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소설가(문예창작학과 87학번) 인터뷰

  소설에 대해 아는 것도, 알고 싶지도 않던 그가 어느 날 소설가가 되어 우리 곁에 나타났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직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을 하며 유명세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상에 이르기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정확히 말하면 멈추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이 세상 모두가 바보 같다고 부르짖는 그 세계를 한 번 주목해봤다. 

▲ "항상 선글라스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라 기자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뇨. 그냥 끌리니까..."라며 미소만 남겼다.                                         사진 양동혁 기자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여러 번의 전화와 메일을 보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그의 짧은 대답은 “저는 남들이 보기에 훌륭하지도, 잘 살아오지도 않은 인간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툭 끊긴 통화 연결음. 정말 마지막 통화라 생각하며 기자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분간의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간 뒤 소설가 박민규(문예창작학과 87학번)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란 인간이 그토록 궁금하세요?”

  -만나기 참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짓이잖아요. 인생을 잘 살아온 인간도 아니고. 외부 언론매체랑도 인터뷰 잘 안 해요.”

  -왜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지.
  “인터뷰 질문도 바보 같고, 말하고 있는 제 모습도 바보 같아서요. 어찌 보면 다 틀에 짜여져 있잖아요.”

  -타인과는 잘 어울리는 편인지 궁금하다.
  “아니요. 혼자 있는 거 좋아해요.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고독할 텐데.
“고독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거예요. 자신감이 없으니 고독이란 감정이 자기 자신을 삼켜버린 거죠.”

  -그래서 다들 박민규 작가를 독특하다고 말하나 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요. 알 길도 없고요. 솔직히 다 나 같은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상 사람들이 참 생소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보트라고는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오리배다. 오리배를 타고 저토록 멀리 나가는 인간의 심보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꼭, 저런 인간이 있다. 이건 엔터프라이즈가 아니라 오리배야 오리배, 마음 같아선 머리통을 몇 번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고 싶지만, 참는다. 대신 나는, 호루라기를 꺼내 분다. 삐익 삐이이익~ 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정말, 원자력인가? -소설『카스테라』 「아, 하세요 펠리컨」중에서 
  -어려서부터 문예창작학과(문창과)에 입학하려고 했나.
  “예술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음악이나 미술 이런 쪽은 레슨비가 들더라고요. 레슨을 받기엔 형편이 안 됐죠. 혼자 할 수 있는 예술이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 결국 문창과를 선택했죠.”

  -문창과 들어오고 후회는 없었는지.
  “후회요? 학교를 잘 안 나가서 잘 모르겠네요. 제겐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도 잘 안 나고요.”

  -학교를 왜 안 나왔는지.
  “제가 87학번이에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죠. 왜 다들 87년의 봄이라고 말하잖아요. 처음엔 휴강 때문에 학교를 나갈 수 없었는데… 그게 문제였죠. 학교를 안 나가는 게 그만 습관이 돼버렸어요. 솔직히 전 대학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가 없어요.”

  -그 시간에 어디서 뭐했나.
  “87년의 봄이라 동기, 선배들은 거리로 향했죠. 당시 저도 방황하면서 돈도 벌고 세상 구경을 하며 살았어요.”

  -학부생 시절 소설이 아닌 시를 전공했다고 하던데.
  “소설을 좋아하지도, 써보지도, 읽지도,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결정적으로 소설전공 선배들은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소설을 제출하더라고요. 반면 시전공 선배들은 종이 한 장에 몇 줄 적어내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소설은 참 어려운 거구나.”

  -시를 원래 좋아했던 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중에 절정이잖아요. 얼마나 멋있는 일이에요. 국내외 시인들 작품 가리지 않고 찾아 읽어봤어요.”

  -좋아하는 만큼 습작도 병행됐나.
  “과제 제출한 게 다죠 뭐.(웃음) 글로 밥 벌어 먹고 살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시 자체는 정말 좋아했어요.”

  -문창과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관문 중 하나가 바로 합평(여럿이 모여 작품을 평가하는 시간)이다. 자신의 작품을 두고 어떤 반응이 오갔나.
  “말들 못하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기나 교수님들도 말을 안 하더라고요. 제가 무서워서 그랬나?(웃음)”

  -그 당시 합평 분위기는.
  “하나같이 바보들이었어요. 서로 욕하고, 술자리에서 부둥켜 울고, 벽에 머리 찧으며 소리 지르고… 세상에 뭐 이런 바보들이 다 있나 싶었으니까요.”

