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란 무엇인가』를 기점으로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 그 열풍이 꺾일 줄 모르는 2011년. 사회과학부터 문학, 그리고 철학까지 대중들의 관심이 향하고 있다. 그러나 ‘시’에게 만큼은 대중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2007년 최초의 현대시박물관 ‘한국 시의 집’의 개관했다. 1908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점으로 시작된 현대시의 역사. 그 역사가 흘러온 지 장장 100년의 기간을 ‘한국 시의 집’에서 한눈에 훑을 수 있다. 100년 역사의 현대시와 그 시절의 시인들, 그리고 시사를 전시하며 교양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는 한국 시의 집. 교과서에서만 뵈었던 시인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국 시의 집을 방문해보자. >
 

대중에게 손 내밀기 박물관이 변화한다
 

 

 
1980년대 우리네 부모님이 학생이던 시절, 그들의 옆구리에는 항상 시집이 있었다. 지식인의 상징이라 믿었던 그 시절의 허세가 그들의 옆구리에서 벗어나버린 오늘날. 역사 속 영광을 되찾기 위해 개관한 현대시박물관 ‘한국 시의 집’을 예술의 본고장 대학로에서 찾았다.


 혜화로터리에서 명륜동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 좌회전과 직진을 반복하며 수많은 아파트 속에서 길을 헤매려는 찰나, 군계일학처럼 자리 잡은 시의 집이 보인다. 전통 가옥으로 지어진 탓에 자칫 개인 집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의 감성이 묻어나는 박물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집이라고 한들 오해는 아니다. 시의 집은 현재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재홍 교수의 사택을 개조한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내 집에 들어서는 듯한 편안함으로 박물관에 들어설 수 있다. 입구부터 가정집 문턱을 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방으로 향한 당신은 첫 번째로 만해 한용운 전시관 만나게 된다.

볼거리 1. 만해 생애 도자화실 
 한용운 전시관을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만해 생애 <도자화>에 시선을 뺏기고 만다. 한용운 전시관에는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도자화>가 벽면에 띠를 이루고 있다. 김천정 화백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한용운의 일생을 수놓아 전시한 것이다. 이는 김재홍 교수의 아이디어다. 김재홍 교수는 “한용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의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당신의 걸음마다 옆을 지켜주는 학예사를 통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도자화> 아래로 시선을 돌리면 한용운의 작품을 만난다. 한용운의 대표적인 시집 『님의 침묵』이 그 시절의 향기를 내며 가지런히 놓여 있다. 1926년 판임을 자랑하는 시집, 그 위압감에 조용히 고개를 숙인 1999년도 판까지. 한용운이 살았던 시대와 그가 운명을 달리한 시절까지 함께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옆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김억의 『봄의 노래』가 질투어린 시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만해 전용 전시관에 살며시 들어와 있지만 이들 역시도 1920년대에 태어난 희귀본 중에 희귀본이다.
 

볼거리 2. 시인들의 기증품 
 옆방으로 넘어가보자. 누군가의 방을 훔쳐본다는 죄책감이 들지도 모른다. 전시품 중 인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나 들지도 모를 죄책감은 이 사실을 안 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 공간은 현대 시인 중 김종삼 시인과 홍윤숙 시인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인장의 주인공은 바로 김종삼 시인. 순수시에서 시작해 현대인의 절망을 노래한 대표적 시인 김종삼의 개인 애장품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옆 코너는 홍윤숙 시인이 차지한다. 한국여성시인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홍윤숙 시인은 주로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녹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감성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직접 수놓은 자수, 그녀의 믿음이 담긴 십자가 등을 볼 수 있다.
 

볼거리 3. 초상시화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거실 한쪽 벽면에 전시된 초상시화가 있다. 이 전시품들은 박물관도 창조를 해야 한다는 김재홍 교수의 신념으로 인해 탄생됐다. 창조가 전통을 만든다는 김재홍 교수의 노력이 유난히 많이 깃든 공간이 바로 초상시화 전시관이다.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좌파 시인들과 민중 시인들의 작품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다. 김재홍 교수의 오랜 연구생활이 빛을 발하는 곳이다.
 

 대중에게 보다 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250점이 넘는 작품이 모여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 하나. 전시공간이 좁다는 점으로 인해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이 하단에 놓여 있다. 벼룩시장을 방문해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아 헤매는 열정과 같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시인들의 작품들을 골라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볼거리 4. 시인들의 친필 원고
 2층으로 올라가려던 순간, 당신은 도심 속 숲을 경험할 것이다. 바로 ‘시의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피천득, 고은 등 이름을 자랑하는 시인들의 육필 원고가 숲과 같이 울창하게 전시돼 있다.
 

 시의 숲에서는 교과서로만 접했던 시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강은교 시인의 육필이 담긴 원고지, 김규동 시인의 고민을 말해주는 빨간색 수정 글씨 등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원고를 당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시, 그리고 시인과 접하며 시를 가깝게 여겨 다시금 시집을 보게 될 것이다. 한 자리에서 100년의 역사를 느낄 것이다.                                -이승하 교수 (문예창작학과)

 

 책을 통해 텍스트로만 접했던 지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들의 살아있는 숨결을 서울 안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생에게 유익한 곳이다.

                                                                         -이경수 교수 (국어국문학과)


한국 사람들이 시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시의 소외다. 그러나 현대시박물관을 통해 시가 존재해야만 하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 (『섬진강』)

 

현재를 위해서는 과거가 중요하다. 과거의 사회를 언어로 보여줬다는 면에서 중요한 장소다.                                                                           -  강은교 시인 (『우리가 물이 되어』)


다른 박물관과 달리, 100년의 역사와 그 시절의 시인을 모아놓은 시의 집은 대학생 교양교육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정희성 시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좋은 교양교육의 산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시적 성취가 가득한 나라였는가를 알게 해줄 것이다.            -유성호 평론가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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