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지 못한 무지개, 그늘에 가려지다
  • 노유림 기자
  • 승인 2019.05.27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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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보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한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열한번째 주인은 ‘청소년 성소수자’입니다. “어린애가 뭘 얼마나 안다고 그래?” 청소년기를 겪은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표현. 하지만 이러한 말이 개인의 성적 지향성 및 정체성을 부정하는 표현이라면 어떨까요? 인식적 측면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는 제도적 측면에서도 고충을 겪고 있었는데요. 우리 사회 속 어디에도 없다고 여겨졌으나 어디에나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청소년이자 성소수자였기에
편견을 짊어지고 상처 입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어요”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이들

본 기획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1항에 따라 ‘청소년’을 만 19세 미만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기사 내 언급되는 다양한 성소수자의 유형은 유엔 인권 사무국(United Nations Human Rights Office)이 주도해 운영하는 사이트 United Nations Free&Equal에서 명시한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 등의 설명을 참고했습니다. 해당 기사는 실제 성소수자 청소년이 학내외에서 겪은 차별적 경험, 혐오 표현에 의한 피해 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불편한 내용이 포함돼있을 수 있습니다. 유사 피해 경험자 혹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분은 본 기사를 읽는데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 구순모 학생
일러스트 구순모 학생

 

  누구에게 말할 수 있나요?
  청소년 성소수자는 미성년자이자 성소수자라는 측면에서 혐오나 차별로 인한 피해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특히 이들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민준씨(18세)는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에게 ‘청소년이라 성 정체성을 결정짓기에 아직 미성숙하다’고 인식된 경험을 밝혔다. “'어릴 때라 동성 간의 우정을 사랑으로 생각했다'며 성소수자라는 제 정체성이 틀렸다는 발언을 들었어요.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는 치료하고 바꿔야 할 질병 같은 요소로 자연스럽게 인식되기도 했죠.”

  범성애자인 A씨, 양성애자인 B씨 역시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차별적 언행을 들어야했던 경험을 토로했다. “많은 주변인이 제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춘기라 성 정체성에 혼돈이 왔다’고 했죠.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성 정체성을 판단하는 게 미숙할 수 있다는 지적도 들었어요.” 범성애는 젠더 이분법을 따르지 않고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성적 지향이며 이성애는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서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이다. 그들은 미성숙하다는 편견 때문에 동성을 좋아할 수 있는 성적 지향성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학내 상담 시스템은 청소년이 학교 내에서 피해 상황을 겪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움을 준다. 문제 발생 가능성에 대한 초기 진단 및 대처와 같은 1차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 성소수자 학생은 차별 및 혐오 표현과 관련해 피해를 입더라도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린아씨(18세)는 동성애자다. 그는 학내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가장 불편한 점에 대해 ‘아웃팅 위험성’을 언급했다. “학내 상담실을 이용하기 위해선 제 성적 지향성을 밝히고 상담을 받아야 했어요.” 학내 상담소는 청소년을 보호하고 심리 상담이 원활이 이뤄져야할 장소다. 하지만 청소년 성소수자의 상담이 이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을 밝혀야 하고 이는 원치 않는 아웃팅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김민준씨는 성추행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학내 상담을 신청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해 사실을 알리려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교사 등 상담자에게 밝혀야 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존재하지만 학내 상담소는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관련 피해를 입었을 때도 누구에게 상담을 받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청소년 성소수자가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으로 인해 피해를 입더라도 학내에서 쉽게 털어놓을 수 없다는 우려였다. 그는 모든 학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이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닫혀있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A씨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 없이 정신과 진료 등 전문 상담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보통 정신과에서 이뤄지는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해요. 하지만 보호자에게 커밍아웃을 못했거나 가족이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청소년 성소수자도 있어요. 이런 경우 피해 경험 등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전문 상담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죠.” 그는 청소년 성소수자도 자발적으로 관련 피해에 대해 상담을 받기 쉽도록 정부적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홀로는 손 뻗기도 어려운
  「민법」 제5조(미성년자의 능력)는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미성년자인 청소년이 법적 해결 절차를 밟고자 해도 친권자인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청소년 성소수자는 성추행 등 법률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는 피해를 입더라도 이를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보호자에게 피해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커밍아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C씨(18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혔을 때 부모로부터 폭언을 듣고 피해를 해결하는 데 도움 받을 수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혐오나 차별을 경험하고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도움 받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상황에 직면해도 가족이 대처해주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죠.” 그는 현재 무성애자이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기 이전에는 동성애자였다. C씨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보호자가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피해에 대한 해결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양성애자인 고등학생 류서연씨(17세)는 혐오 및 차별로 인해 피해를 받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관련법을 제정하는데 있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짚었다.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차별금지법이 통과돼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법안 제정과 관련해서 의견을 낼 수 없었죠. 투표권이 없어서 법 개정 등에도 참여할 수 없고요.” 그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개인의 성 정체성에 대해 보호받을 권리를 직접 주장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지갯빛 꿈나무는 어디서 자랄 수 있나
  “청소년 성소수자 또한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요.” 양성애자인 고등학생 D씨(19세)는 사회 제도적 측면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부분으로 청소년 성소수자가 보호받을 권리를 언급했다. 법률적 측면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보호해줄 수 있는 조치가 전혀 없을까.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제2장 제1절 제5조에 따르면 학생은 성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또 교직원 및 학생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은 앞서 언급된 사유를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역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비슷한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학내 청소년 성소수자는 조례에 따른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D씨는 학내 구성원의 일상적인 발언에서 차별과 혐오 피해를 쉽게 받았다. “혐오 발언이나 차별 경험을 겪더라도 가해자에게 별다른 대처가 이뤄지지 않아요. 청소년 성소수자가 교내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 혐오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죠.”

  E씨(19세)는 다성의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양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폴리로맨틱 양성애자’이다. 그는 경기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학생인권 조례의 실효성을 느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가 가장 먼저 시행됐음에도 보호받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 어려워요. 조례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어긴다고 해서 처벌이나 구체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학생인권 조례 자체가 없는 지역도 있고요.” 학생인권 조례가 강제성을 띠지 못할뿐더러 제정되지 않은 시·도가 있기 때문에 통일성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법이라는 구속력 있는 수단이 존재해야 청소년 성소수자의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준씨도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학내에서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과 혐오로 인해 더 고통 받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인식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을 제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해요.” 또한 그는 경상남도에서 활발히 논의 중인 학생인권 조례도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본 학생인권 조례가 보편적으로 지정된 후 구체적 보호 대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스스로의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편견과 제도의 벽에 부딪힌다. 해당 지면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 싶다는 한 중학생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짧지만 분명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지 말아주세요. 존재한다는 사실만이라도 사회가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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