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영화사 진진'
“밥 먹고 싶으면, 빨갱이 잡아와!” 최근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의 한 부분이다. 영화는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군부의 잔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군부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군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빨갱이 손에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어머니뻘의 노인을 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순박한 제주도민들의 모습에서 그토록 군부가 치를 떠는 빨갱이의 잔인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좌익세력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인들 중 일부는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군대 내에서 갖은 핍박을 받기도 하고 무고한 제주도민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제주도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쓴 채 사라진 것일까?

  제주 4.3사건의 전초전은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인 1947년 3월 1일에 시작됐다. 이날 열린 3·1절 기념집회에 참가한 군중들 중 6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고 이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남한을 신탁통치하고 있던 미군정은 이를 좌익세력의 무력 행위라고 판단해 제주도에 극우반공단체를 파견해 무력 진압했다. 이에 반발한 제주도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미군정과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영화 <지슬>엔 “한라산으로 들어가면 먹을 것도 없고, 추워서 살기 어렵다”는 대사가 나온다. 생활 터전을 버리고 한라산에 입산한다는 것은 생존을 걸어야 할 정도로 미군정의 탄압이 극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미국은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고자 5·10 총선거를 준비했다. 그러던 1948년 4월 3일, 제주도민들은 5·10 총선거에 반대하는 투쟁 시위를 벌였다. 제주도를 좌익세력의 소굴로 규정한 미군정과 남한 정부는 선거가 끝난 후 그 해 11월에 ‘제주 해안선 5km 바깥의 모든 주민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소개령을 내렸다. 영화
<지슬>은 소개령이 내려진 그해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개령은 국가권력이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할 수 있던 명분이었다. 그 후 12월 31일이 돼서야 소개령은 해제됐지만 1954년까지 제주도에선 무력충돌이 계속됐다. 현재 공식집계로만 약 14,000명이 사망했고, 3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목숨을 잃은 민간인 중엔 4살짜리 여자아이부터 70이 넘은 노인까지 약자가 대다수였다.


  약 3만 명 제주도민들은 ‘이념’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영화의 제목이자 감자를 일컫는 제주도 방언인 ‘지슬’은 당시 제주도민들이 감자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제주도의 이런 어려운 상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념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셈이다.


  사실 제주도 사람들만 희생된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로 파병된 군인들은 왜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지 모른 채 살육을 강요당했다. 영화는 제주도민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벌을 받고 밥도 먹지 못하는 등의 비인간적 처우를 받는 이들은 국가권력에 의한 또 다른 희생자였음을 보여준다.


  그 후 50년이 넘도록 제주 4.3사건은 묻혀 있었다. 오히려 제주 4.3사건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은 연좌제로 인해 핍박을 받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52년이 지나서야 김대중 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처음으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정부차원의 ‘진상보고서’는 4.3사건에 대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연계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있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정부차원의 사과와 희생자 지원을 건의했다.


  2003년 10월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처음으로 제주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위령제에 참석했다. 영화는 희생된 사람들의 옆에서 지방(紙榜)이 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그 자체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제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슬프게 보여주지만은 않는다. 제주도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해학적인 장면으로 관객의 긴장을 완화시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제주 4.3사건이란 비극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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