  -요즘 문창과 학생들도 합평하다보면 참 많이 상처를 입는 것 같다.
  “배짱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다들 너무 곱게 자라서. 그리고 자기 재능이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 두려운 거예요. 합평이란 거 참 바보 같잖아요. 다들 각자마다 어떤 재능이 있는지도 모른 채 할퀴기만 하잖아요. 고작 100m 12초에 뛰는 놈이 100m 15초에 뛰는 놈에게 자세가 어떻다는 둥 호흡이 어떻다는 둥 핀잔이나 주고. 다 떠나서 자기 스스로 믿음이 있으면 되는 건데 말이죠.”

  -글을 쓸 때 두려움은 없었나.
  “두렵긴 뭐가 두려워요. 다들 추구하는 자의식이 높아서 그래요. 그냥 쓰면 되는 문제인데 망설이기만 하잖아요.”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중에서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로 뛰어들었다고.
  “여러 회사를 전전했어요. 영업사원부터 시작해 잡지사에서 사진작가까지 다양했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상무도 해보고 별의별 경험은 다 해본 것 같아요. 한 8~9년 넘게 일했으니까요.” 

  -잡지사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했다면 사진도 배웠었나.
  “독학했어요. 지금은 사진기가 디지털화됐지만 그땐 하나하나 수작업이었어요. 수동 조작에 필름 현상까지 말이죠. 사진과에서 배우는 정도는 혼자 익혔던 것 같아요.”

  -전반적인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을 텐데.
  “크게 두려운 건 없었어요. 낙천적인 성향도 한몫했죠. 막상 사회생활할 때는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하게 되더라고요.”

  -약 8~9년간의 사회생활 끝에 다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그건 나도 몰라요.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어요. 한 번도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터라 제 스스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어요. 직업을 바꾼다는 건 웬만한 에너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것도 시가 아닌 소설이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아이러니해요. 소설을 읽어 보지도, 쓰고 싶다고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제 자신도 순간의 유혹일 거라 생각하며 반년 정도 시간을 끌어봤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멈출 수 없었어요. 당장 글을 쓰지 않으면 병이 날 것만 같더라고요.”

  -주변 사람들도 당황스러웠겠다.
  “전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한집안의 가장이었어요. 그러니 제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결국 아내에게 다 털어놨죠.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
  “든든한 지원자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힘들단 말 한마디 없이 아내는 저 대신 3년간 가장역할을 했죠. 제겐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주변에서 결혼 잘했다는 말도 많이 듣겠다.
  “사실 전 아내에게서 결혼이 아닌 구원을 받은 거죠.”

  -든든한 지원군 아내가 있어 어떤가.
  “정말 감사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제가 아내의 팬 1호니까요. 아내가 있었기에 제가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열성적인 팬인 것 같다. 출간된 몇 편의 책 앞부분에 아내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더라.

  “그런 소소한 거 좋아해요. 제가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하고요. 날 좋아해 주는 그 사람이 정말 좋으니까요.”

  -화제를 바꿔 2003년 문학동네에서 등단하기까지 얼마나 준비했나.

  “제 성격상 절대 뭘 배우려 하지 않아요. 몰라도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등단만큼은 그쪽으로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제가 어느 경로로 등단하면 좋을지 말이에요. 그 친구가 여기저기 문예지를 짚어주더라고요. 결국 문학동네에서 등단하게 된 거죠.”

  -처음 소설을 써봐서 혼란스러웠던 적은 따로 없었는지.
  “뭘 알아야 혼란스럽죠.(웃음) 문학은 어떤 거고 소설은 이런 거야란 개념이 없었어요. 오히려 지식이 없었기에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터지는 대로, 글이 가고 싶은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뒀어요.”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몇 번의 퇴고 과정을 거치나.
  “퇴고란 과정이 있다는 것조차 등단하고 알게 됐어요. 그만큼 글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고민도, 갈등도 없었죠.”

  -그러면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보통 경험과 상상력을 가지고 많이 이야기하죠. 전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보세요. 보편적인 한국인들이 얼마나 경험할 수 있는지. 어디 가서 사람을 죽여 볼 기회도 없고, 앞세대 작가들처럼 참혹한 전쟁을 경험해 본 적도 없잖아요. 특히 요즘 학교나 직장 다니고 사는 세상에서 얼마나 남들과 차별화된 경험을 가질 수 있겠어요. 경험에 기울어져 쓴다면 학원소설? 입시소설? 취업소설? 이런 건 정말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 세대에게 맞는 건 상상력이에요.”

