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지난 6일, 이경민씨가 공연 전 아트센터 대강당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피아노 학원서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어째서 실패한 인생인가"

 

 지난 6일 중앙대학교 아트센터에서 ‘piano IN 제10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만난 이경민씨(피아노전공 2)는 공연 리허설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 이경민씨를 찾아갔다. 무대 위의 연주자가 아닌 피아노학과 학생으로 이경민씨를 다시 만났다.

-공연은 일주일 전에 끝나지 않았나.
“공연과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하루에 서너시간씩은 연습한다.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한다.”
-다들 연습은 어디서 하나.
“대부분 연습실을 사용한다. 연습실 사용할 때 늘 골머리를 앓는다. 모두가 연습할 만큼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피아노도 많이 낡았고 수도 적다. 마냥 차례만 기다리다 한 번도 못치고 돌아갈 때도 있다.”
-연습실 순번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건가?
“먼저 가서 치는 사람이 임자다. 우리만의 규율이 있는 데 10분 이상 연습실을 비우면 안된다. 10분을 초과하고 연습실로 돌아가면 어김없이 다른 학생이 피아노에 앉아 있다. 시계를 가리키며 말한다. ‘10분 초과야. 이제 내가 친다.’”
-다들 선후배 사이 아닌가. 연습실을 뺏고 빼앗기면 서로 기분이 상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서로 이해하고 가는 문제다. 더군다나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연습실이 아니면 피아노를 칠 곳이 없다. 기숙사에 외박계를 내고 밤늦게 피아노 연습을 하거나 새벽에 연습을 한다. 실기 시험을 앞두고 연습실은 전쟁터가 된다. 등하교 시간이 오래 걸려도 통학을 고집하는 이유가 연습실 때문이다.”
-학교 수업 이외에 따로 외부 레슨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지.
“선택사항이다. 하지만 학교에도 엄연히 지도 교수님이나 강사님이 있기 때문에 외부 레슨을 받는 것은 민감한 사항이다. 외부 레슨을 받고 있던 한 친구는 갑자기 실력이 늘자 지도 교수님에게‘너 따로 레슨 받니?’라는 당항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했다.”
-레슨비는 얼마나 드나.
“어떤 선생님에게 배우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1시간에 10만원 정도 드는 경우도 있고 40분에 20만원씩 내기도 한다. 인기 선생님들은 요청이 많아서 레슨을 받고 싶다고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싼 레슨을 받으려면 집안 형편이 넉넉해야 할텐데.
“사람들은 우리가 돈이 많아서 음악을 하는 줄 안다. 돈이 남아 돌아서 피아노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길이 돈이 많이 드는 피아노인 것이다. 형편이 안되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레슨비를 번다. 교회 반주나 예식 반주 등 피아노를 쳐서 번 돈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학교 교수님이나 강사님들은 개인 레슨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만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돈을 내서라도 집중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는 거다.”
-레슨비도 어렵게 마련하는 정도라면 유학은 꿈도 못꾸는거 아닌가.
“가정형편이 유학길을 좌우하기도 한다. 미국 같은 경우는 학비나 생활비가 워낙 많이 들어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유학을 가기 힘들다. 하지만 유학을 간다고 해도 피아니스트나 피아노학과 교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고. 그래서 학생들 중 일부는 유학갈 돈으로 차라리 피아노학원을 차리겠다고 한다.”
-피아노학원은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피아노학원을 차린다고 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실력이 부족해 피아노학원을 차리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피아노학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피아노학과 나와서 학원 선생님밖에 못한다고? 글쎄. 다른 학과 사람들이 취업 못하고 있을 때 우린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라도 할 수 있는 거다.”
이경민씨는 폴란드에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유학파라는 선입견과 달리 인터뷰 도중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해외 경험이 도움 되었나.
“해외 유명 음악가들의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폴란드에서 한국과 다른 그 나라만의 색을 접할 수 있었다.”
-피아노 강습 방법도 다른지.
“한국 선생님들은 세세히 문제점들을 지적해 준다. 내 문제가 뭔지 확실히 알고 고칠 수 있다. 반면에 폴란드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지도한다. ‘이 마디에서 어떻게 쳐라’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게 만든다.  평생 레슨을 받으며 살 순 없다. 발전 속도는 더딜지라도 내 문제점들을 스스로 깨우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폴란드에서 나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아이들은 대학 입시 때문에 피아노 치는 기계가 된다’고.”
-폴란드도 한국처럼 피아노가 대중적인 악기인가.
“대중적이지 않다. 폴란드 사람들이 피아노를 안 배운다기보다는 한국에 워낙 피아노 학원이 많다. 폴란드 중학교 음악시간에 피아노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처음 피아노를 쳐보는 학생들도 많았다.”
-한국에는 피아노 잘치는 사람들이 워낙 많지 않나. 불안하지는 않은지.
“모든 피아노학과 학생들의 고민일 것이다. 피아노가 워낙 친근한 악기이다보니 친근함을 뛰어넘는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 예정지를 물었다. “오늘 친구들이랑 중요한 약속이 있다. 연습 조금 더 하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고 한다.”
피아노 연습은 이경민씨에게 이미 일상이다. 인터뷰 전날은 이경민씨의 생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기념일에도 연습은 예외가 아니다. 이경민씨에게 진정한 기념일은 자신의 연주를 관객에게 전하는 공연 날이다.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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