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영 동문(연기전공 07학번)은 드라마 <기황후>, <가면>, <굿바이 미스터 블랙>, 영화 <여교사>, <치즈인더트랩> 등에 출연해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엔 예능프로그램 MC 자리까지 당당하게 차지하며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자신을 모질게 대하던 그는 욕심을 살짝 내려놨다. 시청자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 배우 인생을 추억해봤다.

사진제공 에잇디크리에이티브
사진제공 에잇디크리에이티브

주인공이 되고픈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보듬어주다

“아무리 악역이라도

내 역할이니까

내가 사랑해야줘야죠.”

지난달 19일 오후 5시 강남구 신사동.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 중반이었지만 바람이 매섭진 않았다. 배우 유인영 동문도 그랬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차가운 줄 알았던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약 15년간의 배우 인생을 털어놓는 그의 목소리와 은은한 향의 차를 잔에 조심스레 부어주는 손길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유인영 동문은 본인을 다그치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기로 결심했다. 그는 평온해 보였고 앞으로의 역할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예능프로그램 <호구의 연애> 기사를 봤다. 깔끔한 진행으로 메인 MC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고.

  “지금 4부까지 촬영했어요. 아직도 열심히 적응하고 있는데 어렵더라고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저는 말을 빨리하는 편도 아니고 순발력이 엄청 뛰어나지도 않아서 예능을 겁냈거든요. 그래도 계속 겁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어요.”

  -예능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프로그램 PD님이 먼저 미팅을 제안하셨어요. 제가 가진 이미지는 예능과 맞지 않는데도 캐스팅하는 이유를 여쭤봤어요. 사실 저도 궁금했거든요.(웃음) 예능에 출연한 적이 많이 없어서 제가 궁금했대요. 예능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연기와 예능은 차이가 클 것 같은데.

  “제 성격상 ‘쪽대본’이 나와도 잠을 못 자요. 연기할 때만큼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촬영할 때 체력도 정신도 많이 힘들어요. 처음에는 예능프로그램 대본도 다 외웠죠. ‘이 대사는 이 타이밍에 이야기해야지! 저 사람 대사가 끝나면 내가 이걸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니까 촬영 중에 저 혼자 얼어 있더라고요. 다른 출연자들은 웃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요새는 대본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자연스럽게 진행 하려고 해요.”

  -연기할 땐 만반의 준비를 하는 편인 것 같다.

  “맞아요. 그리고 항상 떨려요. 특히 첫 촬영장에서 그래요. ‘내가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나’라고 매번 생각하죠. 하지만 준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요. 제가 부잣집 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몸에 딱 맞고 비싼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바닥에 편히 앉기가 힘들었죠. 추위와도 맞서 싸워야하고요.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람들은 겉옷을 완전히 입지 않는 거 아시죠? 옷을 어깨에 걸치고 기사 분들이 옷 받아주잖아요.(웃음) 핫팩도 티가 나서 옷에 붙일 수 없었고요. 하이힐을 신다 보니 발가락도 매번 얼기 십상이었죠.”

  -촬영 중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일 텐데.

  “긴장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촬영할 때는 잘 아프지 않아요. 대신 촬영이 끝나면 심하게 앓는 편이죠. 항상 그랬어요.”

  -힘들어도 약 15년 동안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연기가 재미있어요. 지금은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그래서 길 한복판에서 촬영하면 “유인영이다”, “촬영하나 봐”라고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근데 신인 시절에 한번은 촬영하려고 하는데 “쟤 누구야?”라는 말이 딱 들리는 거예요. 당황스러웠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연기하는 순간 자체가 좋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죠. 또 촬영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거워요.”

  -활발한 성격인가 보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낯을 많이 가리고 말도 잘하지 못했으니까요. 신인 시절 저를 인터뷰했던 기자님들이 대놓고 싫어하기도 했죠. 질문에 ‘네, 아니요’로만 대답했거든요. 그래서 배우로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근데 아까도 말했듯이 고민 끝에는 항상 연기가 재밌다는 사실만 남더라고요. 내성적인 제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죠.”

  -데뷔 후 첫 촬영부터 연기가 재밌었나.

