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맞춤’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안성맞춤은 경기도 안성시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잘된 물건을 이르는 말이죠. 안성에는 이 단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명장 일곱 분이 있는데요. 이번주 ‘안성명장’에서는 안성명장 1호, 이종오 명장(유기공예)의 작업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황금빛 유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1000도의 열과 사투하는 이종오 명장을 만나보시죠.

 

 

 

주물틀에서 꺼낸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이종오 명장. 마치 자신의 자식을 보듯 애정이 어린 눈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주물틀에서 꺼낸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이종오 명장. 마치 자신의 자식을 보듯 애정이 어린 눈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이건 신비로운 거지.” 앞으로 한 발짝 내딛자 뿌연 가루로 뒤덮인 바닥과 먼지가 겹겹이 쌓인 선풍기가 보인다. 그리고 두 발짝 다가가자 빨간 불길이 보이고 그 속에서 까만 흙으로 덮인 쇳덩어리가 나온다. 얼마 후 새까만 흙 사이에서 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빛이 나고 그릇의 형태가 드러난다. 이종오 명장은 유기의 첫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그릇이라고 봤는데 까매요. 이게 유기그릇인가 그랬더니, 가공하는데 가서 그릇을 깎고 나니 빛이 나오는 거 아니여.” 유기그릇(유기)이 가지고 있는 광채는 작업장으로 향하는 이종오 명장의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유기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녹이고, 식히고 깎아내는 이 과정을 거치며 구리와 주석은 유기로 탈바꿈한다.
하나의 유기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녹이고, 식히고 깎아내는 이 과정을 거치며 구리와 주석은 유기로 탈바꿈한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오고 가면

  쇠가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을 만나 만들어지는 것이 유기다. 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녹여 만든 쇳물을 거푸집에 넣은 뒤 식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단단하지도 빛이 나지도 않은 유기일 뿐이다. 다시 불에 달구고 물에 넣는 담금질을 거쳐야 비로소 유기는 단단해져 깨지지 않는다. 또한 유기를 깎고 연마해야 윤이 난다. “옛날에는 대장이 있고 조수가 있었어. 우리가 일 배울 때 고생 최고 많이 했지.” 이종오 명장은 십대 초반부터 생업에 뛰어들었다. 유기를 만드는 작업장의 어린 조수는 쇠를 깨고 녹여주며 대장이 하는 일을 곁눈질했다. “쇳덩이라 여름에는 무지 뜨겁고 겨울에는 또 추워서 힘들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 배우려고 하지.” 뜨겁고 추운 작업장에서 그는 새벽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배를 곯아가며 일했다. 10여 년이 지나 첫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유기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뜨거움과 차가움의 온도 차를 온전히 견딘 명장의 유기가 만들어졌다. 

 

이종오 명장의 공방 곳곳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이 보인다. 숟가락부터 잔, 그릇까지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이 명장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종오 명장의 공방 곳곳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이 보인다. 숟가락부터 잔, 그릇까지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이 명장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전통의 불씨를 지킨다는 것

  이종오 명장은 가족들과 함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아들은 5년째 아버지 옆에서 일을 배우며 쇳물 보는 눈을 기르고 있다. “우리 아버지가 고생했으니 난 안 해, 그건 아니거든. 언젠가는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어.” 당연히 대를 이어야 한다며 담담히 말했지만 이종오 명장은 유기를 만들며 걷는 길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양은과 스테인리스의 등장 그리고 IMF와 같은 경제 변화는 작업실로 향하는 명장의 발걸음을 주춤하게 했다. “그때는 돈벌이가 안 되니까 재미가 없더라고.” 여러 사회변화로 인해 유기 시장은 작아졌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다시 쇠를 녹이고 식히고 깎았다. “힘들어도 살아남으면 된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 거지.” 오늘도 이종오 명장은 같은 자리에서 전통 유기 기술을 이어나가며 유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의 자리에서 유기를 만들며 아들이 전통 기술을 다 익힐 때까지 가르친다는 명장의 눈빛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담금질 과정을 거쳐 비로소 유기가 단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완벽함에 대한 신념

  “쇠가 다루기가 까다로워. 빨갛게 달궜을 때는 고무마냥 휘청휘청 휘는데 식으면 유리마냥 쫙쫙 갈라져.”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유기 공정에 쉬운 과정은 하나도 없다. “정신 차려서 해야지. 유기가 까말 때는 모르다가 그걸 깎을 때 불량인 걸 알 수 있어.” 거푸집에서 꺼낸 유기에는 뜨거운 온도에 그을린 흙이 붙어있기 때문에 표면을 깎아 내야 우리가 보는 유기의 모습을 가진다. 따라서 유기를 깎고 연마하는 마지막 공정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불량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불량이 나오면 들인 비용과 노력이 한순간에 허사가 된다. 명장은 유기 하나를 가져와 불량품이라며 보여준다. “이건 사용해도 상관없는데 나는 철저하게 안 팔아.” 유기 위에 동그랗게 표시된 부분을 뚫어지게 봤다. 그러자 비로소 티끌만 한 얼룩이 보였다. 얼룩의 크기 때문인지 희미함 때문인지 불량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단 하나의 유기에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명장의 굳은 신념이 더 빛나는 유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완성된 유기를 살펴보는 이종오 명장. 조그마한 흠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완성된 유기를 살펴보는 이종오 명장. 조그마한 흠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백년해로를 위해서

  ‘인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 즐겁게 늙는다.’ 유기는 100년을 써도 쉽게 닳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종오 명장의 유기는 백년해로를 꿈꾸며 누군가의 부엌에 놓인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유기를 사용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유기그릇이 물때가 끼는데 그때마다 잘 닦아주면 돼.” 유기를 오래도록 소중히 사용해달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에서 명장의 소탈함이 묻어나왔다. 유기 그 자체를 아끼는 이종오 명장과 50여 년 그의 손에 들린 유기의 만남은 백년해로의 연 같다. 그리고 그 인연 덕에 우리도 명장의 정성이 담긴 전통 유기와 함께 세월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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