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월이다. 봄내음을 한껏 들이켜기도 전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2013년의 절반이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바쁘고 바쁘게 지냈던 나날들이었다. ‘시사학술부’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부장이라는 막중한 위치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리던, 지난날의 기자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번학기 마지막 신문 제작만을 남겨두고, 이제와 고백컨대 지난날 기자를 가장 땀 흘리게 했던 것은 ‘이 주의 시사’였다. 올해 처음 신설된 지면이어서인지 컨셉을 정하고 주제를 정하는 것 모두가 어려웠다. 특히나 논란이 되는 주제들은 선뜻 선택하기가 더 겁났다. 그중 가장 다루기 꺼렸던 주제가 바로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다. 끊임없이 논란이 돼 온 주제였지만 왠지 기자가 침범해서는 안 될(?) 영역으로만 느껴졌다. 고민 끝에 이번 중대신문 1796호의 이 주의 시사 주제로 일베를 선택했다.


  기자가 일베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언론을 통해서였다. 가끔 인터넷 기사의 댓글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에 ‘김치녀’, ‘민주화’와 같은 용어들이 사용돼 있으면 고개를 갸우뚱한 기억은 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베’는 알지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베가 회자되기 시작하며 뇌리에 쏙 박혔던 말이 있었다. 일베 저장소가 아니라 ‘쓰레기 저장소’라고.


  첫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한 번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왠지 접속해서는 안 될 사이트인 것만 같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욕구를 풀기 위한 창구라 했고, 10대, 20대들의 극우화를 초래하는 질 나쁜 커뮤니티라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5.18 민주화 폄하 발언까지 접하자 기자는 불편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논리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을 규정짓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신진욱 교수님의 말처럼, 그들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요 이용 연령층도, 직업도, 성별도 확신할 수는 없다.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단정 짓고 일반론적으로 규정내리는 순간 그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은  사람들뿐 아니라 40대, 50대도 충분히 일베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자크 라캉은 ‘무언가 실재적인 것에 대해서 접촉을 하는 순간 그것이 전부라고 항상 착각한다’고 말했다. 접촉을 하는 순간 특정한 부분만을 받아들인 것임에도 전부라고 느낀다는 말이다. 라캉은 이를 두고 승인이자 오인이라 이야기했다. 실재적인 것의 특정 측면을 판단했을 때 거짓은 아니기에 승인이지만, 완벽하게 전부를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오인이라는 것이다.


  일베도 비슷한 맥락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는 일베라는 이름에 이것저것 수식어를 갖다 붙이곤 한다. 10대들이 주로 쓰는 어휘들이 빈번하게 나타난다며 10대가 주된 이용층일 거라 추측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어떠한 단어도 일베 전부를 표현할 수는 없다. 그들의 논리까지도 전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일베 앞에 특정한 수식어를 붙이고 편향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 전체를 담아내는 건강한 비판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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