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주 씨네21 사진부장(사진학과 83학번)
  • 최현찬 기자
  • 승인 2014.03.1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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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에는 배우보다 사람이 보인다
 카메라 한 필름 당 36장밖에 찍지 못하던 시절, 사진 한 장 한 장에 감정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던 학생이 있었다. 피사체에 대한 감정을 사진에 녹이려 했던 그 학생은 1989년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95년도 씨네21 창간멤버로 입사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배우들의 사진을 찍어왔다. 지금은 씨네21 미디어부문 사진부장으로서 인물사진의 대가로 불리는 손홍주 동문을 만나봤다.
 
 
 영화 개봉을 앞둔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 서기를 희망한다.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새로운 매력을 포착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한 사진기자가 있다. 씨네21 미디어부문 사진부장 손홍주 동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씨네21 사진부장의 정확한 역할이 궁금하다.
“씨네21 잡지에 나오는 모든 사진들을 총괄한다고 보면 된다. 표지사진은 물론이며 모든 사진을 기획하는 데 참여하고 그에 따른 결과까지 책임진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자면 내가 마감을 허락하지 않은 사진은 절대 잡지에 실리지 못한다. 그만큼 꼼꼼하게 사진을 확인해야 나중에 사고가 없다.”
-사진부장이기 전에 사진기자다.
“사내에선 사진부장인데 밖에선 나를 작가라 부르고 학교에선 나를 교수라 부른다. 어찌되었건 일차적인 신분은 사진기자다. 그동안 어디서 몸을 담았든 사진을 시작한 이래 손에서 카메라를 놓았던 적이 없다. 아무리 직책이 높은들 사진부장이 사진을 찍지 않으면 어떻게 후배들의 사진을 봐줄 수 있겠는가. 사진하는 사람은 절대 손에서 카메라를 놓아선 안 된다.”
-사진을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적 흑백TV에 완장을 차고 나온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사진기자들이었다. 완장에 한자로 ‘보도’라고 적혀있었는데 현장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그 기자들의 모습이 막연하게 멋있어 보였다. 그때 사진에 처음으로 매력을 느끼고 사진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처음에는 자식이 예술을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다. 그래도 내가 너무 하고 싶어 하니 아버지가 나한테서 사진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셨다. 사실 형제들이 모두 예술 쪽에 뜻이 있었다. 장남인 나를 시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도 연달아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남동생 현주는 유명한 연기자가 되었고 여동생은 피아노를 전공하게 됐다.”
-학부시절이 궁금하다.
“자괴감에 빠져 굉장히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사진학과 동기가 39명이었는데 그때 전국에서 사진으로 날고 기는 친구들은 전부 중앙대 사진학과로 모였었다. 첫 수업 때 친구들이 과제로 찍어온 흑백사진들을 보는데 정말 귀신인줄 알았다. 밤새 작업을 해도 동기들 실력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더라. 그때 동기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에 충격이 너무 심해서 사진을 접을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했을 것 같은데.
“경쟁도 앞에 있는 경쟁자들이 시야에 보여야 경쟁이다. 그땐 내 동기들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레벨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희망 자체가 안보였다. 그러다보니 공부하기 싫어졌고, 카메라를 놓지는 않았지만 많이 방황을 하게 됐다.” 
-전환의 계기는 없었나.
“1학년 말에 친했던 동기랑 술을 마시면서 그간 내가 내 살을 깎아먹고 있었음을 느끼게 됐다. 그 동기가 한 여학생의 사진을 찍어 과제로 제출한 사진을 보고 내게 인물사진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칭찬해주었다. 사실 그 피사체는 내가 흠모하던 여학생이었는데 그녀를 좋아하던 나의 감정이 사진에도 전달됐는지 그 친구가 그 사진을 알아봐줬던 것이다. 그때 사진에 감정을 넣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고 사진에 대한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에 감정을 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손홍주 동문은 자신의 능력이 인물사진을 찍을 때 극대화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던 그는 1989년도 서울신문 출판국에 입사하고 1995년도 씨네21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맞이하면서 인물사진에 더욱 주력하게 된다. 
-서울신문에서 사진기자를 시작했다.
“서울신문에 인턴으로 내정되어 있던 동기 한 명이 사정이 생겨 내가 대신 인턴을 들어가게 됐다. 그 이후에 서울신문 출판부의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TV가이드, 선데이서울, 그리고 월간지 퀸에서 연예인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기자로서 값진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이쪽 업계에서 배우와 사진기자는 얽혀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사진실력과 더불어 배우들과의 인간관계도 작업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당시 고현정, 이정재, 이병헌, 전도연 같은 신인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맺은 배우들과의 친분이 씨네21에서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친분이 없는 배우들을 촬영할 때는 내 동생 현주를 팔기도 한다.(웃음) 그러나 서울신문에선 내가 찍고 싶은 인물사진을 찍을 수 없어 다소 아쉽기도 했다.”
-무엇이 아쉬웠다는 말인가.
“서울신문에서 찍었던 인물사진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웃는 인물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항상 웃는 모습만을 개그맨들은 항상 장난스러운 모습을 찍어야 했다. 인물들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게 사진의 매력이지 않나. 서울신문에선 획일화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 속에서 씨네21 창간멤버 모집공고가 눈에 띄게 됐다.”
-씨네21 창간멤버로 입사했다.
“당시 한겨레에서 새로운 영상주간지를 창간한다는 소식과 함께 모집공고가 떴다. 그때 생각으론 영상주간지니까 인물사진 촬영과 어떻게든 연결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꽤나 늦은 33살의 나이에 새 직장에서의 생활을 결심했다.”
-어떤 점에서 씨네21 입사가 끌렸나.
“일단 신생 주간지라는 점이 끌렸다. 그때 한겨레신문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았지만 연예인들을 상대하여 사진이나 영상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당시 씨네21 면접에서 어떤 사진을 찍고 싶냐는 질문에 정형화된 사진보다 피사체가 갖는 고유의 성격과 진솔한 모습을 찍어 표지에 싣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결국엔 씨네21의 창간멤버로 입사했고 내가 찍고 싶던 인물사진들을 모조리 다 찍을 수 있었다.”
 
