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 동문(사회체육학부 07학번)
  • 최현찬 기자
  • 승인 2014.05.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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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꿈나무들의 롤모델을 꿈꾼다
 전광석화 같은 가로채기에 이은 빠른 속공으로 상대팀 바스켓을 노린다. 김선형 동문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빠른 속공과 뛰어난 탄력으로 연일 KBL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2011-2012시즌 KBL SK나이츠에서 데뷔해 화려한 플레이와 수려한 외모로 KBL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로무대 데뷔 4년차에 접어든 지금 그는 농구 꿈나무들의 롤모델로 불릴 수 있는 농구선수로서의 도약을 꿈꾼다. 
 
 
 ▲사진 박가현 기자
식스맨이던 중학교 시절
수 년간의 노력끝에
SK에 입단하다
 
압박감이 다른 프로농구 
한 템포 빠른 속도로 
코트를 지배하다
 
 
 
 
 
경기를 조율하는 포인트가드
돌료들의 헌신으로 
MVP를 수상하다
 
연이은 플레이오프 탈락
통합우승으로
반지를 노린다
 
 
 
 
 
 
  
 
2013-2014시즌 SK나이츠는 치열한 우승경쟁 끝에 정규리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SK나이츠의 에이스로서 그 누구보다 팀의 시즌 막판이 아쉬웠을 김선형 동문. 비시즌인 요즘 시즌 중에 못 보던 지인들을 만나는데 바쁜 김선형 선수가 직접 중대신문 서울캠 편집국을 방문했다.
 
-시즌이 종료된 지금 어떤 생활을 보내고 있는가.
“시즌 때 바빠서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즌 중에는 SK나이츠 선수들끼리도 훈련이나 경기 외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 선수들과 회식자리를 갖는 중이다. 특히 시즌 때 자주 못 본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다. 얼마 전엔 모교를 찾아 후배들의 경기를 직관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성적이 선수로서 아쉬웠을 것 같다.
“아쉬운 순간들은 매년 있다. 경기를 지더라도 뭔가를 하나 배우고 지는 것과 단순히 아쉬워하며 무기력하게 지는 건 의미가 다르다. 지난 시즌엔 정규리그 3위에,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떨어졌지만 여러 점들을 배워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가올 국가대표 무대도 기대되진 않나.
“작년 여름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3위라는 성적으로 올해 8월에 열리는 세계농구대회 본선행 티켓을 얻었다. NBA에서 보던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른다는 게 국가대표로서 설레고 걱정도 된다. 세계대회라는 벽은 높지만 출전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다.”
 
-이번에 국가대표 성적을 예상한다면.
“세계무대에선 1승만 해도 대박이다. 만일 전패를 하더라도 어떻게 지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전술적인 부분을 유재학 감독님께서 지시하시면 선수로서 감독님의 전술을 100%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이 감독님의 전술을 통해 이번 대회에서 1승을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9월 아시안게임에도 참여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되는데.
“형들이야 힘들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젊어서 괜찮다.(웃음) 힘들든 안 힘들든 국가대표 자격으로 뛰는 건 명예로운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 뛸 것이다.”
 
-농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진 축구부에 있었다. 그러나 YMCA클럽팀에서 설렁설렁 배우다보니 축구에 흥미를 잃어 축구부를 그만두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우연찮게 농구를 하고 있던 내 모습을 보셨다. 내게 소질을 확인하셨는지 농구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운동을 계속 하고 싶었다. 때마침 송도중 농구부가 유명해 테스트를 봤고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하는 내 모습을 봤던 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농구실력은 어떠했나.
“중학교 3학년 때까진 주전도 아닌 식스맨이었다. 그러다 송도고 농구부에 들어가면서 정말 미친 듯이 노력했다. 훈련이 끝나면 체육관 컴퓨터로 NBA동영상을 보면서 알렌 아이버슨처럼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의 동작을 따라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연습한 개인기를 코트에서 활용하는 과정을 거쳤다. 개인연습을 치열하게 하다보니까 확실히 실력이 늘면서 송도고 주전자리를 꿰차게 됐다.”
 
-중앙대에 입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연세대, 고려대 그리고 중앙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아버지는 이름이 있는 고려대 진학을 추천하셨다. 그러나 고려대 농구부는 선후배 관계가 다소 위계적이란 얘기가 있었다. 위계적인 질서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적성에 맞아 자유분방한 중앙대 농구부를 선택하게 됐다.(웃음) 내가 고등학생일 때 병현이 형을 비롯한 중앙대 선배들이 대학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그런 형들 밑에서 뛸 수 있다는 설렘도 중앙대 입학에 한몫 했다.”
 
