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가 있다. 숫자가 적기 때문에 마이너리티가 아니며, 수준이 낮아서 마이너리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치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잇는 사람들. 다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 이면의 새로움과 소중함을 알고 있는 진정한 마이너리티.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편집자주>

▲ ⓒ 신동필
간이기를 거부당한 채 세상 사람과 강제로 등져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물론 살인범, 강도나 권력형 부정 비리의 파렴치 형사 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들 나름대로 잘라진 나라가 하나 됨을 염원하며 수십 년을 갇혀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오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정치적 신념으로 구속되었기에 정치수일 수도 있고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확신수이기도 했다. 많게는 45년까지 0.75평 독방에서 어느 누구도 돌보는 이 없는 절해의 고도 같은 곳에서 온갖 잔혹한 고문 등 인간이 견디어 낼 수 없는 삶의 한계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낸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던가.

세상 사람들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이 같은 기구한 삶은 그들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우리민족 일반이 겪어야 했던 시대상황의 산물이었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외세와 분단이라는 역사적·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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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싸워 연합국이 승리와 함께 조국광복과 민족 해방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건설이란 민족적 과제를 이루지 못한 채 새로운 점령군에 의해 남북으로 갈리었으며 강대국의 패권적 세계전략에 강제 편입되어 동족상잔의 비극마저 겪어야 했었다.

비록 휴전 협정으로 열전이 멈추기는 했지만 동·서 냉전체제 심화에 따른 남북사이의 대치국면도 깊어져 갔다. 또한 민족문제 해결에 있어 민족자주냐 외세의존이냐 하는 또 다른 문제까지 포함된 중첩된 대치는 적어도 7ㆍ4 남북공동성명이 있기까지 이어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열전과 냉전 속에서 위에서 말한 ‘장기구금양심수’는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1989년 양심수후원회는 이들을 처음으로 규정하고 석방운동과 후원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영치금을 보내고 면회도 가고 편지도 보냈다. 자매결연을 맺고 세상에 이 분들의 존재도 널이 알렸다. 나라 안팎에서 인권·종교 단체들이 잇달아. 뒤따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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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양심수후원회가 발족 당시 260여명이었던 장기구금양심수는 1999년 말까지 모두 석방되게 되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2000녀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낙성대 ‘만남의 집’에는 올해 84살의 정순택 노인과 80살의 문상봉 노인, 71살의 김영식 노인 등 세분이 함께 살고 계신다. 정순택 노인은 1차 송환 때 신청했었지만 전향했다는 이유로 정순덕 노인과 함께 제외 당했었다.

본인의지와 관계없이 강제전향 시킨 것을 빌미로 제외시킨 것이다. 물론 정순택 노인은 한겨레 신문 등에 ‘전향취소’광고를 송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내 바 있다. 2001년 2월 5일 1차 송환에서 빠진 정순택, 정순덕 노인 등 33명이 모여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라며 북녘 고향으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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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었다. 사상·양심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 때문에 사회안전법도 사상전향제도 자체가 이미 폐기되었다. 본인의지에 반하여 잔혹한 고문 등으로 전향을 강제한 것은 원천무효였다. 그래서 인권ㆍ종교 단체들은 전향장기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2차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대부분은 89살된 고선화 노인을 비롯하여 70살이 넘는 노약자이고 병약자들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세분이 평생의 염원을 미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올해 4월 1일 마지막 여성 빨치산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낙성대 ‘만남의 집’에 계셨던 정순덕 노인이 치열하게 살아온 한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한 해를 또 넘겨야 하는 낙성대 ‘만남의 집’ 노인들은 점점 얼굴 주름도 깊어갈 것이다. 이 세분 노인을 비롯한 28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하루 빨리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길 빌어본다.

이 글을 쓴 권오헌씨는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양심수후원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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