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___'이곳이 정말 민주주의 국가입니까'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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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순덕열사 방화살인 책임자 처벌과 민중주거권 보장하라" 나무 그늘 하
나 없는 땡볕아래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4백여명의 사람들. 몇몇의 아주머니
들은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고는 먼 하늘을 쳐다본다.

지난달 27일 종묘공원에서는 `고 박순덕열사 방화살인 책임자 처벌과 민중주
거권 쟁취를 위한 제4차 투쟁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저편에는 전투경찰들이
입구를 막으며 집회를 지켜보고 있다. 산만하게 시작한 본대회는 박순덕씨의
남편 김창수씨의 연설로 일순간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투쟁 끝에 얻은
가수용부지 공증이 하루 아침에 철거 계고장으로 바뀌고, 사람을 죽이고는 도
리어 방화범으로 몰아 구속하는 세상, 이런 곳이 정말 민중을 위한 세상이란
말입니까." 목소리가 길게 떨린다. 수심이 가득했던 철거민, 노점상, 학생,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그의 말에 호응한다.

조가영 경기철거민위원회 사무차장의 말에 의하면 전농3동은 94년도에 재개
발 고시로 지정, 철거민들의 계속된 투쟁으로 95년 동대문구청에서 가수용부
지 승인을 얻어 다음해 5월 선경건설과 재개발 조합이 그해 9월까지 가수용
52세대를 지어 주기로 합의, 덕수 합동법률사무소에서 공증까지 받았다고 한
다. 즉 도시개발법에 가옥이 철거되는 자에게 임시주거실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던 가수용을 쟁취함으로써 임대주택 입주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44세대가 선경건설과 조합의 회유로 수수료를 받아 다른곳으로 이주해 버
려 8세대만이 남아 임대주택을 고수하며 현재까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남은 8세대에게 다시 가수용부지를 승인했던 동대문구청장 직인이, 지난
6월 강제철거 계고장에 찍혀 발부되더니 7월 25일에는 강제폭력철거까지 했
다"며 조사무차장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철거깡패와 전경 9백여
명이 전농3동주민 10명이 있는 철탑망루를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 철거깡패
들이 1층 취사용 가스실 안에 기름 묻은 폐타이어를 넣고 화염병을 던져 철
탑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며 이명수씨(24)가 철거 당시 상황을 설
명한다. 이어 "불을 피해 주민 10명이 아래로 투신, 철거민 9명이 중상을
입고 박순덕씨는 뇌사 상태로 경희의료원으로 이송. 26일 새벽 6시경에 사
망하였다" 박순덕씨 사진을 건네주며 사망 경위를 말했다.

본대회는 끝나고 곧 선경그룹 본사까지의 가두행진을 한다. "한번 읽어보세
요" 행진 참가들 중 몇 사람들은 전단물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 강제철거한 선경그룹은 즉각 사죄하라" 온거리가 행진 참가자
들의 구호소리로 자동차 경적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선경그룹에 다다았을 무
렵, 갑자기 전경들이 행진을 저지하며 학생과 시민들을 연행해 가기 시작했
다. 몇몇 전경들은 곤봉으로 시민들을 구타하고 최루탄을 쏘아댄다.

선경그룹 앞 인도는 거의 아수라장을 방물케 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흩어
지고 다친 학생과 시민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조차 전경들이 미리 입구를 막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하
였다. 십여명의 철거민들은 도로변에 앉아 "집회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런 개같은 세상이 민주주의 국가냐"며 긴 눈물을 흘렸다.안쓰러운 철거민
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명동성당을 나섰다. 흐느껴 울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김동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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