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신음하는 대학가
  • 김강혁 기자
  • 승인 2017.09.17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생, 혐오를 논하다
 
‘여성해방운동’, ‘꿀빠니즘’, ‘성평등’, ‘여성우월주의’, …. 극명하게 다른 뜻을 가진 표현이지만 모두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페미니즘’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최근 페미니즘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표현들에서 알 수 있듯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학생들의 인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중대신문에서 대학생 총 28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극과 극으로 갈린 시선
  전체 응답자 총 280명 중 약 98.9%(277명)의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할 정도로 페미니즘은 대학가의 뜨거운 화두다. 페미니즘을 들어봤다고 응답한 학생 중 약 45.1%(125명)가 페미니즘이 대학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중복응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의 습득과 가치관 형성(약 87.2%, 109명)’, ‘스스로의 삶에 대한 만족도 제고(약 45.6%, 57명)’ 등을 그 이유로 밝혔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여성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제 모습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어요. 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인지하고 비판할 수 있게됐죠.” 최희정 학생(숙명여대 중어중문학부)은 페미니즘을 통해 이전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
극명한 온도차
 
  ‘대학 내 성차별 해소(약 44.8%, 56명, 중복응답)’를 위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다. 최명수 학생(정치국제학과 3)은 페미니즘이 성차별을 타파하고 성별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모든 인간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해요. 페미니즘은 결국 불합리한 차별에 순응하지 말고 직접 행동하도록 주문하는 운동이죠.”
 
  반면 페미니즘이 대학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학생(약 20.6%, 57명)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역차별 조장(약 71.9%, 41명, 중복응답)’, ‘불필요한 갈등 유발(약 66.7%, 38명, 중복응답)’ 등을 꼽았다. 실제로 몇몇 응답자는 일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박재우 학생(수학과 1)은 현재의 페미니즘은 본래 취지에서 이탈했다고 답했다. “페미니즘의 본래 목적인 ‘성평등’은 필요해요. 다만 요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무 급진적이고 여성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이 대학 사회에 혼재해 있는 것이다.
 
  만연한 혐오를 마주하다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혐오로 표출됐다. ‘대학 내 안티페미니즘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77명 중 약 82.3%(228명)로 압도적이었다. 안티페미니즘은 대체로 ‘페미니즘 활동 및 발언에 대해 비판적인 언어 사용(약 80.7%, 184명, 중복응답)’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공유(약 75%, 171명, 중복응답)’ 등으로 표출됐다. 안티페미니즘의 주체를 묻는 질문에는 ‘일반 학생’(약 91.7%, 209명, 중복응답)이 가장 많았다.
 
  “평소에도 거침없이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페미니즘을 비방하는 걸 종종 듣게 되곤 하죠.” 최명수 학생의 대답처럼 안티페미니즘은 현실에서 빈번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실제로 대학에서 페미니즘 동아리의 대자보가 훼손되고 페미니즘 활동을 거부하는 상황은 흔한 일이 됐다. 페미니스트를 향한 마녀사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혐오는 현재진행형
무엇이 우리를 엇갈리게 만들었나
 
  이외에도 응답자들은 지금까지 경험한 안티페미니즘 사례들을 쏟아냈다. ‘술자리나 과방에서 꼴페미, 페미나치 등 혐오 표현을 들은 적이 많아요’, ‘페미니즘 학회에서 구성원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본 학생들이 ‘꼴페미들, 끼리끼리 논다’는 악담을 나누는 걸 봤어요’,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SNS에 드러낸 선배에게 사상이 이상하다며 뒷담화를 했어요.’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은 SNS나 익명 게시판에서 안티페미니즘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본 기사를 위해 설문지를 익명 게시판에 게시했을 때도 ‘페미는 여성우월주의다’, ‘역겹다’ 등의 댓글이 게시됐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약 20.6%, 47명, 중복응답)’ 역시 안티페미니즘의 주체로 지목됐다. “강의 중 교수님께서 ‘중국 여자는 기가 세니 결혼하지 말라.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말했어요. 교수라는 지식인의 위치에서 그런 발언을 당당히 하는 모습이 당황스러웠죠.” 김정은 학생(가명)은 강의실에서 표출된 교수의 여성혐오적인 발언에 실망했다고 답했다. 이렇듯 여성과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가 강의실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져 왔다.
 
  풀어야 할 숙제
  무엇이 대학가를 안티페미니즘으로 물들게 했을까.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안티페미니즘의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너무 과격하게 주장하기 때문에(약 75.6%, 34명, 중복응답)’를 꼽았다. 조수영 학생(가명)은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워마드’ 같은 일부 강성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비하하는 게시글을 통해 남성혐오를 조장하고 있어요. 그들이 주장하는 방식은 너무 과격해요.”
 
  이에 반해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중복응답을 통해 안티페미니즘이 존재하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약 60.7%, 111명)’를 선택했다. “페미니즘의 본질은 성평등으로 나아가는데 있지만 이를 여성우월주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젠더 교육이나 캠페인을 통해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현수 학생(경영학부 3)은 안티페미니즘이 페미니즘 개념의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오해하거나 과거에 머무르거나
이해와 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야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도 안티페미니즘의 이유 중 하나였다. 약 53.6%(98명, 중복응답)의 학생은 기존의 성차별적 고정관념이 안티페미니즘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강현경 학생(독일어문학전공 2)은 유교적 여성관이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과거의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여성의 권리 신장에 위기의식을 느껴요. 그들이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혐오가 존재하죠.”
 
  혐오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거부감을 느끼고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식과 대화가 통해야 할 대학에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는 묵살된 채 안티페미니즘이 자행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