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창작문학상 수상자가 신춘문예 당선 등 등단의 소식을 알려온 것이 근년에 세 번 있었다. 의혈창작문학상의 수준을 말해주는 증좌라 할 것이다.

한국 시문학의 미래를 책임질 예비문인을 탄생시킨 모체의 역할을 해온 중앙대학교 의혈창작문학상 시 부문에는 올해 40명 학생의 350편의 시가 답지하였다. 많은 작품 중 확실한 자기만의 목소리로 고고의 울음을 터뜨린 이는 부산외국어대 역사학과 4학년 정욱채이다. 

  당선작은 2편으로, '고양이 방식'과 '혼자라는 느낌에 대하여'이다. '고양이 방식'은 일종의 사랑 고백서인데 화자가 뜻밖에 고양이이다. 고양이는 당신에게 헌신과 복종을 맹세하면서 다가가려 하지만 사랑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고양이의 생리와 생태에 빗댄 화자의 사랑 고백이 참으로 애절하여 호소력이 있는 이 시는, 대중가요에 넘쳐나는 사랑 타령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신이 한 입씩 생선을 뜯을 때마다/제 심장 소리도 당신의 가슴으로 들어가겠죠”라고 말할 만큼 비통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이란 말이 쉽게 남발되고 넘쳐서 오히려 사랑이 부재한지도 모를 우리 시대에 ‘고양이 방식’으로 참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 그 신선한 ‘방식’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혼자라는 느낌에 대하여'도 개성 넘치는 작품이다. 제목은 다소 진부하지만 첫 행에서 조성된 긴장감을 끝 행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늦추지 않는다. 내가 나를 찾아내는 과정이, 내가 너희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말해주는 이 시는 앞서의 사랑 고백서와는 다른 진정성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또한 새로운 감각과 이미지가 충만해 있다. 당선자가 자기 절제와 조절의 능력만 갖춘다면 훗날 정욱채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의 시집을 읽어볼 수 있겠다. 그 시집은 무진장 재미있을 것이다. 

아쉽게 선외로 밀린 학생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강윤숙(협성대 문창과), 김지훈(단국대 예술학부 문예창작전공), 노현주(인제대 인문문화학부), 손전화(대전대 문창과), 이종민(재능대 문창과), 조소연(중앙대 국문과), 최희진(중앙대 국문과), 허남훈(명지대 문창과) 8명이다.

이 모든 학생의 공통적인 취약점은 기법은 승한데 내가 무엇을 독자에게 들려줄 것일까 하는 주제의식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개성이 보이지 않아 대체적으로 무난하기만 했다. 일상사의 범주에 머문 가벼운 객담을 할 것이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시를 써보기를 바란다. 몇 마디씩 지적한다.

'버스 정류장'(강숙윤) 등의 짧은 시는 짧은 시 나름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시는 보다 담백해야 하며 어떤 시는 더욱 강렬해야 한다. 촌철살인의 미학을 익혔으면 좋겠다. '호수신문 2' 등을 낸 김지훈은 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 미덥다. 소재도 다양하고 표현의 맛깔스러움도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느낌이 다소 공허하다.

시의 형식보다는 내용을 갖고 고민하기를. '거리의 세상'(노현주)은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학생의 작품이다. 그런데 사물을 포착하여 그것과 대결하는 끈질김이 부족하다. 시가 단순 명료하면 음미할 맛이 없어진다. '칼이 된 고양이' 등을 낸 손전화는 이미지 구사와 상황 묘사 모두를 잘 하므로 틀림없이 시인이 될 것이다.

문제는 손끝 재주에 너무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절묘한 언어 구사가 공허감을 주지 않으려면 끈질긴 시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기러기 추락사고' 등을 낸 이종민의 작품에는 말이 너무 많다. 사설과 사족을 죄 버려야 깔끔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상을 물고늘어지는 끈기는 높이 사고 싶다.

'우리들의 불안엔 날개가 있다'(조소연)는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의 고민이 제대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런데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단문의 연속이 오히려 시의 리듬을 끊고 있다. 시상 또한 일관성을 유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살아가는 것에 붙여'(최희진)보다는 뒤의 짧은 시들이 낫다. 이 학생은 말의 흐름을 안다. 조금만 더 역설과 은유의 기법을 터득하면 좋은 시를 쓸 것이다. '해를 묻은 오후' 등을 낸 허남훈은 지나친 산문화가 시의 맛에 초를 친 셈이 되었지만 사실적인 풍경화에 담긴 이미지가 강렬하여 앞날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겠다.

이 글을 쓴 이승하 교수는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