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은 유독 무덥고 무서웠던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둥굿해진 가슴의 벼이삭들이 저마다 풍만함을 뽐내야 할 들판은 수마의 상흔으로 비명의 목
숨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한데 매스 미디어의 처방은 이번에도 망각
제를 복용하라느니하는 그럴듯 하면서도 약삭빠른 내시의 목소리요, 몸짓같기만 하다.

기상이변 현상이니 어쩔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 모르나 좀더
솔직하고 겸손하게 자연과 내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나의 작은 욕심이 큰 화로 돌아
온 것이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인류사가 도전과 개척의 역사라지만 파괴가 곧 복구나 발전은 아니다. 수십년 내의 현상은
파괴만 있었을 뿐 자연과의 형평, 조화의 노력은 물론 친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가물거나 비가 많아도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간절하게 기원하고 애원하는 자
연중시사상을 지녔다. 도리를 거스르지 않으려했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아낄 것은
아꼈다.

이번 폭우는 하얘진 우리들의 손이 안녕히 가시라고 배웅을 하고 돌아서보지만 “저들판,
저 집을 빠트려서…”를 반복하며 잰 걸음으로 드나들면서 골짜기와 산허리를 감아들였다.
역설적으로 친절과 치밀함, 그리고 끈기를 우리들에게 배우라하고 있다.

절개지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슬라브를 덮었고, 담사이는 황토물이 작은 내를 이루고 있었
다. 흙이 덮치기는 했으나, 양이나 사태정도로 보아 폭우가 장시간 지속되면 몰라도 붕괴우
려는 없을 것 같았다. 만일에 대비 직원 7명을 모아 동틀 시각에 맞춰 지붕에 올라가 삽질
을 했다. 진흙이라 미끄러워 직원1명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몇년 사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과 같은 대형참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있다. 그래서 53년이 지난 이곳 서울
에선 오늘도 “일본 사람이 지은 축대는 아직도 건재한데…”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영남지방, 경기지방을 휩쓸고 서울 북부로 들어서는 폭우의 위
세를 보고도 주민 대다수는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달려가 보면 장정들은 뒹굴면서 머리
내민 토담을 직원더러 바로 잡으란다. 집주인은 물론 모든 단체가 전화만 하면 그만이다.
전화를 받다보면 완급과 경중이 없다.

옆집이 흙에 묻혀 생사를확인해야 할 위험에 처했는데도, 비닐 한장을 동사무소에 와서 가
져가면 발부르틀까봐 집까지 공급해 달라며 “왜 그집만 챙기냐”고 트집이다. 이같이 어이
없는 성화에 시간과 인력은 찢어지고, 낭비되고 있다.

인명과 화급을 다투지 않는 한 별희한한 단체에서 갖가지 위협과 협박을 해도 스스로 삽질
하지 않는 한 지원을 늦췄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간여를 배척했다. 이번 수해에
피해입은 주민 모두에게 적시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피해자를 돌보라는 양보하는 이웃이 있는 한 시간은 비록 놓쳤어도 더
많은 구원의 손길이 뻗쳐지게 될 것이다.

사고는 예고가 없다. 네 탓 찾고 도움을 요청하느라 우왕좌왕하지 말고 이웃이 뜻을 모아
위험이 더 가까워 지기 전에 호미로 뚝을 쌓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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