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이제 자멸만을 기다리는 빙하시대의 거대 공룡인가.

-대학은 이제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미로로 뒤덮인 복마전인가.

-대학은 이제 자기비판을 망각한 지식 기능공들을 양산해 내는 복제기 인가.

어김없이 '잔인한'4월이 다시 돌아왔다. 대학의 '위기'나 '개혁'에 대한 논의는 이미 너무 진부하고 일상적인 화두가 되어버려 위기나 개혁에 대한 담론은 이제 새로운 문제들로서의 신선한 약효를 상실해가고 있다. 더욱이 '위기'나 개혁에 대한 불감증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냉소주의이다.

그러나 이제는 위기를 진정한 위기로 느끼고 개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대학 구성원들의 대각성과 미래에 대한 전망 그리고 그에 따른 개혁과 실천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대학은 전환기적 위기상황에서 경계를 넘어 간극을 메우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대학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사립학교법의 개악으로 일부 대학 운영의 민주화와 합리화의 길은 거꾸로 가고있고 뜻하지 않은 IMF 경제위기로 인해 대학의 재정은 위험수위로 들어갔다. 기존의 학문체계와 그 연구 및 교육방법론은 이미 현실분석과 대안 논리 개발에 실패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이 자기폐쇄회로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인식론적 돌파구는 이미 언제나 우리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반성에서 나오기에 대학의 폐해와 한계를 광정하기 위해 무의식속에 내장된 우리 자신들의 추문을 들추어 내야한다.

-지식인은 현실이라는 시장바닥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지성인은 담장에 걸터앉아 양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학인은 학문을 신비화시키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현실을 부둥켜안고 뒹굴다가 다시 일어서야 한다.

대학은 상아탑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순진무구의 시대였던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이제 대학은 조용한 수도원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은 치열한 새로운 지식과 이론의 생산공장이며 현실 사회를 위한 지식의 교환과 이론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시장이어야 한다. 물론 대학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학문영역의 지나친 상업화, 세속화, 정치화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세속성, 일상성, 잡종성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중심의 경제 패권주의와 지배체제의 하나인 IMF 경제신탁 통치 사태를 맞고 있다. 다국적 자본과 문화적 제국주의는 더욱더 교활해져서 우리 주변의 일상적 삶과 무의식까지도 식민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지식인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본과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과 격리된 상황에서 지식과 이론을 생산 내는 것이 가능할까. 진정한 변화와 개혁을 위한 효력있는 대안제시와 실천방안이 나올 것인가. 우리를 끊임없이 잠재우고 달콤한 꿈을 꾸게하는 마취제는 다름아닌 학문의 지나친전문화, 분업화라는 담장지기와 칸막이 만들기이다.

-대학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나 전수가 그 목적이 아니다. 교육은 저항적, 개입적인 인식론을 수립하고 전복적인 실천론을 수행해야 한다.

-대학교육은 쇄신의 힘이고 변혁의 행위이다. 우리가 주체적인 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남의 지식과 이론을 재생산하여 소비한다면 우리는 매판 지식인이 될 것이다.

-대학 교육은 역사와 현실과 유리된 학술논문 제조기나 문명에 대한 비전이 없는 무비판적인 지식기능공을 양산해서는 안된다.

학문이 단순한 지식의 축적과 기존이론의 확대재생산이라면 그것은 지적 자위행위이며 윤리적 근친상간 행위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학문에서 그 비판적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거대한 지식의 체계에서 벗어나 우리는 자본과 제국주의의 전지구적 중층적 모순구조 속에서 미국식 기능주의와 전문주의의 함정에 빠져 비판적 상상력을 분실해서는 안된다.

현재 한국 대학은 서구이론의 식민지이다. 더욱이 대학은 대항하고 싸워야할 점이 교묘하게 숨겨진 무저항과 무장해제의 지대이다. 이론 자체도 모두 서구인 자신들의 역사와 현실의 마당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이론이 전지구적인 보편성을 띤 것으로 간주하여 세계유일의 분단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 자신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없이 대입하고 재단하려는 탈역사적인 식민지 지식인들이다.

우리는 이제 서구지배 담론을 주체화해야 한다. 서구 이론에 대해 단순한 저항과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화이부동( 和而不同)의 정신으로 서구의 억압적인 지배담론을 전용, 혁파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탈식민주의적 주체성의 정치적 무의식을 활성화시켜 제3세계담론, 동아시아 담론, 한반도 분단체제론을 개입시켜 서구 중심 담론을 새로운 변형된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과 상황을 거머쥘 수 있는 비판적인 유기적 지식인(학제적 전문가)을 키우기 위해서 학문체계의 재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마뱀이 살아남기 위해 꼬리를 자르듯이 우리는 자기갱신을 통해 새로운 생존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오래된 지식이나 이념을 폐기처분하고 '지금여기'와 (가까운) 미래를 위한 대안 이론을 창출해야 한다.

대학은 지식과 이론의 생산공장이다. 오늘날 대학의 위기는 새로운 대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응전 논리를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새로운 도전에 응전하기 위해서 학문체계의 전면적 개편은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우리는 학문 계열의 통폐합과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학문분야를 갱신시키지 않고 고수하고자 하면 결국 그것마저도 잃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서지 않고 서로 다른 학문영역간에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대화한다면 학문간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 가능한 좋은 방책을 얻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과 중심이 아닌 프로그램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면 단과대학간 또는 학과간에 공동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지식인들의 일부는 제도권의 정규군이 아니라 교활한 현실의 맥을 잡고 진단할 수 있는 민첩하고 유연성이 있는 문화게릴라가 되어야 한다.

-대학사회가 임용비리나 파벌의 만연을 막기 위하여 그 구성원들은 총체적인 자기비판과 자정운동을 벌여야 한다.

-대학은 궁극적으로 강력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른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미래학을 정립해야 한다.

급변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대학이 그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대학을 폭파하자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차라리 폐허더미 위에서 우리 다시 일어서자. 해체나 폭파는 물론 재구성을 전제로 해야한다. 개혁은 과연 혁명보다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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