무기력하게 살던 R이 줄리로 인해 얼었던 심장이 다시 뛰면서 서로를 지키는 내용이다. R과 줄리의 이름은 각각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니셜에서 따왔다. 가문의 반대로 인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적 서사도 좀비와 인간 간 사랑으로 묘사돼 명명백백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이현우 교수(순천향대 영미학과)는 해당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인물, 배경, 서사 면에서 현 동향에 맞춰 잘 변형했다고 말했다. “<웜 바디스>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판 패러디물이라고 흔히 말해요. 요즘 인기 있는 좀비물이면서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병적 문제를 극단화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최근 트렌드를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죠. 최근에는 방해물을 설정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더욱 현실감 있게 설정해야 하기에 사회문제로 확장시켜요. <웜 바디스>도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에 해당해요. 또한 어두운 세계관보다 가벼운 영화를 관객이 선호하는 경향에 맞춰 영화는 비극적 결말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답니다.” 

영화 '웜 바디스'는 로미오와 줄리엣 현대판 패러디물로 좀비 ‘R’과 소녀 ‘줄리’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트렌드에 맞춰 잘 각색했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 <웜 바디스>는 로미오와 줄리엣 현대판 패러디물로 좀비 ‘R’과 소녀 ‘줄리’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트렌드에 맞춰 잘 각색했다는 평을 받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성숙한 로미오, 충동적인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 서사 속 혈육, 전통에 대한 인물들의 반발이 사회적 이슈로 확장되는 흐름은 <웜 바디스> 이외에 다른 로맨스물 작품에도 많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사회적 문제인 분단, 당쟁 문제를 주제로 다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공주의 남자>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서사 각색을 넘어 아예 『로미오와 줄리엣』 속 특정 장면을 차용한 패러디물도 다수 존재한다. <별에서 온 그대>가 관련 예시에 해당하는데, 이현우 교수는 해당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 구조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 ‘도민준’과 ‘천송이’가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발코니잖아요. 집 구조를 자세히 보면 두 발코니가 나란히 붙어 있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건축 구조거든요. 천송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도민준에게 발코니에서 고백하는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발코니에서 자신의 감정을 속삭이는 장면을 굉장히 연상케 하죠.”

  한편 현 대중매체 속 인물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많이 변형됐다고 주찬옥 교수(문예창작전공)는 바라봤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을 시작하지만 인기 있는 로맨스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위 계급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운명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정통로맨스는 아직도 수요가 많아요. <별에서 온 그대>도 그렇죠. 하지만 인간을 넘어 완벽한 외계인으로 도민준이 묘사되잖아요. 따라서 동등한 위치에서 이뤄질 수 없는 안타까운 비극 서사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는 남녀 간 계급이 극대화된 신데렐라 구조로 변형됐다고 생각해요.” 

  주찬옥 교수는 로맨스물 속 등장인물 특징도 많이 변화했다고 덧붙였다. 로맨스물은 정통로맨스에 소동극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 갈래로 변모하는 추세다. 이에 발맞춰 여자 캐릭터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천방지축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 캐릭터는 함부로 행동하는 여자 캐릭터에게 반해 그녀가 사고를 치면 이를 이성적으로 뒷수습해주는 전형적 패턴을 지닌다. 

  모두가 꿈꾸는 낭만 그 자체
  계급 차 없이 동등한 위치에 놓인 『로미오와 줄리엣』 서사 기반 로맨스물로 주찬옥 교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꼽았다. “여자 주인공이 상처가 많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정신력을 보여줘요. 남자 주인공을 오히려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살핌을 한쪽이 받는 구조를 탈피했다고 볼 수 있죠. 서로 대등해진 상태에서 애정을 주고받는 게 사실 좋은 사랑이자 로맨스물이 아닐까 싶어요.” 

  이현우 교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오래된 작품임에도 현재까지 해당 서사가 통하는 이유가 우리의 내재된 욕망에 있다고 바라봤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을 『로미오와 줄리엣』은 상징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타협적인 사랑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럴수록 모든 난관을 극복한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해당 작품은 이러한 순수한 사랑의 전형적 모델로 작용하기에 현재까지도 의의를 지닌다는 의견이다. 

  장애물의 형태와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 변하고 있다. 하지만 난관을 만들고 이를 넘어서는 서사를 계속 제작해 향유하는 심리는 결국 모두 같다. 어떠한 곤경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욕망은 21세기까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바뀐 이름들에 수줍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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