 
 우연한 기회에 농구를 시작한 김선형 동문은 학부시절 돋보이는 실력으로 농구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80년대 허동택 시절에 이어 오세근 동문(체육교육과 07학번), 함누리 동문(사회체육학부 07학번) 등의 황금세대와 함께 중앙대 농구부 제2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학부시절의 활약은 2011년 KBL 드래프트 2순위까지 이어졌고 선배 프로선수들 사이에서도 그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화려한 학부시절을 보냈다.
“중앙대에서의 농구는 정말 재미있었다. 농구도 농구지만 동기들과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농구를 더 재밌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당시에 MBC대학농구대회를 우승해야 시간이 빨리 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내가 학교를 다녔던 시절에는 6년 연속 그 대회를 우승했다. 학부시절이 너무 빨리 흘러서 아쉬울 정도였다.(웃음)”
 
-농구 외적으로는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농구부는 무용학과와 미팅을 해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 중앙대 무용학과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 무용학과와도 미팅을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2학년 때는 동기들과 함께 당구에 빠져 살던 적도 있었다.”
 
-대학농구에 대한 감회를 말해준다면.
“고등학교가 기본기를 다지는 단계였다면 대학에선 실전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당시 두 학번 후배인 이대성 선수(울산모비스)와 룸메이트였는데 둘이서 같이 야간에 1대1연습을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중앙대 농구부는 황금세대로 기억된다.
“팬들은 박빙의 승부를 기대하고 경기장을 찾지만 우리는 전반전이 끝나면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을 만큼 전력이 막강했다. 매번 경기를 할 때마다 30점 씩 차이가 났다. 전반전에 지고 있어도 후반전에 점수를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항상 들었다. 그만큼 당시 중앙대 농구부가 강력한 황금세대였다. 그때 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기 자체가 너무 긴장감이 없어 재미는 없었다고 하더라.”
 
-화려한 학부시절 끝에 2011년 KBL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SK나이츠에 입단했다.
“당시 드래프트 1순위는 사실상 세근이 형이었고 내가 2순위냐 3순위냐 그 차이였다. 두 번째 구슬이 어디가 나오느냐가 중요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팀에 가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서울에 연고를 둔 SK나이츠 드래프트 2순위로 뽑히게 됐다.”
 
-2011-2012시즌 데뷔하자마자 가장 인상적인 신인으로 뽑혔다.
“KBL 데뷔 1년 차인데 기자들이 찾아와 인터뷰를 청하고 심지어 지상파 스포츠뉴스에서 세근이 형과 나의 플레이 스타일을 분석하기 까지 했다.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디어의 관심을 다소 즐기는 듯했다.
“구단차원에서 데뷔 1년차 신인들의 다양한 매력을 팬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시상식 때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그게 부담스러웠다면 자제했을 텐데 오히려 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즐겼던 것 같다. 농구 외적인 모습은 다 보여줬으니 이젠 농구만 할 뿐이다.”
 
-대학농구와 프로에서 뛸 때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압박감의 정도가 다르다. 형들이 괜히 ‘프로’로 불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산전수전 다 겪고 올라간 사람들이 프로선수들이고 그 프로들 사이에서 주전경쟁을 하니 개인적으로 압박감이 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프로무대는 전술과 선수에 대한 분석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오른쪽으로 돌파하면 공을 두 번 튀기고 레이업을 쏘는 반면 왼쪽으로 돌파하면 한 번 튀기고 레이업을 쏘는 편이다. 상대팀은 이런 나의 스텝 하나하나까지 파악한다. 내 플레이가 그런 식으로 상대에게 읽히는 게 힘들었다.”
 
 
 코트를 지배하는 프로선수들 속에서 신인이 주목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데뷔 시즌 대학동기인 오세근 동문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신인으로 떠오른 김선형 동문. KBL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에게 2012-2013시즌은 농구인생에 있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다. 빠른 속공과 뛰어난 탄력으로 SK나이츠를 정규리그 1위의 자리에 올려놓고 본인은 정규리그 MVP까지 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2012-2013시즌은 본인에게 커리어 최고의 시즌이었다.
“데뷔 시즌부터 팀이 9연패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 아픔을 뒤로하고 그 다음시즌인 2012-2013시즌에는 다른 팀들의 전력이 약한 편이었고 우리 팀도 운이 많이 따라줬다. 지고 있어도 언젠가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중앙대에서 뛸 때의 기분이었다. 선수들 간의 호흡이 잘 맞다보니 소속팀이 홈27연승이란 전무한 기록으로 정규리그를 우승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정규리그 MVP가 본인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감독님과 형들이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그때 같은 활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동료들의 헌신이 MVP수상이란 보답으로 이어진 것 같다. 나도 그만큼 성숙해져서 동료들을 이끌 수 있게 됐다.”
 