  “네. 한 시간 분량의 단막극에 출연했던 게 기억나네요.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이 대부분 신인이었거든요. 에너지 넘치는….(웃음) 촬영이 없을 때도 같이 밥 먹고 그랬어요. 감독님도 정말 좋으신 분이었죠. 대화도 많이 했거든요. 덕분에 ‘대사를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니요. 관심이 아예 없었어요. 학생 때 인기도 없었고 정말 내성적이었거든요. 발표하려고 손 한번 들지 못하는 그런….”

  -배우의 길을 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모델로 데뷔했어요. 혹시 ‘길거리 캐스팅’ 아세요? 옛날엔 길거리에서 키 크고 체형이 마른 사람을 보면 모델 해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고등학생 때도 키가 큰 탓에 길거리에서 명함을 많이 받게 됐죠. 받아온 명함을 부모님이 보시고는 모델 학원에 등록시켜줬어요. 사실 지금까지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죠. 학원에 다닐 때도 ‘이 일이 나랑 잘 맞을까’ 생각했었거든요.”

  -배우로 직업을 전향하게 된 이유는.

  “또래 모델들보다 일을 더 많이 했어요. 생전 받지 못한 돈을 버는 게 즐거웠죠. 그러다가 소속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당시 소속사는 제가 연기하기를 원했고요. 이후 연기 오디션에 도전하게 됐죠.”

  -모델 일부터 연기까지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아니에요. 첫 연기 오디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제대로 연기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어요. 모델로서 절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았고….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죠.(웃음) 저한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그때의 충격으로 연기에서 발 떼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아, 이렇게 해선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오디션 기회를 한번만 더 달라고 감독님께 부탁드렸죠. 그래서 제가 도전하는 역할의 대사는 물론 주인공 대사까지 다 외웠어요. 감독님이 시키는 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시 오디션에 갔죠.”

  -끈질기게 도전했던 이유는.

  “저한테 화가 났어요. 두번째 오디션에서도 실수하면 연기를 못한다는 꼬리표가 절 따라다닐 것만 같았거든요. 여기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은 기억해달라고 말씀드렸죠. 다행히 며칠 후에 같이 일해 보자고 감독님께 연락이 왔어요. 노력 끝에 좋은 결과를 얻어 굉장히 만족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계속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모델로 일하거나 연기를 했더라도 욕심이 없었을 것 같아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하지 않았을까요?”

  -‘욕심’이라고 하면.

  “주인공을 하고 싶었어요. 질투랑 화가 많았거든요. 남들은 연기하고 있는데 저만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요. 드라마를 볼 때면 ‘나는 왜 저 역할에 캐스팅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가 못해서 그런 거야’라며 스스로 상처도 줬죠. 제가 많이 어두웠죠?(웃음) 촬영 현장에서도 욕심이 컸어요. 반사판 조명은 주인공 배우를 더 예쁘게 하는 것 같았죠. 괜히 저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두번째, 세번째 역할이든 본인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은 욕심을 내려놓은 상태인지.

  “네, 욕심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익숙해졌어요.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맡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죠. 저를 다독여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약 15년 동안 배우로 일하면서 성장한 부분 중 하나죠.”

  -생각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스스로 좋지 않은 생각만 하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죠. 정말 다행히도 인복이 좋아 주변에 친한 선배님들이 많이 계세요. 선배님들은 나이가 저보다 많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계셨죠. 그분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진제공 에잇디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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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티 나고 귀티 나는 세련된 외모의 재벌가 아가씨. 안하무인에 욕심 많고 도도한 싸가지 공주.’ 지난 2007년 방영한 KBS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서 유인영 동문이 맡은 역할 소개 일부다. ‘차가운 도시 여자’ 같은 역할을 여러번 맡아서일까. 도도하고 차가운 캐릭터를 유인영과 동일시하는 대중이 많았다. 그는 “본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며 솔직한 마음을 훌훌 털어냈다.

  -악역 캐릭터 이미지가 강해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100회 분량의 일일드라마에서 악역을 처음 맡았는데 자꾸 소리를 질러야 하는 거예요. 여기 가서 싸우고 저기 가서 때리고…. 처음에는 오히려 재밌더라고요?(웃음) 평소 하지 못한 말들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100회 내내 화가 나 있는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촬영이 없을 때도 예민한 저를 발견했어요. 똑같이 화를 내는 대사를 반복해서 외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예민해 진 거죠.”