  -항상 상상하고 있는가.
  “에이. 저도 밥 먹고, 자고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살아요.(웃음)”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겨울, 나무에 걸린 오렌지 해」중에서
  -지금도 작품을 쓰고 있나.
  “지금은 기자님이랑 인터뷰하러 나와 놀고 있잖아요.(웃음)”

  -질문을 바꿔 요즘 다시 작품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상반기에 장편을 하나 내려고 해요. 그리고 단편 몇 개 시작하고 있고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상력만으로 할 수 없는 게 있을 텐데.
  “물론 자료조사도 꼼꼼히 하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있어선 몇 달씩 자료조사 과정을 거치죠.”

  -플롯은 다 짜고 글을 시작하는지.
  “그냥 써요. 그런 거 없어요.”

  -보통 플롯을 짜놓지 않으면 쓰다가 막히지 않나.
  “쓰다가 막히는 건 글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쓰는 인간의 잘못이에요. 글은 그냥 흘러가는 거예요. 결국 글쓴이가 피곤하거나 딴생각이 많아 저지르는 행동이죠. 저 같은 경우 단순해서 그런지 글을 쓸 때 딴생각을 하지 않아요. 피곤하면 자고, 자다 일어나 다시 쓰고. 뭐 그런 거죠.”

  -아무리 해도 완성된 작품이 안 좋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다들 마음속으로 근사한 무언가를 갈망해서 그래요. 저는 정해둔 기준이 없어요. 남의 기준에 휘둘리는 편도 아니고요. 남이 보기엔 별로일 수도 있지만 전 좋을 수 있잖아요. 혹시 알아요? 20년 후엔 그것이 유행일 수도 있을지.”

  -작업 시간은 보통 정해져 있나.

  “되는대로 해요. 글을 쓰고 싶을 때 쓰는 거죠.”

  -하나의 작품을 쓰기까지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이건 그 작품의 성격마다 달라요. 단편「카스테라」 같은 경우 하룻밤 동안 썼어요. 반면 요즘 외국을 배경으로 쓰고 있는 단편 같은 경우 꽤 시간이 걸리고 있죠. 어떻게 다 똑같을 수 있겠어요.”

  -대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 어둠 그리고 소외감이 녹아있는 것 같다.
  “크게 고려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격동의 80년대를 경험하다 보니 그러지 않을까요. 철저히 개인의 내면을 다룬 소설이 아니니 세계관이 투영될 수밖에요. 저는 소설 속 주인공이 가고 싶은 길로 따라가 주기만 할 뿐이에요. 쓰다 보면 소설 속 인물들끼리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박민규 작가하면 다들 문체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특히 줄임표에 의미가 있나.
  “유심히 보면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알아듣게끔 단어를 생략하는 부분도 많고요. 말을 하기가 모호한 상황도 생기곤 하죠. 그 부분을 살릴 뿐이에요.”

  -영감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건가. 
  “역사책, 과학책을 읽죠. 특히나 역사는 인간이 걸어온 근본적인 길이잖아요. 무엇보다 관심이 그쪽으로 많기도 하고요.”

  -고정 독자층이 있는 걸로도 유명한데, 인기를 실감하는지.
  “인기를 잘 느끼지 못해요. 보통 작품을 쓰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책이 출간되는 거라… 뭐랄까. 무대에서 혼자 노래를 불렀는데 몇 년 뒤에 관객들의 박수가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 피부에 와 닿지도 않죠.”

  -열성 독자들과의 에피소드는 없나.
  “예전에 한번 강연을 나갔을 때에요. 어느 독자가 제게 제가 쓴 글귀를 읽어주며 질문을 하더라고요. 정작 저는 제가 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났죠.”

