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나는 어떤 인간인가
 
 

‘NEWS 모자이크’는 하나의 시사 사안을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보고 이 사안들의 함의를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 보는 기획입니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작은 조각들이 전혀 다른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모자이크와도 같은 셈이죠. 이번주 NEWS 모자이크는 독일을 달군 17세 소녀의 트위터를 한 조각으로 해서 ‘입시만을 위한 중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독일 쾰른의 인문계 중등교육기관(김나지움)에 재학 중인 이 여학생은 ‘나이나 K’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독일어로 22단어에 불과한 두 문장의 글을 올려 리트윗 건수만 1만 5천여 회에 달하는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다. 그것도 4개국 언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나이나의 의견은 김나지움 상급반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는 없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우리의 중등교육은 어떨까요? 국영수사과를 제외하곤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없는 한국의 나이나 K들을 통해 우리 중등교육의 현실을 짚어봤습니다.

 

 

  입시 위주의 중등교육에 압살당한 ‘열아홉’
  국영수 말고 남은 것이 없는 가난한 ‘스물’
    

  12년의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이도 부었다. 시간하고 돈 말이다. 얼굴도 참 많이 부었다.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펜을 놓지 못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잘 배우기 위해서 참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중등교육 6년의 시간을 거쳐 우리는 ‘자주적 생활 능력’을 갖춘 ‘민주 시민’이 된 것일까. 배운 것은 수능공부, 가진 것은 졸업장뿐인 만 19세. 몸은 다 자라 교복을 벗고 성인이라는 완장을 찼지만 20살, 대학교 1학년에게 너무나 헐렁하고 부자연스러운 완장이 아닌가.
이제 막 대학교 1학년이 된 신입생들은 수능과목 외에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대학교 1학년생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그날들을 복기해보았다.    

  열심히 공부했다, 남는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 꽤 잘나갔다. 그런데 학교를 나오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주도에서 온 신지윤 학생(경희대 사회학과 1)은 스무 살이 된다고 했을 때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담임선생님도 없고 매일 같이 연습했던 수능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는 것이 몇 없었다. “이제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데 아는 것이 없어서 불안 했어요.” 세상에 나가기 위해 국영수를 공부했지만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국영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학공식을 암기하는 데는 능해요. 그런데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제대로 모르겠어요.” 이제 막 20살이 된 여학생에게 남은 것은 빛나는 대학교 간판, 한 살배기와 비슷한 대학교 1학년의 시작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황하는 것은 김보라 학생(가명·고려대 정경대 1)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나이에 입시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단어를 읽거나 문장을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어요. 하지만 대학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언어지문을 분석하는 데 능하지만 계약서를 작성할 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모른다. 문제 풀이만으로 채우기에 자유는 너무 낯설었다.

  이정우 학생(경희대 경제학과 1)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스무 살이 버거웠다. 수능 공부만을 강조하며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했던 고등학교 생활에서 자발적인 활동은 일종의 타부였다. 대학에 와서 자취를 하는데 계약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몰랐다. “고등학교 때는 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갑자기 해야 하니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단 이정우 학생뿐일까. 어른들은 마치 19살까지 공교육이 정해놓은 길에 맞춰 따라가면 다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20살이 되고 보니 진정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배운 것은 입시였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들의 공통점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독서실은 전식이요, 야자는 후식이었다. 전증언 학생(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1)은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숙사에서 공부했다. 5시간 내내 책만 보고 있으면 정신이 어지러웠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영어지문을 해석하는 것’, ‘언어지문을 분석하는 것’. 참 간략하게도 요약 가능한 대한민국 교육에 전력을 다했다. 신지윤 학생 역시 시를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고, 한국사 시간에 배운 수많은 사건들의 연도를 외웠다. 이 모든 것은 더 좋은 수능점수, 더 좋은 대학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에게 물었다. “이런 것들을 배워 사회에 나갔을 때 나 혼자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획일화된 암기교육만 받았다는 생각에 사고의 폭이 좁아졌음을 늘 걱정해야 했다.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엄하은 학생(정치국제학과 1)은 “정말 국영수사과만 배웠다”고 말했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해서 토론 수업을 하고 싶었던 엄하은 학생.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이걸 할 때인가?’라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토론은 개념을 이해하고, 수학공식을 외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장상민 학생(사회학과 1)은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교과목이 주입식이었지만 의심하는 순간 비효율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을 것 같았다. “의심하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그냥 무조건 외웠습니다.” 교육이 훈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들이 공부에만 찌든 것은 아니다. 동아리 활동도 나름 했다. 하지만 전증언 학생은 “토론 동아리도 하고, 도서부도 했지만 진짜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동아리 활동은 대학 입학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정우 학생도 동아리에 관해서 할 말이 많다. 고등학교의 동아리 활동은 기록만 남는 허울뿐인 활동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는 금요일 두 시간 정도가 다였어요. 영상 하나 틀어주는데 동아리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교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는 입시라는 틀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었는가

  참 어렵게 들어왔다. 그리고 참 힘들게 공부했다. 대학생, 스무 살 말고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을까. 장상민 학생은 경쟁형 인간이 됐다. 착해도 안 되고 나빠도 안 된다. 착하기만 하면 내 것을 지킬 수 없고, 나쁘기만 하면 남의 것을 가져올 수 없다. 끊임없이 경쟁하는 법을 배운 장상민 학생은 “나는 저항하는 법은 모르지만 순응하는 데는 능하다”고 답했다. 경쟁이 싫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순응해야 했다.

강상준 학생(서울과기대 건축공학과 1)은 삶의 쓰디쓴 교훈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공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배웠다. 강상준 학생은 “성공해야 좋은 부인도 만나고, 성공해야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며 “공부해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경쟁하고, 순응하고, 무엇보다 성공해야 한다. 대학에 오기 위해서 이들은 얼마만큼 더 세상을 차갑고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정우 학생은 말한다. “수학공식을 외우는데 능하다. 하지만 나의 공식을 만들어가는 데는 부족하다.” 전증언 학생은 말한다. “영어 지문을 푸는 데는 능하지만 영어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나’를 설명하기에 이들은 너무 이르고 너무 빠르게 현실만 보고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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