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청진기'를 진행하고 있는 은정씨
 
 
밭에서 키워낸 신뢰를 
매점에서 나눠 줄게요
 
 
이번주 두 번째 청춘의 꿈은 ‘매점 아줌마’라고 합니다. 청소년과 가장 가까운 곳에 녹아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먼 훗날 대안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의 매점 아줌마가 되겠다는 그녀의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세요?
 
 
 
  -매점 아줌마라, 듣기만 해도 친근해요!
  “그렇죠? 매점이라는 공간은 일단 맛있는 음식이 있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찾아가는 곳이잖아요. 거기서 매점 아줌마가 돼 청소년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서 듣고 싶어요.”
 
  -어떻게 매점 아줌마가 될 생각인가요.
  “50세가 넘어 은퇴한 후에, 제도권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교육을 하는 대안학교를 세울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 학교 매점에서 호호 웃으며 청소년들의 삶에 녹아든 매점 아줌마가 될 거고요.”
 
  -갑자기 은정씨의 청소년 시절이 궁금해지는데요?(웃음)
  “전 되게 별난 학생이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구온난화부터 할렘, 빈곤, 여성문제에 관심을 두다가 한비야 씨의 팬이 됐죠. 매일같이 월드비전 사이트에 접속해 한비야씨의 소식을 찾다가 우연히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 모집 글을 봤어요. 행군단에 참여하면 한비야 씨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지원했죠. 알고 보니 그때 경상북도에서 지원한 중학생이 저뿐이더라고요.”
 
  -할렘, 빈곤 등에 대해 고민하는 중학생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맞아요. 학교에선 친구들과 이런 주제의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어요. 행군단에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3박 4일을 끊임없이 토론했죠. 물 만난 고기처럼요.(웃음) 그중 무엇보다도 나처럼 세상에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덕분에 앞으로도 ‘오지라퍼’가 돼서 세상에 참견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중학생이 그렇게 생각했다고요? 대단하네요.
  “돌아와서 설명회를 열어 저 같은 오지라퍼들을 모았어요. 노인정 방문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RCY(청소년적십자) 경상북도 회장, 전국 부회장, 여성가족부 청소년 참여위원으로 활동했어요. 당시에 성범죄자 조회 법안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가 청소년의 입장에서 법안에 대해 피드백하기도 했죠. 여기저기 막 오지랖을 부리고 다닌 거예요.(웃음)”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학생이었겠어요.
  “아뇨. ‘뭐하는 거니? 학교에서 공부나 하렴’ 이런 말을 더 많이 들었어요. 오직 고3 담임선생님만이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응원해주셨죠.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학교에 밭을 만드신 거예요. 학교 측에서는 ‘고3들 데리고 뭐하는 거냐’고 반대했지만 저희는 상추씨 뿌리고 물주고 신나게 농사를 지었죠.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밭을 일궜어요. 신기하게도 밭에선 교무실에서 못하는 얘기들이 술술 나오더라고요.”
 
  -밭이라는 공간이 선생님과 학생들을 가깝게 해줬나 봐요.
  “맞아요. 상담은 ‘서로 간의 신뢰’와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죠. 제가 ‘매점’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거기서부터예요. 저를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과는 달리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 선생님 덕분에 저도 남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의 행복에 참견하고자 사회복지학부에 진학했어요.”
 
  -대학 진학 후엔 누구의 행복에 참견하셨나요?(웃음)
  “‘청진기(청소년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어요. 청진기는 청소년들의 사연을 받아 함께 고민하는 라디오 같은 인터넷방송이에요. 사연의 주인공만 들어주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청취율에 연연하지 않고 1년 6개월을 소통했어요.”
 
  -이번엔 청소년이 오지랖의 대상이 되었군요.
  “그렇죠. 그래서 또 설명회를 열어 청소년들에게 함께 오지랖을 부릴 동료들을 모았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기 위해 ‘모아(모든 아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게 됐어요. 동아리에서 사회복지학부 전공 체험 캠프를 진행했고 학생들이 전공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할 기회를 만들어줬죠. 우리도 고등학교 때 궁금한 게 참 많았잖아요.(웃음) 다행히 이 캠프가 만족도가 높아서 몇 년째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와. 사회복지학부 고정 행사가 됐네요.
  “그럼 참 좋겠어요. 그런데 사실 모아의 큰 목표는 우리 학부, 우리 학교를 넘어서 지역사회와도 연계된 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시도해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흑석동 놀이지도를 제작했어요.”
 
모아가 아이들을 위해 제작한 흑석동 놀이지도. 사진 제공 홍은정 학생
  -흑석동 놀이지도요?
  “혹시 흑석동 주변에서 놀이터 보신 적 있으세요? 전 없었어요. 어느 날 문득 ‘대학가인 흑석동에 사는 아이들은 어디서 안전하게 놀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흑석동 곳곳을 다니며 아이들의 놀이터를 찾아 지도를 만들고 손수건에 새겼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줬죠.”
 
  -정말 따뜻한 생각이네요. 은정 씨가 앞으로 어떤 오지랖을 부릴지 기대되는 걸요.(웃음)
  “어디에서 제 뜻을 펼치고 있을 거라고 정확하게 말하진 못하겠지만 청소년들의 행복과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두는 참견쟁이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은퇴를 한 후엔 아까 말했듯 오지랖 넓은 매점 아줌마가 되어 아이들을 더 사랑해주고 싶네요.”
 
  -멋져요! 은정 씨에게 청춘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청춘은 요동치는 배를 타고 있는 항해사예요. 한번 항해를 시작했으면 지독한 파도 때문에 멀미가 와도 멈출 수 없죠. 하지만 ‘언젠가 육지에 도착한다’는 막연해도 확실한 믿음이 있잖아요. 그러니 원하는 방향을 향해 키를 잡고 그걸 놓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