-연이은 플레이오프 탈락은 아쉬울 것 같은데. 
“정규리그에서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진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으로 더 주목받는다는 걸 몸소 느꼈다. 2012-2013시즌엔 울산모비스와의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탈락했고 2013-2014시즌에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모비스에게 또 패배하는 수모를 봤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 플레이오프 우승은 선수로서 가장 큰 목표다.”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의 아픔을 안긴 울산모비스는 어떤 존재인가.
“결정적인 경기에서 언제까지 울산에게 질순 없겠지만 내가 성장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는 팀이다. 내 실력의 촉매역할이 되어주는 성장촉진제 같다고 할까. 선수로서 성장이 더딜 때마다 울산모비스와의 경기를 하면 주사를 한 대씩 맞는 기분이다. SK나이츠를 상대로 워낙 강한 팀이기 때문에 내가 발전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팀인 것 같다.”
 
 
 데뷔 4년차에 접어든 김선형 동문의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그는 어느덧 선배동료들이 가장 믿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코트 밖에서 감독이 선수들을 지휘한다면 코트 안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건 포인트가드인 그의 몫이다. 농구선수 치고는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187cm의 키. 그러나 100m를 12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뛰어난 탄력으로 덩크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는 그의 플레이스타일에 대해 살펴봤다.
 
-본인이 생각하는 포인트가드의 역할은 무엇인가.
“확실히 코트 위의 감독이다. 어떤 선수가 컨디션이 좋은지, 상대편 선수들을 상대로 어떤 패턴의 플레이를 유도해야 되는지. 수시로 샷클락을 확인하고 우리 팀뿐만이 아닌 코트 위에 있는 모두에게 신경을 써야만 한다.”
 
-빠른 속공은 타고난 것인가.
“돌파는 고등학교 때부터 쭉 연습해왔다. 드리블로 수비를 제쳐나가는 순간 속도가 지체되는 시간이 있다. 그때 수비를 제치고 방향을 바꿀 때 드리블을 하는 속도가 죽고 다시 가속도를 붙여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수비를 제칠 때 대각선으로 방향을 바꿔 가속도를 최대한 유지하는 플레이를 연습해왔다. 이렇게 스피드를 줄이지 않는 드리블을 연습하다보니 지금 같은 선수가 된 것 같다.”
 
-덩크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고등학교 땐 탄력이 별로 안 좋았다. 대학에 들어오고 근력운동을 많이 하면서 힘이 붙다보니 탄력이 점점 늘게 됐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MBC대학농구대회 결승전에서 동국대를 상대로 첫 덩크를 성공시켰다. 하프라인에서 공을 뺏어서 원맨속공을 나가는데 모두가 레이업을 할 줄 알았던 상황에서 덩크를 꽂아 넣었다. 그게 내 첫 덩크였다. 같은 2점이지만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게 덩크다.”
 
-돌파에 비해 슈팅이 다소 아쉬운 점으로 꼽히는데.
“작년에 내가 슈팅이 약해서 슈팅시도 자체를 안하다보니 슈팅에 발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올해는 일부로 3점 슛을 쏘면서 실전에서 슈팅수를 높였다. 쏘니까 또 들어가긴 하더라.(웃음) 올해부턴 내 플레이에 슈팅의 비중을 높이면 더 막기 힘든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구단선수로서는 플레이오프 우승을 하는 게 목표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통합우승을 이뤄 반지를 끼는 게 가장 큰 꿈이다. 국가대표로서는 범국민적인 농구열풍이 일어났으면 한다. 축구와 야구가 인기가 있는 것도 국가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8,9월에 있을 두 번의 세계대회에서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가 좋은 성적을 거둬 국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재 국가대표로서의 계획이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집 같은 곳이다. 대학생활을 워낙 편하고 재미있게 했다. 농구뿐만 아니라 선후배 간의 끈끈함을 확인할 수 있어서 집 같이 느껴진다. 얼마 전 후배들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안성캠을 찾았는데 정문에 도착하니 고향에 왔다는 느낌이 들더라. 재미도 재미지만 농구선수로서의 기본 발판을 다질 수 있는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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