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살에 살을 더해, 물고기가 듣는 대숲소리
  • 김정훈·김아현 기자
  • 승인 2019.09.0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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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전통을 이어가는 송용운 명장

‘안성맞춤’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안성맞춤은 경기도 안성시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잘된 물건을 이르는 말이죠. 안성에는 이 단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명장 일곱 분이 있는데요. 이번학기 사진부는 안성의 명장들의 작업을 소개하기 위한 코너 ‘안성명장’을 준비했습니다. 개강호에는 올해 안성명장에 선정된 안성명장 7호, 송용운 명장(죽간공예)의 모습과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대나무를 “내 삶의 일부”라고 말하며 대나무 낚싯대를 만드는 용운작 송용운 명장을 만나 보시죠!

 

 

가늘고 긴 대나무는 모진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대나무는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디로부터 뻗어 자라는 대나무는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리 삶에도 시련이라는 바람이 분다. 송용운 명장은 거친 바람에도 전통이라는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오늘도 용운공방에서 꿋꿋하게 전통 대나무 낚싯대를 만드는 송용운 명장을 만나 대나무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나무 낚싯대와의 첫 만남 

어렸을 적 아버지께 낚시를 배우던 아이는 작은 지렁이 한 마리를 끼웠더니 커다란 붕어가 걸려 나오는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내가 만든 낚싯대로 낚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송용운 명장은 중학교 때부터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었다. “그때는 취미 수준이었죠. 업으로 삼아 낚싯대를 상품화한 지는 13,14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중학교 때 이후 계속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어 지금의 명장이 됐을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이 빗나갔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 탓에 고등학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고(古)가구 만드는 일을 한 그였다. 낮에 일하고 밤에 검정고시를 준비해 학교에 입학했다. 비록 고가구 제작을 했던 경험이 대나무 낚싯대를 만드는 일은 아니지만 현재의 일에 가장 큰 밑받침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대나무가 낚싯대가 되려면

“대나무는 매년 겨울마다 준비해와요. 겨울에 해야 좀벌레가 없고 수분이 빠져 견고해지거든요.” 준비해온 대나무는 3년 동안 건조와 탈색의 과정을 겪으며 숙성된다. 이후 굵기별로 선별된 대나무는 직접 만든 교정목과 화로를 이용해 교정 작업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대나무가 꼿꼿하거나 똑바르다고 인식하고 있잖아요. 작업하다 보면 똑바른 대나무는 하나도 없어요. 다 휘어 있죠.” 송용운 명장은 조금씩 휘어있는 대나무에 열을 가해 교정목으로 문지르며 휘어진 부분을 바로 잡았다. “대나무가 생각보다 성질이 굉장히 꼬장꼬장해요.” 교정한 대나무는 다음 날이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한다. 변화에 조금 더딘 대나무의 성질을 잘 알기에 그는 힘든 내색도 없이 일곱번의 교정 작업을 반복 한다.

하나뿐인 낚싯대로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고 있는 송용운 명장.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작업이 단 한번도 없다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고 있는 송용운 명장.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작업이 단 한번도 없다

 교정 작업을 거친 대나무는 얇은 대나무를 두꺼운 대나무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낚싯대의 모습을 갖춰간다. 이 과정에서 대나무를 꽂는 부분을 견사로 보강한다. “보강하지 않고 대나무를 꽂게 되면 끝이 갈라지기 때문에 실로 감아 보강해주는 거예요.” 낚싯대에 실을 감는 섬세한 움직임에 공방에는 실타래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의 꼼꼼한 보강 작업을 거치며 여러절의 대나무는 한절의 대나무 낚싯대가 된다. 마지막 과정인 도장과 손잡이 작업은 미적인 요소가 곁들어져야 한다. 낚싯대의 실용적인 부분만 충실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예술적인 부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낚싯대를 완성하기까지 25일에서 30일정도 걸린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는

대나무를 든 명장의 손에는 그동안의 세월이 주름 잡혀 있었다.
대나무를 든 명장의 손에는 그동안의 세월이 주름 잡혀 있었다.

“대나무 낚싯대는 작은 붕어를 하나 잡아 올릴 때도 손잡이의 떨림으로 붕어의 크기까지 다 전달돼요.” 대나무 낚싯대는 휨새와 손맛이 좋아 미세한 떨림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마디 부분이 약해 잘 부러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낚싯대에서 가장 얇은 부분인 초릿대는 더욱 잘 부러진다. 송용운 명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성이 좋은 겉대와 탄성이 적은 속대를 구분해 대나무를 쪼갰다. 그리고 겉대를 최대한 살려 네개를 붙인 4합 초릿대를 만들었고 여섯개를 붙여 6합 초릿대를 제작했다. 기본적인 제작 방식은 정통을 따르되 전통 낚싯대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해 자신만의 전통 대나무 낚싯대를 개량한 것이다. 
 

이 자리에 있기까지

“이 공방이 원래 축사였어요. 지붕만 있는 곳인데 제가 직접 벽을 만들고 천장을 수리해 공방으로 만들었죠.” 생활고를 각오하고 이 길에 들어선 송용운 명장은 10년 차가 되던 해 고비를 겪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의 일은 변함없이 어려운 길이었다.“이 일을 하면서 애들한테 학비를 준 적이 없어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장인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무역업에 종사해야 할지 갈등을 겪던 중 전통 문화상품공모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지난 2017년 9월에 한·러 정상회담 순방행사 대통령 선물에 선정돼 그의 낚싯대가 푸틴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금전적 어려움이 있지만 송용운 명장은 전통이라는 외길을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다.
 

대나무를 시집보낼 때

“누군가에게 낚싯대를 보낼 때면 꼭 딸래미 시집보내는 기분이 들어.” 송용운 명장은 첫 낚싯대를 전해주고 3일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에게 낚싯대란 귀하게 키운 자식이다. 그래서 한 공정 넘어갈 때마다 몇번이고 꼼꼼하게 작업 중인 대나무를 확인한다. “미국으로 간 낚싯대가 있는데 낚시해보고 무척 마음에 든다고 연락이 왔어요.” 명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낚싯대는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보낸 낚싯대였다. SNS를 통해 명장의 낚싯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한달 뒤 한국에 들러 낚싯대를 받아갔다. 자식 같은 전통 대나무 낚싯대를 통해 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살아있는 전통

앞으로의 바람을 묻는 말에 그는 “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는 유물이면 그 전통은 죽어 버린 거잖아요. 전통적인 것들이 명맥이 끊어진 유물이 되지 않고 발전해나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전통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깊어지고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깊게 녹아있었다. 전통이 단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되지 않으려면 많은 사람이 전통을 찾아야 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전통을 찾을 때까지 오늘도 자신의 용운공방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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