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좌지우지해온 국가
  • 승혜경 기자
  • 승인 2016.11.13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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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1980년, 2000년 시대별 포스터로 본 한국 정부의 인구정책.
 
루마니아를 24년간 통치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처형은 아직도 ‘폭군의 종말’로 기억되고 있다. 1965년부터 독재자의 정권 아래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수많은 루마니아 국민이 혁명을 일으켜 일어낸 결과다. 그가 실행했던 수많은 정책 중 1966년 낙태 및 피임 전면 금지 정책은 큰 참사를 가져왔다. 해당 정책을 발표한 후 인구는 급성장했으나 10년 만에 출산율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사이 모성 사망률은 800%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국가 부흥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일차원적인 정책은 화를 불러왔다. 현재 한국 또한 형법에서 ‘낙태죄’를 규제하고 있다. 일차원적인 정책은 또다시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언제부터 임신중지의 권리를 법으로서 규제한 것일까.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봤다.

  낙태죄, 그 이면 속으로
  한국에서 낙태를 형법상의 죄로서 규제하게 된 것은 1953년부터였다. 물론 당시에도 낙태 처벌론과 허용론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직후로 출산 장려를 통해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만연했기에 낙태죄가 제정된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보건학)은 한국의 낙태 정책은 인구조절·통제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인구조절의 수단으로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재생산력을 여성이 아닌 국가가 갖고자 했어요. 이 안에는 가부장적 사고, 남성적 사고 및 전통적인 관점이 깔려있는 것이죠.”

  아시아여성학센터 노지은 수석연구원(이화여대 여성학과) 또한 여성의 몸이 국유화돼 왔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몸이 형법으로 규제됨으로써 국가의 소유가 됐죠. 사실 출산을 하고 안 하고는 주체인 여성이 결정하는 것인데도 불과하고요.”

  이처럼 1953년 이후 낙태는 형법에서 범죄로 규제됐다. 그러나 이는 곧 얼마 가지 않아 쓸모없는 법안에 불과해졌다. 1960년대 이르자 인구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늘렸다 줄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에선 과다 인구가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인식됐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인구통제정책을 실행했다. 일정 범위 내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모자보건법을 제정하고자 한 것이다. “1970년대 경제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인구통제정책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했어요. 형법에서 낙태를 엄격히 금하고 있었음에도 경제성장이 더 우선순위였던 것이죠.” 김동식 연구위원은 낙태는 국가권력의 힘으로 나름 처벌의 자율성을 지녀왔다고 봤다.

  1973년 유신체제 아래서 모자보건법이 제정됐다. 형법상 금지된 낙태 시술을 허용하는 예외 범위를 둔 것이다. 또한 ‘월경조절술(M.R.Kit)’을 실시해 8주 이내까지의 낙태를 허용·권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60, 70년대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에 따른 낙태죄 폐지 과정과 같다고 보긴 어렵다. 여성의 건강을 고려해 낙태를 자유화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동식 연구위원은 한국의 낙태 정책은 국가에 의해 독단적으로 시행된다고 말했다. “낙태는 국가에서 그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문제로서 당사자의 권리가 보장돼야 해요. 그 안에서 규제가 필요하다면 일정 부분 재생산·건강권 측면에서 충분히 당사자와 논의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하죠.”

  뿌리를 뽑자
  인구통제정책을 펼치던 1970년대를 지나오며 낙태죄는 사문화돼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또 한 번 인구 정책의 변화가 일어난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인해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부터 출산 감소가 심화했어요. 그 이후 인구장려정책으로 전환할 필요를 느꼈고 2000년대에 들어 국가는 인구장려정책을 공식화했어요.” 김동식 연구위원은 인구장려정책은 사실상 9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낙태를 단속을 강화하고자 했고 생명존중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생명권을 주장하며 임신중지의 권리를 낙태죄로 규정했잖아요. 그런데 국가가 경제발전을 위해서 산아제한정책으로 불임시술을 권유했어요. 이는 모순적인 행동이죠.” 노지은 수석연구원은 여성의 권리는 국가의 정책의 이면에서 무시당해왔다고 의견을 표했다.

  이처럼 낙태 정책은 인구 정책에 따라 변화해왔다. 6·25 전쟁 직후엔 인구 증가를 위해 낙태죄를 형법상에서 규제했지만 이후 경제발전을 위해 일부 낙태를 허용하기도 했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최근까지도 낙태죄를 강화하려 하며 또다시 인구장려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면적인 법안을 재검토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 각 의견을 담아 제정한 정책을 통해 낙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충분한 권리를 누려야 하고요. 물론 그에 따르는 책임성은 그 이전의 교육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김동식 연구위원은 지금 형법에서 규제하는 낙태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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