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이호재, 전무송.

세사람의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안두희 이야기라면….

‘천년의 수인(囚人)’은 충분히 화제가 될만한 요소들이 담겨 있고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구미가 당길만한 작품이다.

대통령취임후 사면복권된 사람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중 한 사람이
바로 안두희씨 저격범일 것이다. 세인들은 예상했다는듯이 다시금 김구의 저격
범인 안두희씨를 화제에 올렸고 언론에서도 들썩들썩 했다.

이렇게 안두희라는 이름만 올라도 모두가 관심을 갖는 사안인데 아직 이렇다할
역사적 규명도 내려지지 않은 당대의 사건을 다루는 ‘천년의 수인’.

작품 ‘천년의 수인’은 연극 만들기의 귀재, 요변장이, 신들린 놈, 미치광이
등등, 수많은 수식어를 차치하고라도 한국 제일의 극작가이며 한국연극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는 연출가 오태석씨에 의해 연출되어 더욱 흥미롭다.

“안두희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어둠속에서 헤매었던
그 기간이 우리 한반도가 속앓이를 해왔던 현대사 50년사와 같고 그것이 너무
길어서 답답한 겁니다.

그 안두희가 문제가 아니고 그의 50년이 그렇게 쫓기고 남한테 손가락질을 받고
제대로 기도 못펴고 살아온 우리들 전체 50년과 별 차이가 있겠는가 되물었던
겁니다.”

그가 ‘천년의 수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안두희씨에 대한 그의 평가
에서부터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1949년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을 살해한 후 50년 세월동안 민족의 역적이 되어
온갖 모멸을 받으며 살아온 노(老)테러리스트 안두희, 1980년 광주 진압군의
일원으로 사격명령에 따라 총을 쏘았고 그 총에 죽은 여학생의 유족회 사람
들로부터 살인범으로 몰린 청년,

1952년 지리산 피아골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잡혀 지금까지 복역중인 비전향
무기수, 이 세사람이 한 병실에서 만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세명의 인물은 각각 한국 현대사의 환부를 상징하는 인물로 안두희는 자유민주
주의의 씨앗을 짓밟은 자로, 빨치산이던 장기수는 분단의 고통을, 병사는 80년
5월 광주학살의 군부통치를 나타낸다. 오태석은 이 세명의 환자를 병실이라는
한 공간안에 충돌시켜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고 있다.

이들 셋은 한결같이 제 민족에게 총을 겨눈 가해자임에도 작품에서는 안두희와
병사들의 고통을 부각시키고 이들 가족들의 비애를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냄
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을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피해자의 편에
서는 정당한 방법대신 관객들을 향해 그들이 진정 가해자인가를 의심케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기에 누구의 오판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생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 사람의 삶은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으며 누구에게
원망을 해야 하는지, 역사라는 테두리안에서 얼마나 한 개인의 일생과 운명이
짓밟혔는지 연극은 끊임없이 관객들을 추궁한다.

안두희, 광주학살의 병사, 비전향 장기복역수, 이들은 모두 갇힌 자이다.

어떤 이는 감옥속에서, 어떤 이는 세상 속에 갇혀 있었다. 사람을 죽인 역사의
죄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감옥 바깥에 살았던 우리는 이들의 삶과 얼
마나 다른가.

이 연극은 묻고 있다. 역사에 대한 고정된 틀 속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고 방기
한 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가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일시:오는 6월 14일까지, 장소: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문의:741-3391) <김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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