  -악역을 연기하는 데 도가 텄겠다.

  “예전에는 악역을 연기할 때 소리 지르거나 짜증만 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경력도 쌓이다 보니 다양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화를 내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거나…. 오히려 연기가 더욱 어려워졌어요. 동선이든 상대와의 호흡이든 아는 게 많아지니까 신경 쓸 것도 많아졌죠.”

  -역할과 실제 모습을 착각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처음에는 싫었어요. 대중이 저를 그렇게 보는 것도, 악역만 맡게 되는 것도 별로였고요. 미워 보이지 않으려고 악한 모습을 100% 보여주지 않았죠. 배우 김서형 선배님은 모든 걸 다 쏟아부으며 악역을 완벽히 소화해냈잖아요. 저는 그분보다 애매하게 60~70%만 연기했던 것 같아요. ‘100%를 보여주지 않아 매번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되나?’라고 고민하게 됐어요.”

  -고민에 대한 답을 내렸는지.

  “혼란스러웠어요. 지금도 막상 악역을 맡게 되면 100%를 보여주지는 못할 것 같아요. 제 역할만큼은 제가 사랑해야만 할 것 같거든요. 저조차 캐릭터를 미워하면 너무 안쓰럽잖아요. 다른 언론 매체에서 악역 맡은 소감을 물을 때면 항상 ‘사실 이 캐릭터가 마음은 착해요’라고 답해요.(웃음)”

  -연기하고 싶은 다른 역할이 있다면.

  “맡은 역할과 평상시 모습 간 차이가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원래 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화장도 안 하고 편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네요.”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는.

  “음…. 하나만 꼽자면 드라마 <기황후>의 ‘연비수’요. 그전에는 사극 장르의 캐스팅 라인업에 들어가기는커녕 미팅도 없었어요.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목소리 톤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사극과 쪽머리가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있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기황후>에 특별출연하게 됐어요. 3회만 출연하기로 해서 부담은 덜했죠. 못하더라도 드라마에 큰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한편으로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주변에서 사극은 어려울 거라는 말에 정말 겁나더라고요. 평생 사극에 출연 못 할 줄 알았죠.(웃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생각보다 역할에 잘 어울렸다는 반응이었어요. 대부분 의외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출연하게 됐고 시청률도 잘 나왔죠. 유달리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연비수’에게 애착이 가나 봐요. <기황후> 이후 다른 사극 드라마 라인업에 들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출연도 했었죠.”

  -선입견을 극복하려고 부지런히 노력했을 것 같다.

  “이미 드라마가 촬영 중인 상황에서 갑자기 출연하게 돼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말도 타야 했고 무술도 연습해야 했죠. 사극에 어울리는 목소리도 필수 조건이었죠. 책 읽는 것처럼 들리면 안 되잖아요. 원래보다 낮은 목소리가 너무 어색해 녹음도 하면서 주변 선배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죠. 준비할 게 많았지만 욕심내서 다 했어요. 승마를 너무 많이 연습하는 바람에 꼬리뼈 쪽에 상처가 나기도 했죠. 덕분에 말 타는 장면에서 대역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웃음)”

  -이후 사극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는지.

  “사극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체력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무서워요. <기황후> 촬영 당시 너무 추워서 고생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또 가채가 너무 무거워서 탈모가 오기도 했어요. ‘M자형’으로…. 예전의 가채는 특히 더 무거워서 목 디스크가 걸리는 배우분들도 있었죠. 가채를 쓰면 눕지도 못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거든요. 그렇지만 사극이라는 장르는 그만큼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제공 에잇디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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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까지 딱 두 과목 남았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졸업이 늦어졌다. 유인영 동문은 스스로 ‘후배에게 자랑스러운 선배’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연기를 지망하는 후배에게만큼은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차분하던 목소리가 커졌다. 달콤한 말로 허황한 꿈을 꾸게 하기 보단 쓴 소리로 후배를 단단하게 만드는 그였다.

  -100주년 기념식 때 무대를 빛내줬다.

