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그렇게 두려워한다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7.09.17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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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죠. 그런 변화의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우리 사회의 티핑 포인트가 되고자 합니다. 오늘은 ‘안티페미니즘’에 티핑 포인트를 찍어보겠습니다. 안티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향한 반감과 혐오를 의미합니다. 최근 페미니즘이 하나의 큰 쟁점으로 논의되고 있는 만큼 안티페미니즘 역시 가시화되고 있는데요. 이는 대학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내 페미니즘 조직을 향한 테러나 페미니스트 개개인을 저격하는 악의적인 비방까지. 대학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을 숨기고, 두려움에 떨면서 생활해야 하죠. 그렇다면 대학가의 안티페미니즘은 어떤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틀어막고 있는지, 대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실태를 파헤쳐봤습니다.
 
 
안티페미니즘 대학에서 살아남기
 
지난해 7월 19일, 넥슨의 온라인 액션 게임 ‘클로저스’에서 ‘티나’의 목소리를 맡았던 김자연 성우가 교체됐다. 단순한 성우 교체로 보였던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김자연 씨가 올린 SNS를 문제 삼은 게임 유저들이 성우 교체를 주장한 것이다. 김자연 성우는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가 새겨진 티셔츠를 인증했기 때문에 그녀가 ‘남성 혐오를 조장하는 메갈리안’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는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사회에서 매장당했고 그를 지지한 사람들마저도 신상이 공개돼 테러를 당했다. 
 
  이러한 사회의 안티페미니즘은 대학가에서도 그대로 발견됐다. 페미니즘 조직에서부터 페미니스트 개인에 이르기까지, 안티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대학 내 안티페미니즘 피해 사례
 
  표적이 되는 페미니즘 조직
  지난 4월 여성주의 독립언론 ‘녹지’가 대량으로 폐기된 사건이 발생했다. 40여 권의 녹지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녹지 측은 CCTV를 확인한 결과 밤 9시쯤 남성 2명이 만나 녹지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린 정황을 확인했다. 녹지 A 편집장은 녹지 투기 사건을 안티페미니즘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녹지 투기 사건은 단순히 학생자치활동을 침해한 사건이 아니에요. 우발적인 행동도, 실수도 아닌 안티페미니즘 행위죠.” 
 
  안티페미니즘을 경험한 것은 녹지뿐만이 아니다.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 소모임 ‘참을 수 없는 페미의 즐거움(참페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참페미 측에서 준비한 학내 성차별을 비판하는 ‘이 많은 말들을 누가 했을까’ 벽보가 갈기갈기 찢겨나간 것이다. 범인은 학생들이 거의 없는 밤에 벽보를 찢고 그 위에 과자를 흩뿌려 놓고 도망쳤다. 이후 참페미는 이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게시했지만 그 위에는 ‘꿀빠니즘’, ‘X지 찢어지는 소리’ 등의 여성혐오적인 낙서가 쓰였다. 
 
  참페미 소속의 B 학생은 연이은 테러 사건을 치졸한 안티페미니즘 행위라고 평했다. “본인도 당당하지 못한 걸 알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테러라는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폭력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확인시키려 했던 거죠.”
 
  폭력을 통해 이뤄지는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는 페미니스트들을 두려움에 빠트렸다. 경희대 여성주의 웹진 ‘순’은 특정 안티페미니스트로부터 신상의 위협을 받았다. 총여학생회(총여)와 페미니즘 단체를 깎아내렸던 남학생은 총여에게 순 회원의 개인번호를 내놓으라며 겁박했다. 또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식에 순의 구성원이 참여했을 것이라며 추모식에 참여한 여성들의 사진을 무작위로 찍어 남성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게시하는 등 도를 넘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이렇게 노골적인 혐오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구성원들은 ‘저 사람이 진짜 칼 들고 나타나면 어떡하냐’며 겁에 떨었어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여도 반복해서 겪으면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죠.” 순 C 편집장은 안티페미니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구성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토로했다. 테러의 경험으로 인해 구성원들은 ‘욕먹을까 봐’, ‘또 위협을 느끼게 될까 봐’ 등 두려움으로 페미니즘 활동에 있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됐다.
 
  너… 설마 페미니스트야?
  대학가에서 안티페미니즘의 화살을 맞는 것은 페미니즘 조직뿐만이 아니다. 페미니즘 조직에 속한, 혹은 속해있지 않더라도 페미니스트라면 모두 그들의 과녁이다. 페미니스트 개인을 향한 혐오는 특정 페미니스트를 낙인찍고 신상을 공개해 인신공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A 편집장은 안티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를 알아보고 그를 ‘메갈’로 지목한 일에서 공포를 느꼈다. 그와 같은 녹지 소속의 선배는 학내 강남역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부스에 참여했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메갈이네’하고 반감을 드러내며 부스 앞을 지나갔다. 당시에는 여럿이 함께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마주친 그 남학생은 ‘그때 그 메갈 아니야?’라며 선배를 지목했다. “내가 혼자 있을 때,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은 사람이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공포를 느낄 만한 일이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묻지 마 테러’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균관대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 역시 신상 공개의 두려움 때문에 모임을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은의 D 학생은 페미니스트임이 드러날 때 겪을 수 있는 테러들을 우려했다. “다른 페미니즘 조직으로부터 인터넷에 회원들의 신상이 유포돼 큰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포스터나 대자보를 붙일 때 밤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죠.” 단지 페미니즘을 논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에게 낙인을 찍고 그들을 혐오하는 행위는 페미니스트로 하여금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페미니스트 E 학생은 안티페미니즘을 목격하면서 스스로의 페미니즘을 검열한 적 있다. E 학생은 SNS에서 친구들이 페미니즘을 깎아내리는 게시글에 동의를 표현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그들과의 개인적 유대가 멀어졌음을 느꼈다. “내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게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도 내가 상대방이 수용하지 못할만한 과격한 주장을 했는지, 비이성적으로 분노하지는 않았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혐오를 용인하는 ‘혐오 사회’
  대학 내에 만연한 안티페미니즘을 가능케 한 것은 혐오를 용인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A 편집장은 한국 사회가 아직 혐오를 논의할만한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녹지 무단 투기와 안티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기사에는 그게 왜 문제인지 의문을 표하는 반응 혹은 여성혐오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녹지를 버린 사람들이나 그런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이나 극단적인 혐오 세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혐오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사람들의 생각이 용인되기 때문에 행동으로 일어난 거죠.”
 
  B 학생 역시 사회가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차별이나 혐오에 대해 힘겨움을 토로하고 이를 바꾸려는 게 페미니즘이잖아요. 하지만 사회에선 페미니즘을 ‘피해자 코스프레’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이 피해를 호소했을 때 사회에선 ‘너만 힘들어?’라며 여성의 목소리를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입을 막고 그런 분위기에 동조된 대학 역시 안티페미니즘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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