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언어에도 봄은 오는가
  • 박재현·이동준·전영주·한수지 기자
  • 승인 2020.06.08 0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을 잃은 농인 문화

 

미디어의 꼬라지를 꼬집어보자! 그동안 중대신문 뉴미디어부는 온라인 플랫폼 속에서 독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이제는 지면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서 풀지 못한 깊숙한 이야기를 중대신문 뉴미디어부에서 기자들이 속 시원하게 풀어나갑니다. 뉴미디어부가 업로드한 콘텐츠를 더 깊게 바라보거나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을 꼬집어 분석하고 비평합니다. 세 번째로 살펴볼 주제는 '농인 문화'입니다. 함께 꼬집어볼 사람? 저요!

 

 

브리핑에서 다양한 조음자를 사용하는 수어 통역사 (사진출처 질병관리본부)

우리나라에는 한국어와 다른 체계를 갖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시각언어, 즉 한국수어를 사용하고 농인이라 불린다. 농인은 병리적 관점으로 전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을 가진 사람들이다. 강창욱 교수(강남대 중등특수교육과)는 “숫자로서의 소수보다는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가운데 ‘보는 사람’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소수 문화 공동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은 농인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지난 2013년에 발의된 「한국수화언어법」이 3년 만에 제정됐기 때문이다. 해당 법은 한국수어 연구와 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가장 기본적인 언어권을 명시했다. 「한국수화언어법」을 통해 농인 문화와 한국수어가 재조명됐으나 농인 문화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인 시기를 맞았다. 농인 문화의 정수(精髓)인 한국수어는 현재 보전이나 발전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고사 직전에 놓였다. 한국수어를 손만 보면 알 수 있는 언어라거나 수어 단어를 나열하는 언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최근 질병관리본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브리핑에는 수어 통역사가 함께 나온다. 일부 청인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인상을 찌푸리는 수어 통역사를 향해 “왜 마스크를 쓰지 않냐”, “표정이 사납다” 등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수어가 ‘손의 언어’라는 오해로부터 나온 지적이다. 한국수어는 손만 움직이는 언어가 아니라 손도 움직이는 언어다. 손 이외에 눈, 눈썹, 코, 입, 혀, 턱, 볼, 표정, 공간, 몸의 방향, 시선 등 다양한 조음자를 동시에 움직여 의미 정보와 문법 정보를 전달한다.

  허일 교수(한국복지대 한국수어교원과)는 한국수어를 ‘아파트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수어는 1층 손에만 정보가 있지 않고 2층 눈, 3층 공간, 4층 눈썹, 5층 볼, 6층 몸의 방향, 7층 시선 등에서 의미 정보와 문법 정보를 함께 표현한다”며 “한국수어를 1층 ‘단독주택 언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어를 접해본 청인 역시 수어를 오해하곤 한다. 학교나 종교 기관에서 수화 노래를 배운 경험이 있는 청인은 이상하게 수화 노래를 공부할 때면 영어나 불어 공부만큼의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어와 같이 단어나 형태소의 선형적 결합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수어 교육을 들으면 머리에 쥐가 난다. 한국어와 달리 한국수어는 수어 문법에 근거해 문장을 완성하기에 익히기 쉽지 않다.

  수어 단어를 선형적으로 조합한 수지 한국어는 농인 문화의 언어적 토대를 위협한다. 수지 한국어란 한국어 단어마다 수어 단어를 대응시켜 나열하는 언어다. 한국수어 사용자는 한국어와 대체로 동일한 어순을 따르는 수지 한국어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선생님은 거짓말하는 학생이 싫다’는 한국어 문장을 수지 한국어로 표현하면 ‘선생님 + 거짓말하다 + 학생 + 싫다’가 된다. 한국수어 사용자는 ‘선생님이 거짓말하고 학생이 싫어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허일 교수는 “수지 한국어는 수어가 아니며 수어 혹은 수화가 들어간 명칭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며 “한국수어로 둔갑해 한국수어가 사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씌어진 시(視)

  전문가들은 수지 한국어가 한국어 권력을 등에 업고 사용자를 늘린다는 입장이다. 강창욱 교수는 “청인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국어 체계 내에서 문제의식 없이 수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영혼에 닿은 언어』 (홍성사 펴냄)를 쓴 한국농문화연구원 김유미 원장은 “한국수어 원어민도 한국어 권력에 압도돼 수지 한국어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언어권(言語權)에 대한 감수성 부족이 큰 이유”라며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수어는 나중에 배우면 된다는 인식이 농아동으로부터 한국수어를 빼앗는다”고 말했다.

  농인 문화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농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농학교 교사는 대체로 말과 수어를 동시에 발화하면서 수업하는데 말과 수어를 함께 사용하면 수지 한국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허일 교수는 “약 40년 동안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수업하면서 자신이 훌륭한 교사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수십년의 교육 인생을 부정하고 심지어 농인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수지 한국어가 빠르게 확산하기도 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업로드된 수어 관련 영상 중 농인 문화와 한국수어에 오해를 양산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 김유미 원장은 “과거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끊임없이 복제되는 미디어의 특성상 생산된 오류를 제거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한국수어와 수지 한국어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보지 못해 이러한 현상이 심화된다”고 말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오해가 없기를

  한국수어는 농인 문화의 산물이면서 농인 공동체의 보루다. 농인 문화라는 대지에서 한국수어가 태어나 자랐다. 동시에 한국수어는 농인 문화를 지지하는 기둥이자 키워 내는 둥지 역할을 한다. 김유미 원장은 “한국수어는 한국어나 영어와 같은 다른 언어와 비교했을 때 규모와 기세가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소수언어이자 위기언어”라며 “한국수어를 한국어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고 방치한다면 결국 한국어, 수지 한국어, 외국수어, 국제수어 등에 의해 언어잠식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의 소멸이 즉시 공동체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언어가 소멸하고 다른 언어로 대체된 공동체는 결국 대체된 언어와 해당 문화에 흡수될 것이다. 프랑스 언어학자 클로드 아제주는 이렇게 말했다. “한 언어의 죽음은 분명 물리적 공동체의 죽음이 아니다. 한 언어를 버리고 다른 언어를 취하는 인간 사회가 마찬가지로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언어의 죽음은 집단적 현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