 손홍주 동문에게 씨네21 입사는 그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했던 절호의 기회였다. 입사 이후 20여 년간 인물사진을 촬영하면서 인물사진과 씨네21 사진에 대해 느끼는 바를 대해 들어봤다.
-씨네21 사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날것이다. 가공되지 않은 가장 생생한 사진을 잡지에 싣는 게 씨네21 사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상황에 따라 보정도 하지만 예전엔 정말 있는 그대로 찍힌 사진을 내보냈다. 인위적으로 사진을 편집하기보다 사진기자가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싣도록 하는 게 씨네21이다.”
-씨네21 표지를 찍는데 있어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피사체의 감정과 내 감정을 조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피사체가 갖는 고유의 성격을 사진을 통해 담아내면서 거기에 배역에 대한 나의 감정도 사진을 통해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다. 매번 하지만 인물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다.”
-무엇이 어려운가.
“피사체의 새로운 모습을 사진을 통해 뽑아내는 게 정말 힘들더라. 겉으로 드러나는 피사체의 모습을 단순히 찍기보다는 피사체에게서 새로운 표정과 몸짓을 유도하도록 하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의 문제인 것 같은데.
“찍는 피사체마다 느낌이 다르고 고유의 성격이 다른데 매번 피사체 고유의 느낌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게 고민이었다. 사람이 아닌 물건을 찍는다면 매번 원하는 느낌대로 찍을 수 있겠지만 사람을 상대해선 똑같이 적용할 수 없으니까. 어떤 배우는 어두운 배경음악이 있어야 좋은 사진이 찍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밝은 음악을 틀어야 사진이 잘 찍히는 경우가 있다. 촬영배경에 따라 피사체의 몰입도가 다르다.”
-원하는 결과물에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연구를 했나.
“피사체처럼 되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사체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영화의 배역에 몰입해서 역할에 가까워지도록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배우 송강호의 화보를 찍으면 <변호인>의 송강호가 있을 것이고, <설국열차>의 송강호가 있을 것이다. 그 배우가 영화 홍보를 할 땐 아직 한창 그 배역에 빠져있을 때여서 사진가는 그 순간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촬영전에 영화를 보면서 배역의 성격이나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사전준비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20년 정도 이 작업을 거치니 이젠 어느 정도 몸에 익은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만족했던 사진이 있다면.
“동생 현주가 드라마 <추격자>에 출연했을 때 찍었던 화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추격자>에서의 손현주를 보면 수염이 나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특징인데 사진으로 그런 모습들을 잘 담아냈던 것 같다.(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인물사진의 매력이 무엇인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찍는 게 인물사진이다. 인물사진의 피사체를 찍으면서 그들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사진을 통해 결합시키는 게 정말 매력적인 작업인 것 같다.”
 
 인물사진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고민은 씨네21을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주간지로 우뚝 서게 했다. 그러나 근 몇 년간 인쇄매체가 하향세에 접어들고 디지털 매거진이 떠오르면서 종이매체의 매력을 살리려는 그의 노력은 더욱 분주해졌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시대에서 디지털화된 지금까지, 씨네21의 정체성과 사진의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최근 인쇄매체가 하향세다.
“모든 매체들이 사실상 디지털화되면서 인쇄매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다. 아날로그를 억지로 부흥시킬 순 없겠지만 디지털 시대에 맞게 예전의 아날로그 감성을 어떻게 조합시킬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씨네21에선 어떤 노력들을 하는가.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하는데 그 중 한 방편이 기획이다. ‘캠퍼스 씨네21’이란 대학생용 잡지를 따로 만든 것도 대학생들의 전형적인 관심에 기획을 맞춰 종이매체의 매력을 어필하려한 것이다. 기획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해서 많은 독자들이 디지털 매거진보다 인쇄매체를 찾게 하는 게 현재로서의 목표다.”
-시대가 지나면서 사진도 바뀌었다.
“지난 몇 십년간 사진이 굉장히 대중화됐다. 그러나 사진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진의 질은 하향평준화 되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즉석에서 사진을 확인할 수가 없고 한 필름 당 36장 밖에 못 찍으니 한 장 한 장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찍었다. 그러나 지금의 디지털카메라는 현장에서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삭제할 수 있으니까 예전만큼의 정성을 다하지 않게 된다.”
-이런 변화가 사진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프로들은 오히려 이런 변화가 반갑다. 사진 촬영이 대중적인 취미가 되면서 아마추어들 또한 많아졌다. 그러니 당연히 전공자들의 사진이 돋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씨네21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궁금하다.
“신문으로 진실을, 사진으로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한다. 창간 이후 가장 생생한 사진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했다. 앞으로도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내가 태어난 부모님을 바꾸지 못하듯이 모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뿌리 같은 존재다. 중앙대 사진학과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여기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모교 덕에 내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됐기에 중앙대는 내 생명줄 같은 뿌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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