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날’에 숨어 사는가
  • 김예령 기자
  • 승인 2017.05.14 0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연한 생리권
 
사회는 외면했고
우리는 오인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정치적 논의의 장으로

드라마 ‘초인가족 2017’에서는 아빠가 딸의 첫 생리를 축하하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생리 축하합니다’라며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딸은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아빠에게는 아내와 장모의 꾸지람만이 남았다. 이는 생리를 숭배하는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현대사회의 모순적 인식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 인식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사회가 은폐한 ‘그날’
  생리는 오랜 시간 고착화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정의돼왔다. 남성을 표준으로 삼는 사회에서 여성의 생리는 비정상으로 여겨져 공론화되지 못하기 일쑤였다. 박경태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남성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생리권이 억압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리가 원래 부끄러운 게 아니라 소수자인 여성이 하는 것이기에 생리가 부끄러운 것이 됐어요. 남성이 생리를 했다면 당연히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겠지요.” 생리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이것을 누가 하는가에 따라 다른 가치 판단이 부여된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연구교수는 사회가 성에 대한 수용의 폭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쉽게 수용되지만 생리통은 꾀병이나 여성의 약자적 지위를 활용하는 꼼수로 낙인찍힌다. “여성이 생리통을 호소하는 것을 꼼수라 여기는 시선은 생리를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 이끌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죠.” 결국 사회는 본인의 신체에 대한 여성의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 침묵을 불편에 대한 용인으로 해석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합팀 제이 팀장은 남성 중심으로 설계돼있는 구조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는 방법으로써 생리를 부정했다고 설명했다. 봉건사회에서는 생리를 이유로 여성의 사회참여를 금지한 반면 산업혁명 이후에는 생리로 인한 고통을 무시하고 여성에게 노동력을 강요한 모순적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 “생리를 하면 심정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사회참여를 제한한 일도 있었어요. 여성의 사회참여를 제한하기 위한 명분으로 생리를 활용한 것이죠.”

  여성의 몸 자체를 성적인 것으로 환원해 이해하는 사회문화도 여성의 생리를 억압하고 있다. 가령 질 내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탐폰, 생리컵 등의 생리용품은 여성의 질에 직접 삽입된다는 이유만으로 불순한 것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생리컵을 추천하는 글에는 ‘성 경험이 있어야만 생리컵을 사용할 수 있다는데’, ‘생리컵으로 오르가슴을 느끼려는 것이냐’라는 등의 여성 혐오적인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거대한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오랜 시간 생리권을 억압받은 여성들은 사회 구조에 저항하기보단 자신을 단속해왔다. 윤김지영 연구교수는 생리라는 자연 현상을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여성 스스로의 자기 혐오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사회적으로 생리가 부정당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여성은 이를 자신의 열등성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생리권은 인권입니다”
  생리를 부정하는 현실은 결국 여성의 생존권마저 위협한다. 생리용품 구매 비용이 온전히 여성 개인의 몫이 되면서 경제적 부담은 날로 증가한다. 생리 공결제와 생리 휴가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폐지 주장은 교육과 노동의 장에서 생리하는 여성을 죄인으로 만든다. “대다수가 겪는 생리 문제를 사회적 논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사회구조가 여성의 건강권, 교육권, 노동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어요.” 노동당 여성위원회 하윤정 운영위원은 오늘날 생리하는 여성에게 개개인의 차원보다는 사회 보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권에 대한 침해가 일상 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현재의 처우는 명백히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경태 교수는 생리하는 여성의 문제가 인종·성별·장애 차별과 동등한 선상에서 논의돼야 할 인권문제라고 말했다. 개인의 신체와 인종처럼 생리의 여부 또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생득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한 개인이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생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인권 개념으로, 전근대적 잔재라 할 수 있어요. 생리권은 엄연한 인권의 일부로서 존중받아야 해요.”

  생리권을 인권으로 주장하는 이들에게 사회는 항상 근거를 요구한다. 대개 주장은 근거를 통해 설득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김지영 연구교수도 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근거 부족으로 판단되면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생리권인가요? 그렇다면 근거의 충분함을 심판하는 자격은 누구에 의해 전유 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죠.” 인류가 존재했을 때부터 그중 절반이 겪어온 경험임에도 지금까지 근거를 요구받는 현실의 기이성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子)궁 아닌 자(自)궁으로
  모두가 생리를 자연스럽게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하윤정 위원은 생리공결권을 정책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학교에 생리공결제를 도입하고 직장에선 생리휴가를 유급으로 지원해야 해요. 생리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여성이 생리를 부담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죠.”

  윤김지영 연구교수는 의료기술 발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생리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접근을 용이하게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여성들이 진통에 내성이 생길까 두려워하거나 생리 중단 약을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돼요.” 또한 이러한 의학기술이 모든 계층의 여성에게 개방될 때 여성의 사회적 능률과 신체·심리적 에너지 재분배가 원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생리권 보장을 위해 대다수 전문가가 정책과 더불어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식 개선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교육이다.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 쓰인 생리가 아닌 당사자인 여성에 의해 쓰인 생리의 역사가 학교나 대중매체에서 다뤄질 때 잘못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 또한 생리를 모성의 의무로 여기는 교육이 아닌 다양한 생리권 문제에 대한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제이 팀장은 성별을 불문하고 생리에 관한 사소한 언어 표현에 어떤 함의가 있으며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인지하고 행동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리가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한 만큼 사소한 생활에서부터의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생리 앞에서 당당하라는 요구가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하지만 생리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의 권리여야 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