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의 작품들은 리얼리즘의 전통이 강한 우리 문학사에서 주류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관념적인 이상을 갈망하며, 현실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몸부림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자신의 실체를 느끼며 결국에는 자신을 찾는 여행으로서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환상과 조우한다.

이런 특징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전체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세상을 존재로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윤후명의 작품들도 분명히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초기와 후기의 작품들의 성격도 약간씩 다르다.

 윤후명 문학의 몇 가지 특징  

윤후명의 소설에는 스토리 라인이 없다.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소설의 이야기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이야기보다는 기억과 회상의 더듬음을 통해 작가가 목적하는 곳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에게는 스토리 너머에 있는 것이 훨씬 소중한 것이다. 이것 자체가 소설의 완성도에 문제를 준다고는 보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윤후명 소설의 소설적 성취를 떠나서, 우리 문학에는 이런 식의 새로운 기법과 구조에 대한 보다 활발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윤후명의 이런 기법들을 긍정한다.

<돈황의 사랑>이라는 꽤 긴 이 중편 소설은 어제 저녁에서 오늘 저녁까지의 이틀 동안의 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기억과 회상 속에서 이루어지며, 현실은 종종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하나의 회상이 있으면 그 회상 중에 또 다른 회상을 하기도 하고 거기서 다시 의미를 찾고 다른 기억으로 넘어 갔다가 현실로 되돌아오는 식이다. 작가는 이런 형식을 통해서 무엇을 획득하고자 한 것일까?

이에 윤후명은 이렇게 말한다. "소설에서는 삶의 과정이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야기만을 추적하는 간단한 소설 구조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는 삶의 과정이 묘사되는 소설이란, 그리고 간단한 소설 구조에 대한 거부는 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한 사건으로 끝남으로서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라, 보다 넓게 펼쳐 보이고 보다 넓게 그려냄으로서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그 무언가를 들추어내고 파악해보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다. 

 윤후명 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환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현실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서술자는 사유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그러면서 결말에는 현실과 환상이 시적으로 접합이 되면서 자신을 확인하고 자신의 이상과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작가의 자기 존재 확인, 그리고 현실 탈피에 대한 소망에 근원을 두고 있다. 윤후명 소설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모두 소시민적인 인물들이고 일상 속에서 상처(하지만 주인공들의 상처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그래서 떠나지 않고서는 어쩔 수 없을 만큼의 아픔을 동반하고 있지는 않다)를 가지고 떠나고자 한다(완전히 떠나지는 못한다).

 그리고 윤후명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과 각자의 목소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인칭 주인공 화자를 중심으로 한 작가의 목소리를 위해서 존재하며, 때로는 서로 다른 두 등장인물들이 모두 작가의 목소리를 내면서 궁극에서 만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떠나고자 하는 여자는 내가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의미가 더 크며,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에 등장하는 남.여주인공은 서로를 확인하면서 의미를 던져주고 한계를 확인하지만 그것 모두가 작가의 모습으로 귀결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초기와 후기 작품들 사이의 차이점과 과도기적 작품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모색방향
-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를 중심으로

 초기 작품들과 후기 작품들 사이의 큰 차이점 중에 하나로 '이상의 현실화와 현실의 이상화'를 꼽을 수 있다. 말만을 살펴보아도 현실의 이상화는 이상의 현실화에 비해 훨씬 현실과 이상의 성취에 대해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둘 사이에서 과도기적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를 가지고 작가의 이런 변화가 어디에 문제 의식을 두고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를 분석해보자면,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작가의 과거 작품 경향과 세상에 대한 관심에 대해 작가 스스로 비판적인 양상을 가지며, 그런 은유들 위에 갈수록 개인주의화되어 가는 현대산업사회의 모습들에 대한 문제의식도 더불어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에서는 몇 가지 변화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작가의 세계이자 개인주의적 산업사회의 분산물적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폐쇄 병동에서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이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과 그리움을 함께 느끼고 숨쉬고 싶었다. 시대를 이야기하고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두 번째는 거대 담론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질타이다. "나는 분단에 대해, 통일에 대해 어떤 주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확고한 내 견해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분명히 윤후명은 현실을 떠나서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공허하게 잡으려고 했던 이상 추구에 문제의식을 가지며 작품 속에서 자신에게 반문하며 작가 자신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나는 마치 산 채로 회를 떠 살이 다 발라내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생선 꼴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윤후명이 찾은 새로운 지향점은 무엇일까? 그는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무를...하늘에 살아 있는 나무를 그리시오." 여자의 새 그림, 비행기에 대한 과대망상, 샤갈의 날아다니는 대상들로 자신의 기존의 문학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것을 긍정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그것은 이상과 환상 속에 있지만 현실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새로운 방향이다. 이것이 현실의 이상화에서 이상의 현실화로의 방향의 변화와 관계되어진다. 

 약간 어긋난 것이지만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에 드러나는 독특한 윤후명 문학의 특징 하나를 살펴보자.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의 남.여주인공들은 모두 개인주의적인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인물들로 등장하지만 모두 작가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남자주인공은 현실의 부재에 대해서 말하고, 여자주인공은 환상과 공허한 이상의 넘쳐남에 대해서 말한다.

작가의 두 모습을 대변하는 두 인물은 만나면서 남자는 여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점을 제시한다. 하지만 퇴원한 여자의 전시회에 초대받은 남자는 그녀의 그림들이 모두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임을 알고 절망한다. 이 절망은 약간씩 미쳐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절망임과 동시에 기존의 문제들을 그냥 안고 갈 수도 있는 작가의 미래에 대한 자각적인 경종인 거 같다.

 현실과 문학, 현실의 표현으로서의 환상과 현실의 도피로서의 환상 

 문학이란 무엇일까? 모든 근원적인 문제들이 그 해답이 없고, 어쩌면 그 해답이 없는 것이 해답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문학에 대한 이런 질문에도 해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이상적인 문학의 모습에 대한 어떤 그림을 가지고 그것을 주장할 수 있다. 문학도 예술인지라 개인의 기호라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런 주관의 한계를 넘어야 하는 것도 늘 가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윤후명 문학의 한계는 그 토대가 공허할 수도 있는 막연한 이상과 현실의 아픔들과는 너무나 유리되어 있는 작가의 관심에 있다. <돈황의 사랑>과 <누란의 사랑>에서 주인공은 계속 떠나려한다. 그리고 그 떠남의 근원에는 슬픔과 상처가 깔려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그 떠남이 과연 얼마만큼 절실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또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결국 떠나지 못하며, 여행은 결국 머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후에 이 부분은 극복되기는 하지만), 그러므로 작품 전체가 공중으로 붕 뜬 듯한 느낌을 주며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문학에서 환상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현실에 대해 철저한 연구와 고뇌를 바탕으로 현실을 환상으로 승화시키거나 아니면 현실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담으려고 하는 현실의 표현으로서의 환상과, 현실과 세상의 문제에 대해, 세상과 맞설 자신감과 용기가 없음에서 결과되어지는 환상 속으로 도피이다. 윤후명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들이 거슬러 올라가 자신을 찾으려는,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자아를 탐구하려는 노력들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은 현실로부터 탈출(탈출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하고자 하는 선을 멋지게 넘지 못한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새와 날음과 떠남의 이미지들은 그것이 주인공들과 일체되지 못하고 동경의 대상으로서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손정호씨는 문과대 철학과(3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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