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3.23 목 13:41
학술문화교수님과 강의실 밖 산책
새것을 알기 위해 옛것을 탐하라고혜경의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주보배 기자  |  bobe@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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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0  02: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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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전문가 설민석 강사는 한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역사다”고 말했다. 여기 과거의 이야기가 현대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도움을 준다고 여기는 또 다른 이가 있다. 바로 이명현 교수(국어국문학과)다. 그는 고전(古傳)중에서도 옛이야기들을 사랑한다. 옛이야기가 현대에 전해주는 유효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번주 강의실 밖 산책에서는 이교수와 함께 옛 이야기의 풍성한 보따리를 풀어봤다.

 
   
 
절대 유치하지 않는 우리 옛이야기는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전기수는 조선 후기 도시를 중심으로 왕래가 많은 곳에서 소설을 읽어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던 낭독가였다. 전기수가 저잣거리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 때면 그 주위를 청중이 빙 둘러쌌다는 기록이 있다. 종이가 귀할뿐더러 글을 읽을 줄 모르던 당대 민중들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질 때마다 저잣거리에 전기수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전기수가 저고리 품속에 넣어 다녔던 소설책들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고전소설에 대해서는 ‘재미없다’, 민담과 같은 설화는 ‘유치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명현 교수는 현대인들이 고전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국어 교과서 속 ‘문제풀이용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찬찬히 살펴본다면 무궁무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요했던 추위가 조금은 물러간 가을의 끝 무렵에 이교수와 함께 조선 후기 저잣거리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봤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여러 권의 책을 고민했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 이 책을 골랐어요. 고전문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옛날 것,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걸 느껴요. ‘화석’, ‘박제’라는 단어로 과거의 것으로 못 박아버리는 경우도 있죠. 그러나 ‘고전(古傳)’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기록될 수 있었다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무언가가 이야기 속에 있었다는 증거라는 거죠. 이 책을 통해서 고전문학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셨어요.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요?
  “이 책은 고전문학을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이 더해진 작품이에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더해졌죠. 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심청전’, ‘콩쥐팥쥐’, ‘나무꾼과 선녀’ 등 옛이야기를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어요. 일단은 고전문학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궁금해서 집었는데 ‘옛이야기 속의 여성성’이라는 신선한 해석이 담겨있어서 더욱 좋았죠.”
 
  -이 책에서는 심청전 속 심봉사를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인물이면서 여성성과 단절된 인물로 보았어요.
  “심봉사는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라 ‘맹인’이에요. 저는 맹인이라는 장치가 아버지가 속한 세계, 그러니까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맹목(盲目)적 세계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맹목은 ‘먼눈’이나 ‘사리에 어두운 눈’을 뜻하잖아요. 당대 사회의 지배적인 유교 질서는 이처럼 눈이 먼 채로 하나의 목적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제도가 아닐까 싶어요. 이처럼 아버지와 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가부장적인 질서와 그 속에서의 여성’이라는 해석 방식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인물은 바로 심청이에요.
  “맞아요. 맹목적인 아버지의 세계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것이 그 세계에 속한 이가 아니라 어린 딸의 희생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대목이죠.”
 
  -저자는 심청이가 인당수로 뛰어들었던 건 ‘희생’이 아니었다고 말해요.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희생은 선택권이 주어진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심청이는 선택권이 없었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를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고 아버지를 살리자니 자신의 목숨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봤죠. 그러나 저는 심청이가 자발적으로 인당수행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심청전은 여러 이본이 존재해요. 소설 심청전의 이본 중에는 심청이가 자발적으로 희생을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 나와요. 바로 장승상 댁 부인이 심청에게 수양딸로 들어오면 공양미 삼백 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는 부분이에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인당수에 빠져 죽지 않아도 됐던 거네요.
  “맞아요. 그렇지만 장승상 댁 부인의 제안을 거절하죠. 여기에 대해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저는 심청이가 노력 없이 얻은 대가로는 부처님을 감복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희생해야만 부처님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거라고 심청 스스로 판단했다는 거죠. 중요한 건 심청이는 궁지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은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한 인물이라는 거예요. 죽음을 선택한 것도 ‘선택’이니까요.”
 
   
 
 
 
  -이제 콩쥐팥쥐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저자는 콩쥐를 여성영웅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라고 보았는데 잘 공감이 되지 않았어요.
  “‘콩쥐는 여성영웅인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영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요. 영웅은 어떤 존재일까요?”
 