  -그날 어떻게 대처했는지 듣고 싶다.
  “별수 있나요. 그저 웃는 수밖에.(웃음)”

  왜 우리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반드시 생존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우연이 우릴 그렇게 고안한 걸까? 인체를 통해 태어나고 길러져야만 인간일까? 반드시 그래야만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영문도 모른 채 남아서 뭘 하려는 걸까?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말이야. -소설 『핑퐁』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중에서
  -현대문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한국문학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바로 피해자 문학이라는 것이죠. 가해자 문학이 아니라서 한과 슬픔만 담겨있어요. 참혹한 세계 속에서 뉘우친 반성이라는 것이 없는 거죠. 반성하면서 생기는 과정들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사실 저조차 피해자 문학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때론 나이가 어렸으면 파병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작가여야 하나.
  “일단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알 길이 없죠. 재능은 젊어서 오기도 하지만 생각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하죠. 무엇보다 작가가 하나의 유전(油田)이라면 그 속에 내장된 기름이 많아야 해요. 기름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도 못한 채 유전에서 뽑아낼 기술만 익히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죠. 내장된 기름만 있다면 어느 순간 폭발할 거예요. 그 순간을 잡으면 되는 거고요.”

  -혹시 당신에겐 또 다른 유전이 남아있는지. 즉, 시인으로 꿈을 꾸고 있는지 묻고 싶다.
  “『더블』이후로 정식 출간이 없었어요. 다들 묻더라고요. 왜 책이 안 나오는지. 사실 현재 세 권짜리 『트리플』을 기획 중이에요. 16편 정도 글을 써놨고 앞으로 한 권 분량을 더 써야 하지만… 건강이 허락된다면 『트리플』이후 네 권짜리 『포카드』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욕심이겠지만 다섯 권짜리 『풀하우스』도 펼치고 싶고요. 『풀하우스』 이후에 단 한 권의 책만 출간하고 싶은데 그게 바로 시집이었으면 하죠.”

  -언제쯤 독자들이 볼 수 있는 건가.
  “건강과 여러 상황이 허락된다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어요. 큰 욕심이지만 말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작가로 살고 싶나.
  “얼마나 근사한 일이에요. 글을 쓴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다시 태어나도 전 작가 할 거예요.”

  - 20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제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다만 20대에는 반항도 해보고 실패도 해봤으면 해요. 무엇보다 그 반항 끝에 반성이란 과정을 충분히 겪었으면 하죠.”

  -끝으로 묻는다. 앞으로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예정인가.
  “저도 사람인지라 노는 거 좋아해요. 사람들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고립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일 자체가 고립이 필요하죠. 글을 쓰면서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더 이상 바라는 건 없어요. 이제 중앙대와는 조금씩 이별을 고할래요. 그래서 새로 출간하는 작품마다 약력을 적지 않아요. 타이틀 다 빼고 소설만 전념하고 싶어요. 우리 사이엔 잊을 수 없는 추억만이 남아 있어도 괜찮잖아요. 서로 바보짓 많이 했으니…….”

 


주요작품

 

 

『지구영웅전설』 
  문학동네 펴냄 / 2003년 6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 '상상력의 한계'가 어딘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 독특한 소설. SF냄새를 물씬 풍기는 제목과는 달리 마치 지난 시대의 복고풍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출판 펴냄 / 2003년 8월
  만년 꼴찌를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 시대적 우울함과 사람들의 내적 갈등이란 키워드와 함께 야구는 시작됐다. 그리고 공은 저 멀리 던져졌다. 어려움의 끝을 달리는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쳐진 치열한 싸움 그리고 사랑.

 

 
『카스테라』 
  문학동네 펴냄 / 2005년 6월
  2003년 여름부터 2005년 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글들이다. 박민규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문체가 살아있는 책으로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이 폭발적이다. 「카스테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등 단편 10편으로 엮어져 있다.

 

 
『핑퐁』 
  창비 펴냄 / 2006년 9월
  발칙한 상상력이 도배된 책으로 걷잡을 수 없는 박민규 작가의 세계관이 녹아있다. 특이한 언어구조와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게다가 작가가 그린 5컷의 일러스트까지. 실험문학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담 펴냄 / 2009년 7월
  누구나 아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아니다. 작가는 그 속에서 추녀, 그리고 광대를 바라보며 상상력을 키웠다. 남과 달라지고 싶은 욕망, 예뻐지고 싶은 욕망. 사회적 구조 속에서 포착된 은밀하고도 특별한 사랑과 사람이 사는 이야기.

 

 
『더블』 
  창비 펴냄 / 2010년 11월
  SIDE A, SIDE B 두 권으로 이루어진 『더블』은 일종의 더블앨범과도 같은 독특한 모양새에 앨범 속지를 떠올리게 하는 일러스트 화집까지, 작가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책이다. 특히 그가 쓴 복면은 멕시코 루차 리브레의 전설 엘 산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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