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홍씨가 자신이 만든 원피스를 입고 생활대 앞 농구장을 걷고 있다.
폭주족으로 열일곱 청춘을 폭주했던 소년의 자리는 이제 오토바이가 아닌 재봉틀 앞이다.
“같이 폭주족 뛰던 친구들 중 중국집이나 가스배달 하고 있는 얘들 허다해요. 가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나라고 그러고 있지 말란 법 없으니까.”
열일곱 소년을 오토바이에서 내려오게 한 친구의 편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를 중국집 배달원으로 마주했을지 모른다. 양재홍씨(의류학과 3)는 패션왕을 꿈꾸는 어느 웹툰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했나.
“고1때 까진 정말 열심히 놀았다. 의류학과에 가야겠다 생각한건 친구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다. 그때 친구가 써준 편지를 보고 정신 차렸다.”
-언제부터 옷 만드는 걸 좋아했나.
“고등학교 때부터 좀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어느 웹툰을 보니 주인공이 교복을 파워숄더로 만들더라. 나도 비슷했다. 집에 있는 구찌수트의 핏을 패턴으로 그렸다. 양복 맞추는 곳에 가서 교복의 디자인은 그대로 가되 핏은 패턴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철없는 얘긴데 솔직히 그때는 명품 아니면 옷이라고도 생각 안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원피스인가.
“원체 남성성과 여성성을 파괴하는 디자인을 좋아한다. 여자를 위한 원피스가 아니라 남자를 위한 원피스를 만들었다. 원피스가 랩스커트가 된 이유도 그래서다. 남자들은 여자와 달리 화장실에서 치마가 걸리적거릴 때가 많다. 아무튼 뭐 발상의 전환이 유쾌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남성용 스커트는 종종 나왔어도 원피스는 없었으니까.”
-남성성과 여성성을 파괴하는 옷이란 무엇인가?
“패션계에서는 역으로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 여자가 남성복을 입으면 보이쉬한 여자라 하지만 남자가 여성복을 입으면 다들 게이인 줄 안다. 내가 원피스를 입고 다닐 때 수군거리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의류학과 다닌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뭔가.
“친구들이 옷 하나 만들어 달라고 쉽게 말한다. 우린 디자이너지 재봉틀이 아니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부터 마감처리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있으면 재단사와 재봉사도 있는 거다. 존 갈리아노 같은 유명 디자이너도 옷을 디자인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부서를 나누어 작업의 일부를 도맡아 한다.”
-학교에서 작업할 때 힘든 점은 없는지.
“재봉틀이 개인에게 할당된 게 아니라 작업할 때 힘들다. 기계를 고쳐주시는 분이 한 학기에 한 두 번 와서 기계라도 한번 고장 나면 작업 속도가 더 늦어진다.”
-의류학과 학생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뭐라고 생각하나.
“게이 같다는 거? 디자이너가 남성과 여성의 취향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게이와 성향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모두가 게이라는 건 글쎄. 확실한건 난 여자 무지 좋아한다.(웃음)”
-의류학과 학생들은 옷을 잘 입을 거 같은 데 이것도 편견인가.
“그렇다. 물론 다른 과보다 상향평준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만드는 것과 입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요즘 사람들이 너무 유행에 민감하다 생각하지 않나.
“유행은 시대별 패션의 기준을 정하는 거다. 10년 전에 통바지를 봤다면 우리는 멋있다고 말했을 거다. 반면에 지금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들도 슬림한 바지를 고집하지 않나. 그들 모두를 패션의 주관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유행을 제쳐두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개성있는 거라면 유행을 잘 따르는 사람은 흐름을 잘 읽는 사람인거다.
-패션의 완성 정말 얼굴인가 아닌가.
“어느 정도는. 현빈이 입으면 추리닝도 패션이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옷을 입는 것 자체가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 아닌가. 옷은 사람을 4단계 이상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추리닝을 입은 현빈은 그 자체로 멋있다. 하지만 멋진 수트를 입은 현빈이 사귀자고 하면 안넘어 가고 베기겠나.”
-보통 의류학과 학생들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나.
“원하는 디자인을 찾기 위해 컬렉션 자료를 보며 리서치 한다. 하지만 나에겐 뻔하고 진부한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 음악 같은 많은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 다른 듯 하지만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모든 예술은 조금씩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을 되새기면 자신만의 느낌이 나오고, 그때부터 디자인은 시작된다.”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옷걸이 모양의 타투가 보였다. 약속을 의미하는 네 번째 손가락에 새긴 타투는 늘 패션을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술도 같은 맥락에서 좋은 영감의 원천이다. 취한 상태로 디자인을 하고 다른 날 아침에 보면 이게 뭔가 싶다. 맨정신으로 디자인을 다듬고 변형시키다 보면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하기도 한다.”


-지금도 만들고 있는 옷이 있는지.
“키가 199cm인 친구에게 줄 옷을 만들고 있다. 병 때문에 살이 찌지 않는 친구라 마른 몸에 옷을 맞추다 보니 바지나 소매가 항상 짧다. 볼 때마다 많이 안타깝다. 친구 몸에 맞춰진 옷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
-입학하고 힘든 점은 없었나.
“정식으로 디자인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예전부터 패션을 좋아해 패션카페나 정보를 많이 찾아봤다. 알음알음 하던 것들을 강의시간에 배우게 되자 좀 시시하달까? 그래서 내 첫 학기 학점은 0.38. 바닥을 기었다. 그런데 저번학기에는 학년 수석을 했다. 옷을 만들며 과거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오토바이도 타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명품은 좋다. 하지만 직접 만든 하나밖에 없는 옷의 대한 소중함은 더 좋다.” 
-여학생 비율이 많다고 들었는데 남학생이라 힘든 점은 없는지?
“포트폴리오 같은 건 아무래도 여학생들이 섬세하니 더 잘 만드는 편이다. 부족한 섬세함을 채우려 남학생들도 많이 노력한다.”
-대학에 와서 달라진 점은 뭔가.
“어릴 때보다 끈기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싫은 건 죽어도 못한다. 대신에 하고 싶은 것은 뭐가되었든 무조건 도전한다. 나는 새로운 시도를 즐기지만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다른 일에 발만 담그는 게 꼭 나쁜 건가? 사진이나, 촬영, 밴드활동 등 많을 일을 했고 결과적으로 모두 나에게 도움을 준 시간들이었다. 헛되고 필요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건방진 일이다.”
방황하던 어린시절의 기억도 소중한 자산이라고 그는 말한다. 예술가로서 가장 두려운 건 철드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그의 인생에 ‘함부로’란 이름의 가위질은 없다.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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