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기운에 겨우 쓴 소감이 다 날아가버렸다. 흥분해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담배 반 갑을 폈다. 오리가 된 기분이다. 나는 한 번 쓴 내용의 글을 절대로 다시 쓰지 못한다.

나는 불가항력적인 자학을 즐긴다. 여기에서 즐김이란 -좋다-의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자학의 쾌감을 조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다른 방식이 오히려 고통이다. 내게서의 자학이란 얼핏의 몸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시를 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시를 쓰고 싶지 않다. 다시 또 말하면, 행복해지고 싶다- 는 속뜻을 앓고 있다.(쓴웃음)

올 가을은 거의가 술로 보냈다. 그 흔적이 너무도 염려스러워서 -술을 마시다-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술 퍼마시다가 우연히, 내 속에서 주운 -현실을 배제한 이상은 없다-라는 말이, 몸속에 몇 개의 뼈를 건축하였다. 내가 나를 자유스럽게 방목할 수록, 그 뼈는 몸 밖의 현실로 빠져나가며 아프게 했다. 내년 여름이면 졸업을 한다. 취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말 뿐인 되새김질이 자주자주 입 안에서 위액의 향을 풍기며 씹힌다.

그리고 기쁘다

시를 쓰는 순간마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휑한 마음에 에너지를 충전해주신 이승하 선생님께 너무 감사감사! 드린다.

아자아자!

이 글을 쓴 정욱채씨는 부산외대 역사학과(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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