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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없고 책임만 있다
김풀잎 기자  |  leaf@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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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3  03: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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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의 고통이 어떻다는 건 그걸 가져본 여자만이 안다. 모든 질병의 고통은 동정자를 끌어 모으지만 그 고통만은 비난과 조소를 면치 못한다. 사람을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게 인술의 꿈이라면, 여자를 그런 질병 이상의 고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건 나의 꿈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속 일부 구절이다. 과거 강간으로 인해 임신했던 소설 속 ‘나’는 전쟁 직후 미군 부대의 잔재 속 소파수술 전문의로 거듭난다. 임신을 원치 않은 여성들에게 희망이 됐던 인공임신중절 수술만을 30년 동안 한 그에게 사람들은 ‘인간백정’이라 손가락질한다. 현실에서도 임신을 중지한 여성들은 ‘범법자’로 손가락질받는다. 왜 그들이 범법자가 돼야할까. 그 근거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전문가를 만나 이에 대해 들어봤다.

  현실에 직면했을 때
  소설을 현실 속으로 들여오면 여성이 짊어져야 할 것은 오명뿐이 아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진행한 의사와 수술을 받은 여성은 의료법과 낙태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전부터 존재해온 형법이지만 처벌의 당사자가 되는 개인 자격의 젊은 여성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지난 검은 시위가 처음이었다. 백영경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는 과거에 인구조절을 명분으로 낙태가 흔하고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문제적 서사로서 정착이 안 됐다고 말했다. “낙태가 놀라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기에 조직적 운동은 이뤄질 수 없었어요. 괜히 공론화를 시켰다가 잘못될 경우 불법임신중절술마저 못할까봐 걱정할 정도였죠.”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근래에 낙태죄가 논란이 되는 이유로 여성들이 제도와 의식 사이에 괴리를 느꼈다는 점을 꼽았다. “여성의 권리가 제도와 공적 영역에선 상승한 듯 보였지만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여성인권의 실상을 보여주는 현상을 통해 문화와 의식 영역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한 거죠.” 이러한 시점에 낙태 수술이 비도덕적인 행위로 명명되자 여성들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조차 보장받지 못했음을 인지한 것이다.

  여성이라는 ‘죄’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안치용 집행위원장은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 주목했다. “2012년에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을 우려해 합헌이 됐어요.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출산을 통한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한 거죠.”

  그러나 백영경 교수는 낙태는 아무리 막아도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하지 않는 아이의 존재는 여성의 삶을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제한도 문제가 되진 않아요. 오히려 여성을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위험한 낙태로 내몰아 건강권과 생존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죠.” 낙태죄는 낙태율의 감소라는 실효성도 여성의 인권 보호도 모두 놓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 외에도 낙태죄 이면에는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이나영 교수는 낙태에 따르는 윤리적 책임이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지적했다. “성매매 특별법과 성폭력 특별법은 과거에 윤락행위등방지법, 정조에 관한 죄로 불렸어요. 행위 주체와 무관하게 윤리적 단죄는 여성에게만 지워졌죠. 낙태죄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백영경 교수는 낙태죄 자체가 여성 혐오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 임신을 중지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여성의 몸이 존재하는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에요.” 게다가 낙태죄는 여성이 충족시킬 수 없는 사회의 모순된 요구를 지키기를 강요한다. “여성은 성적 쾌락의 도구인 동시에 윤리적인 존재여야 해요. 또 사회는 임신을 하면 당연히 출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회가 원하지 않는 종류의 출산은 피하려고 하죠.” 

  한편 안치용 집행위원장은 낙태죄가 우리 사회가 가진 여성에 대한 전근대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여성이 스스로 낙태를 결정할 수 없다는 법정신 자체에 여성의 도구화가 전제돼 있어요.” 여성이 주체적 판단을 할 수 없는 도구적 존재로 여겨지는 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해질 수 없다.

  정의(正義)로 정의(定義)되어야
  오랜 시간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는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충돌로서 갈등 구도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여성의 결정권, 태아의 생명권 모두 허구에 가까운 권리다. 백영경 교수는 여성과 태아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에 태아의 생명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나영 교수는 여성의 결정권에 내포된 선택의 의미가 왜곡된 측면도 있다고 봤다. “선택에 앞서 선택의 조건을 고려해야 해요. 장애, 인종, 경제적 여건 등에 의해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 놓여있는 여성들이 더 많아요.” 여성의 선택을 위해 생명권을 희생시킨다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임신중지는 ‘재생산의 정의(reproductive justice)’라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산의 정의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아이를 가질 권리, 아이를 가지지 않을 권리, 아이를 존엄하게 키울 권리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 여성에게 국한됐던 재생산권과 달리 남성을 포함해 여성의 더 나은 삶, 건강한 가족 그리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라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정의다. “누구든 어떤 상태로 섹스를 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낳아 편견 없이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조건이 전제돼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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