  -영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과 대결해 싸워 이기는 모습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칼을 휘두르며 강한 적과 싸우는 것은 남성영웅이에요. 물론 홍계월전의 주인공인 홍계월처럼 여성이 남성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그런데 그런 모습은 진짜 여성영웅이 아니라 여성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남성이에요. 당대에서는 여성이 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이죠.”
 
  -여성영웅은 어떤 모습일까요?
  “콩쥐팥쥐에서 콩쥐는 계모가 부여한 시련을 극복해나가요.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마당에 쌓아 둔 엄청난 양의 볍씨의 껍질을 까죠. 당대 실제 여성들이 했던 일로 시험을 치른 거죠. 저자는 이렇게 여성이 여성적 가치를 드러내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여성영웅적 면모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진짜 당대의 입장에서 여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런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콩쥐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조력자의 도움이었어요.
  “위기를 극복하는 데 조력자의 도움이 컸다는 건 분명해요. 그렇지만 콩쥐는 본격적으로 지시를 받기 전에도 시련을 겪었어요. 계모와 팥쥐로부터의 괴롭힘을 참고 온갖 집안일과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죠. 콩쥐가 계모와 팥쥐에게 그렇게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견뎌 내려고 노력했기에 ‘조력자의 도움’이라고 하는 보상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저자의 페미니즘적 시각은 나무꾼과 선녀를 해석할 때 가장 두드러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여성’에 대해 가장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대목이 바로 나무꾼과 선녀에 대한 해석이었어요. 나무꾼은 선녀와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선녀를 돌아갈 곳이 없도록 몰아넣는 방식을 택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죠. 나의 욕구를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나무꾼은 참 파렴치해요.
  “나무꾼은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선녀와 관계를 맺어요. 그리고 사실 학습 받지 않은 채 남성 내부 집단에서 성장한 남성은 나무꾼과 유사한 방식으로 여성과의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요. 좀 극단적인 경우긴 하지만 포르노처럼 남성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판타지를 생각해봐요.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마치 나무꾼과 선녀와 같죠. ‘나’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성적 혹은 탐욕적으로 대상화하는 거예요.”
 
  -나무꾼은 결국 수탉이 돼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의 결말은 나무꾼은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선녀의 날개옷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서 선녀가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늘로 가버리는 거예요. 나무꾼은 하늘을 바라보며 울다가 수탉이 돼버리죠.”
 
  -다른 결말의 이야기가 있나요?
  “다른 결말은 아니고 수탉유래담이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 앞에 생략된 부분이 있어요. 바로 나무꾼의 천상시련이죠. 선녀가 하늘 위로 올라간 것을 슬퍼하던 나무꾼은 처음 도움을 주었던 사슴을 찾아가요. 사슴은 보름마다 내려오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고 일러주죠. 나무꾼은 천상계로 갔지만 옥황상제와 처형인 다른 선녀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해요. 나무꾼은 인간이고 선녀는 천상계의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나무꾼에게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가 쏜 화살 찾기,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와 숨바꼭질하기 등의 지시를 부여해요. 시험을 통해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거죠.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나무꾼의 천상시련 부분은 구비 전승되는 과정에서 민중 중에서도 여성층이 여성의 입장에 맞게끔 이야기를 추가 혹은 변형했을 가능성이 커요. 똑같이 남자에게도 시련을 주고 자격을 요구하는 거죠. 선녀와의 결합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나무꾼을 다시 선녀와 결합시켰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그렇지만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인 건 본적이 없어요. 
  “나무꾼은 선녀의 도움으로 천상시련을 극복해요. 그렇게 됐으면 이제 기존의 세계로부터 벗어났어야 해요. 남성 욕망의 세계, 남성 기득권의 세계, 남성중심의 세계로부터 말이에요. 여성을 남성의 욕망대로 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고 결정적으로 ‘부모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해요. 근데 여기서 퇴행이 일어나요. 나무꾼은 홀어머니를 보기 위해 천마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는데 선녀는 나무꾼에게 땅에 발을 딛지 말라는 금기를 말해줘요. 그러나 어머니가 준 호박죽을 천마에 흘려 땅에 발을 딛게 되죠. 이 부분은 당대에는 남성이 여성을 고려해서 화목하고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기 어려웠다는 걸 보여줘요. 남성은 부모 세대에 묶여 부모 곁에서 효를 실천해야 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나무꾼과 선녀는 당대 남편이 퇴행하는 이유는 부모세대의 과잉보호와 지나친 사랑이라는 의식도 보여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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