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지난 20일 이한솔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어쩌면 돈과 멀리있어
시가 아름다운건지도
모른다"

 

작은 종이도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될 수 있다. 종이 안에 무엇을 쓰냐에 따라 방대한 것을 글로 담아낼 수 있는데, 이한솔(문예창작학과 4)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누구보다 큰 꿈을 갖고 있다.
시 써서 취업이 되냐는 조금은 무례한 질문에 그녀가 답한다. “시인은 인(人)으로 끝나는, 사람이 하는거다. 시인 자체를 직업으로 보고 싶지 않다. 시인이 되는 건 내 꿈이지 취업과는 별개다.” 
-문예창작학과(문창과) 다닌다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나.
“문창과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문화창작학과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창문만드는 과냐고 그러더라.(웃음)국문학과랑 같은 과라고 생각하는 건 흔한 일이고.”
-문창과 사람들은 음습하고, 우울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문학은 깊은 사유에서 나온다. 남들보다 깊은 사고를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까지 끄집어내 생각 안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무용같은 공연예술은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해 보여주는 거라면 우리는 반대다. 그래서 우리의 이미지를 어둡게 보는 것 같다.”
-문창과는 출석이나 학점에 집착하지 않는거 같다.
“실기수업 때 낼 합평작을 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걸 마감병이라 그런다. 문학은 몰입도가 요구되니 내 글에 빠져있으면 다른 수업이나 부수적인 것들을 제쳐두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글을 합평작으로 내놓는다면 자기 글의 대한 자존심을 버리는 거다. 내 글을 읽어주는 다른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합평을 하다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는지.
“일학년 때는 실기 위주의 수업보다 책을 읽는 등 마음의 감성을 쌓을 수 있는 수업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글을 써보지 않은 신입생도 많다. 처음부터 합평을 해 내 글이 난도질 당한다면 글쓰는 것의 흥미를 잃을 거다.”
-문창과가 없어지는 추세라고 들었다.
“문창과 나온다고 해서 다 등단하나? 문창과가 없어진다 해도 어디선가 글을 쓰는 사람은 있을 거다. 문창과를 보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문학과 가까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적 환경이 별건가. 사회적 분위기에 문학이 자연스레 스며든다면 문창과가 없어도 될 것 같다.”
-다들 문예지나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것을 희망한다고 들었다.
“평생 글을 쓰려면 필요한 절차다. 등단이 목표가 되서는 안되지만 자동차경주를 하려면 최소한 면허가 있어야 하지 않나.”
-등단한다고 해서 다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 등단한다고 해서 모두 책을 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등단 전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매년 등단자들이 생기고 기성작가들도 많은데 출판사들이 그들의 책을 다 출간하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까.”

중앙일보 2012년 1월 12일자 신문에 ‘문예지 사줘야 당선 확정 ‘등단 헌금’ 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공모 요강에 아예 당선 조건으로 ‘문예지 구입’을 명시해 놓은 곳도 있었다.’라며 일부 문예지의 실태가 보도됐다. 비인기 문예지들은 구독자수가 적어 운영이 힘들다. 출판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게 등단 작가들의 문예지 구입 비용이라는 게 해당 문예지들의 입장이다.

-문예지 대량 구매가 등단의 자격요건이 되는 공모전이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쎄, 근데 그게 해악인가? 해충처럼 문학을 갉아 먹나? 등단이 평생의 소원이라면 그 방법을 지지하진 않아도 그 사람의 열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등단한 사람들의 노력을 퇴색시킬 수 있지 않나
“문예지 자체가 인기가 없는데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면 발간 자금조달이 힘들어 폐간된다. 어찌보면 양날의 검 같다.”
-글 쓰는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얘기가 사실인지.
“시만 쓰면 가난하다. 하지만 시를 잘 쓰는 사람한테는 칼럼 청탁이나 강의요청, 작사 부탁 같은 다른 일거리가 생긴다. 시인이 돈을 많이 벌면 시 자체에 상업성이 투여될 지도 모른다.”
-가난이 두렵지 않다는 건가.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 나도 욕심이 많다. 다만 돈이 아닌 다른 것에 더 큰 가치를 둘 뿐이다. 시는 비주류 장르다. 더구나 돈을 많이 벌기 힘든 직업이니 애초에 돈의 대한 욕심도 버렸다. 시를 쓰면 부자로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즐겁게는 살 수 있다.”
-시와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소설가는 가(家)로 끝나고 시인은 인(人)으로 끝난다. 집과 인간이 문학을 한다고 생각한다. 또 소설은 긴 호흡과 스토리를 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는 날카로운 연필심처럼 짧은 직관을 요구한다.”
-시는 짧으니깐 금방 써질 것 같은데.
“금방이란 게 얼마나인가?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지만 완고한 시는 있을지언정 탈고한 시는 없다. 시는 종이에 쓰는 게 아니라 머리 속에서도 쓸 수 있다. 항상 내 시는 퇴고 중이지만 마음 속에서 써내려 가는 시가 언제 탈고할지는 미지수다.”
-특기자로 입학했다고 들었다. 동기들보다 실력이 앞선다고 생각했을 거 같은데.
“결코 아니다. 고등학교 때 쓰던 버릇을 버리는 데 오래 걸렸고 지금도 그 틀과 굴레를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특기자는 되려 나에게 콤플렉스다. 대학에 와서 자유롭게 쓰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떻게 입학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오래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녀가 말한다. 비주류였던 인디음악이 어느 날 갑작스레 상승세를 탄 것처럼 시도 언젠가는 사람들과 가까워질 날이 올거라고. 인터뷰를 마치며 그 대열에 그녀의 시가 함께 자리한 모습을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t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