  “창피했어요. 자랑스러운 중앙인이라고 나서 인사드려도 되는지….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다면 떳떳할 텐데 말이죠. 아직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숨기고 싶어요.(웃음)”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졸업이 늦어진 게 아닌가.

  “일 때문에 휴학을 한건 사실 핑곗거리라고 생각해요. 처음 입학했을 때 졸업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지는 않았거든요. 학업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러워요. 그렇지만 수업에 갔을 땐 열심히 했어요.”

  -졸업은 언제 할 예정인지.

  “이번학기에 꼭 할 거예요. 이수해야 할 과목이 딱 두개 남았거든요. 오늘도 학교에 잠깐 들려 수강신청하고 왔어요. 3학년 1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열심히 다닌 보람이 있더라고요. 촬영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다녔죠. 사실 그것도 동기 덕분이에요. 그전까지 제대로 다닌 적이 없어서 수강신청 하는 방법도 몰랐거든요. 동기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말 빽빽하게 시간표를 정해주었죠. 저는 모든 대학생이 그렇게 강의 듣는 줄 알았어요.(웃음)”

  -현재는 동기도 대부분 졸업했겠다.

  “맞아요. 이제 교수님과 나이가 비슷해질 것 같아요.(웃음) 대신 후배들과 친해졌어요. 제가 나이도 많고 밥을 사줄 수도 있어 소소한 재미가 있죠.”

  -배우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은 학교생활이 전부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일 수 있거든요. 학교에서 연기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는 이유로 우쭐대지 않았으면 해요. 또 힘들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말길 바라요. 연기하고 싶은 후배들은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히 크거든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요.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치열하잖아요. 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야 해요. 만약 연기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쪽 분야에만 매달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죠.”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는 유인영 동문은 마치 수학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는 학생 같았다. 스무살 데뷔 후 장거리 여행도 못했던 그는 이제 ‘여유’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본인의 생각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에도 여유가 느껴졌다. 그가 카페 창밖을 내다봤다.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살며시 웃음 짓는 그의 모습이 유리창에 어렴풋이 비쳤다.

  -휴식기엔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혼자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아요.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레고도 즐겨 하죠. 먹는 걸 좋아해서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모델 출신이라 운동도 열심히 하죠. 요즘에는 일 년에 한번 씩 여행을 가려고 해요. 이전에는 불안해서 일 년 이상 쉬어본 적도 없고 멀리 떠난 적도 없었어요. 여행을 간 사이 미팅이 생길까 봐 그랬죠. 그러다 우연히 촬영차 해외에 갈 때마다 모은 항공 마일리지를 보게 됐어요. 한번도 쓴 적이 없더라고요. 그 마일리지를 모두 써서 이탈리아에 20일간 여행을 갔어요. 그곳에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찾게 됐죠. 못 보던 걸 볼 때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 이후에도 칸쿤과 하와이에도 갔어요. 이제는 여행의 즐거움을 상상해요. 여행을 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상상만으로도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다음번에는 스페인을 가고 싶어요. 관련 책도 혼자 찾아보고 있고 마일리지도 얼마가 모일지 기대하는 중이죠.”

  -이탈리아에서 어떤 걸 느꼈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전망을 한참 내려다봤죠.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어요. 그런데 한국에 다시 돌아오니까 불안하더라고요. 빨리 일해야 할 것만 같고…. 그렇지만 욕심을 많이 내려놨어요.”

  -앞으로의 계획도 정리해봤는지.

  “4개월 전에 회사를 옮겼어요.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어서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변화가 어려울 것 같아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요새 비슷한 역할에 캐스팅이 돼도 거절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지금껏 해온 역할과 다른 역할을 맡게 될 때까지 조금 기다리기로 했어요. 지금은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기간이거든요.”

사진제공 에잇디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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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중앙대란?

  “애틋한 존재에요. 중앙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정말 행복했죠. 그렇지만 힘들기도 했어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거든요. 그래도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업을 놓지 않다 보니까 학교가 어느새 편해진 느낌이에요. 비록 학교에서의 추억은 없는 편이지만요. 학교 관련 일이라면 귀 기울여 듣게 되고 도와주고 싶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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