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광장 시계탑에서 2시까지 만나자'는 과거 한 소녀의 말이 이제는 ‘영등포역 롯데백화점 롯데리아 앞에서 만나자'로 변했다. 철도역 광장은 떠남과 만남의 교차로로서 슬픔과 설렘이 공존하며 이곳을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공간이었으나   ‘만남의 장소’였던 철도역 광장이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광장 자체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남의 기쁨이 있던 대합실 풍경은 이젠 드라마 속 추억의 장면일 뿐인가. 

 이렇게 변화하게 된 데에는 철도역사에 투입된 민간자본의 힘이 크다. 당초 자본이 부족했던 철도청이 민간자본과 연계하면서, 공익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할 역사가 상업적 이윤의 장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현재 서울에는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등 이미 많은 민자역사들이 존재한다. 이 역사들에는 공통적으로 규모가 큰 복합쇼핑몰과 연계되어 있는데, 자연히 순수하게 사람들이 사용해야 할 공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24일 문화연대 주최로 민자역사탐방이 이루어진 영등포역은 특히 철도와 각종 백화점, 지하상가로 인해 많은 유동인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영등포역사를 통해 오늘날 민자역사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한창 퇴근시간인 7시 무렵에 찾은 역사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 역의 관리사인 ‘롯데’ 측은 역과 연결되는 곳을 롯데백화점, 롯데리아 등 관련 업체의 상업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협소한 주차공간으로 인한 교통체증과 백화점 이벤트 행사 등으로 난립된 보행로 탓인지 철도 이용객들의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이미 역사로서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롯데백화점과 역을 잇는 지상 자유통행로는 줄어든 보행로와 복잡한 역내로 인해 많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역이라면 당연히 존재해야할 대합실 부족이 첫째 이유다. 140여개의 의자만 비치되어 있어 기차를 기다리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인 대합실의 의미가 무색해진 것이다.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의자가 부족하여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거나 난간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 또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곳은 10만의 유동인구가 거쳐 가는 곳이기 때문에 자유이동통로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백화점 뿐 만 아니라 보행로 중간 중간의 상업시설들이 보행자들을 방해하고 있었다. 김낙현씨(철도노조 민자역사 팀장)는 “민자역사에서 역무시설이 10%이상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다하고 불규칙적인 상업 공간으로 인해 측정하기조차 힘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하 보행로도 마찬가지다. 지상보행로가 백화점과 역이 직접적으로 닿아있어 복잡하다 치더라도 지하의 보행로는 충분한 통로가 제공되어야만 하지만 탐방팀이 본 이 곳 역시 지상과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백화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맞물려 어수선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획화 되지 않은 보행로 탓에 이동권의 자유가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원래 지하공간은 철도청재단법인 ‘홍익회’에서 공상퇴직자, 순직 유가족 및 생계가 곤궁한 장기근속 퇴직자 등이 운영할 수 있도록 상업권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공상자들의 상업시설은 15%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인맥을 통해 들어온 일반인들이 대부분이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지하공간과 연결되는 역사 앞 광장은 ‘광장’이라는 단어가 민망할 정도로 아주 협소했다. 상업적인 시설확보와 종교 관련 단체의 모임 등으로 시민들의 마당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이 광장의 폭은 15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예전에는 이보다 네 배 정도 더 큰 광장이 있었다”고 민간기업의 횡포를 말한다. 그나마 존재했던 광장의 일부분마저 새로운 증축 공간으로서 멀티영화관이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공공재 확보가 민간기업의 상업적 이윤으로 인하여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영등포역사를 넘어 민자역사 전반의 문제일 것이다. 류제홍씨(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는 “전국의 역이 민자역사로 바뀌면서 문제가 야기되었으며 편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간 재편 원칙이 필요하다”고 정책정립의 필요성을 말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 관련기관, 시민들의 끊임없는 협의가 필수요소인 것도 물론이다. 지속적인 강구책 마련을 통하여 더 이상 철도역이 상업공간에 밀려 ‘셋방살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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