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법원이 <그때 그 사람들>들의 흥행을 도와주는 꼴이 되겠다. 마침내 법원이 영화를 가위질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서울중앙지법이 31일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상영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고 하니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걱정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법원이 가위질한 영화 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위질한 영화이후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

애초에 박지만 씨가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낸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어차피 법원은 중간에서 어중간하게 버무릴 테니 결국에는 가위질은 예견된 것이고 사람들의 호기심만 자극한다.

박지만씨 측은 "왜곡된 사실을 전해 고인과 채권자 등 유족의 인격권 및 명예를 명백히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생활이 문란하고 일본을 동경하는 인물로 그렸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도 있기 때문에 이 같이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냥 놔두면 볼 사람 안볼 사람 별 감정이 없을텐데 더 궁금증을 증폭 시켰으니 문제의 장면은 오히려 해가 될 수밖에.

법원이 삭제를 하도록 결정한 것은 부마항쟁 자료 영상과 함께 나오는 '박정희 대통령이 친구이자 부하인 김재규에게 살해됐다'는 김윤아의 나레이션 장면,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 다큐멘터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추모하는 등의 2장면, 모두 세 장면이다. 대상은 다큐멘터리 장면일 뿐 박정희 전대통령을 희화화 시킨 부분은 허구성이라도 그대로 포함된다. <세계일보>와 <동아일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희화화 한 영화 내용에 성토를 했어도 무용지물!

법원은 전체적으로 영화가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없다고 밝혔고 다큐멘터리 삽입 장면은 현실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더 딱딱한 이야기를 하고 맺어야겠다. 물론 예술 창작의 자유가 침해받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없고를 법원이 판단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는 것을 미리 재단하고 영화를 봉쇄하는 것은 새로운 검열이라는 비판! 새겨들을 만하지 않나.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영화적 해석은 어떠한 형태로든 예술의 자유에 기본 해야 한다는 상식은 새삼 강조하면 식상해질 지경이다.

생각해보면 염려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으니, 영화적 현실과 실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관객들을 염려하는 법원이 더 염려스러운 것이다. 관객들은 그렇게 무지하지 않으며 인식 능력이 낮지도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 땅의 수많은 국민들을 현실 인식 능력 없는 아기 대하듯이 하는 것은 오히려 소아병적 태도랄까. 관객의 판단 능력이나 수준을 미리 재단해서 법원이 미리 영화에 손을 대는 것은 국민의 행복 추구권과도 배치된다고 하면 너무한 주장일까?

새삼 판단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몫임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화와 관객 사이에 중간 매체가 방해할 때 예술은 발전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일 밖에. 영화 상영에 법원의 재단이 끼어든다면 새로운 영화 창작은 위축될 수밖에 없으니 암담하다고 수많은 이들이 할 밖에. 그럼 문제 있는 예술작품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있다. 예술에서 빚어진 인식은 예술의 전복을 통해 바꾸어야 한다.

영화 속의 형상화와 이미지가 충분하지 않다면 다양한 시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관객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원의 간섭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판결 삭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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