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르르’ 그윽한 풀벌레 소리가 가득히 허공을 메우고,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자연 생태계의 한가운데에 ‘헤이리 마을’이라는 문화예술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의 도시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하나되는 친환경적인 장소에서 미술, 조각, 음악등의 종합예술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은, 276여명의 예술인들이 직접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해나가는 헤이리 마을이다. 

이곳을 찾아오다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쭉 늘어선 철조망이다. 냉전과 긴장의 상징인 휴전선을 눈앞에 둔 경기도 파주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방송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평화의 중심지로 조명되기 시작되었고 첫 시도로 헤이리 마을이 생겼다. 

헤이리 마을은 단순히 휴전선 앞에 지어진 예술마을 이라는 점에서만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서부접경지역을 평화특구로 만들겠다는 예술인들에게 의지의 지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다. 가족들과 즐거운 모습으로 헤이리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지역이 더 이상 통제와 단절의 공간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숲과 아름다운 건축물, 풀과 꽃으로 가득한 이곳은 더 이상 분단으로 고통받는 불모지가 아니다.

난개발로 얼룩지고 문화가 없는 공간, 서울의 기형적인 문화구조는 문화를 위한 ‘대안장소’를 필요케 한다. 대안문화공간을 위해 많은 예술인과 문화인이 뜻을 같이 해서 만든 헤이리 마을은 진정한 공동체와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삶을 지향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자연생태늪을 그대로 보존하고 지형을 살려 구불구불하게 만든 길은 다른 어떠한 도시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이 가진 매력이다.

새로운 도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이곳 거주 예술인들은 몇 가지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헤이리 마을에서는 모든 건축물들이 담장과 대문을 만들 수 없다. 또 건물은 3층이상 지을 수 없으며 건물에 페인트칠을 해서 인공적인 색깔을 띠게 하는 것도 금지된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서울의 도심처럼 높다란 건물 대신 낮지만 소박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간간히 색깔을 띤 건물들도 볼 수 있는데 이는 겉에만 특정 색의 페인트칠을 하는 게 아니라 시멘트를 갤 때 염료를 넣어 건물 안에서도 그 색이 보이게 하는 원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헤이리 마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철저한 회원제로 이루어져 문화인과 문화 비즈니스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낄 수 있듯이, 평화와 화합을 내세우면서 ‘그들만의 장소’를 만들어 또 다른 차별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실제로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이에 대해 헤이리 마을의 한 관계자는 “정해진 부지에 더 많은 회원을 받으면 공간이 부족하게 되고 이것도 하나의 문화정보에 대한 취사선택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며 “매번 페스티벌을 통해 헤이리 마을을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할 것이고 몇 개의 장소들은 언제나 문을 열어둘 것”이라는 말로 입장을 표명했다.

헤이리 마을은 현업 예술가들의 창작의 터라는 점에서 서울의 인사동이나 기타 문화명소와 차별화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바르비종’이나 브르타뉴의 ‘퐁타방’ 같은 장소가 더 이상 창작의 무대가 아닌 옛 대가들의 추억을 파는 관광명소로 바뀌었듯이 헤이리 마을도 문화 상업적인 공간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헤이리 마을은 완공된 마을이 아니다. 표면상으로 아직 다 지어지지 않는 건물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공간으로 평가받기 위해 아직 더 노력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헤이리의 새로운 시도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 앞으로 만들어질 대안 공간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