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분홍색 흩날리는 치마를 입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여대생 언니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지?”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속에 남모르게 키운 것은 어른에 대한 환상이다.

다만 어른이 되면 18세 관람가 영화를 볼 수 있고 술집에 들어가 눈치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으며 밤늦도록 놀다가 자정이 넘은 시각에 귀가할 수 있는, 이러한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그 환상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16일)은 성년의 날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주며,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인 오늘은 만 20세가 되는 모든 젊은이들의 날이다.

각 대학교에서는 성년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갖가지 행사가 진행되고 영화관이나 대학로 공연장에서도 오늘의 주인공들을 위한 문화이벤트가 열린다. 장미꽃과 향수, 키스가 성년의 날의 공공연한 상징이 되어버린 요즘, ‘성인’이라는 정의에 대해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19세와 20세가 무엇이 다른 걸까. 이미 사회적 의식과 자각적 판단능력이 형성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통념상 18ㆍ19세는 성인으로 공표할 수 없다는 것은 ‘20세 성인이데올로기’에 기인한 억측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대표적인 예로 만 20세부터 주어지는 선거권의 나이 제한은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예전부터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18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인식한 많은 사람들이 현재 ‘18세 선거권 낮추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근로기준법, 도로교통법, 병역법 등 대부분의 국내법에서 성인연령을 18세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선거법에서는 20세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성인에 대한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존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성인’들. 한쪽에서는 권리 찾기에 여념이 없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 권리를 차버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열린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연령층이 낮을수록 투표참여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 사회에 새로운 동력을 공급하고 창의적인 의식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적 존재의 가능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과실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기회를 망각하고 있는 그 때 그 시간. 주인공들은 휘양찬란한 밤거리를 누비며 술 한 잔으로 성인으로서의 가치를 넘겨 삼키고 있다.

최영화 문화연대 청소년 문화위원회 활동가는 “성년식의 의미가 성과 음주문화와 같은 향락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큰 문제”라며 “유행코드에 따라 즐기고 노는 행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인으로서 진정한 권리와 의무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며 오늘날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성년의 날을 진단한다.

완전한 신체적 성장과 더불어 자유로운 판단력과 책임감을 선물 받은 성인들에게 오늘은 기쁘고 뜻 깊은 날이다. 자아의 씨앗이 아픔과 상처를 통해 성숙하는 한편 또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한 밑거름을 비축하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이러한 자연스러운 의식적 흐름 뒤에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 그댈 기다리며 나 이제 눈을 감아요”라고 읊는 미디어가 있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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