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11월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에서는 두가지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나는 11월 10일부터 6일간 진ㅎㅇ된 컁틱첸팍쩽贄濚适杉潤?APPA)是見? 다른한나는 11월 14일 각료회담으로 시작하여 14일부터 16일까지 기업인회의를 거쳐, 17일과 18일로 이어지는 컁틱첸팍쩽贄怜姸┎苾쩠셉?APEC)정상회담是?그 것이다.
아펙(APEC) 정상회담은 무역과 투자자유화를ㄹ 위한 경제적 지역협력체로, 이 지역에서
2010년, 개발도상국은 2020년까지 자유무역의 시행을 목표로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민중
정상회담은 컥愍?タぐ?자유시장媤맛?강조하는 경제지도자들의 모임인 아펙에 반대하며 노
동자, 환경, 인권, 여성, 원주민, 농민, 빈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구화가 민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폭로하고 감시하며 민중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민중들의 정상회담인 셈이다.
이번 민중대회에는 아시아-테평양지역 25개국에서 7백여명의 활동가들과 비정부기구 대표
들, 그리고 관련 분야의 교수, 학자들이 참여하였고, 한국에서도 민주노총, 전농, 민변, 참여
연대,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한노정연 등의 단체에서 약 15명의 참가자들이 노동, 민영화와
탈규제, 금융탈규제, 인권 등의 다양한 포럼에 결합하였다.
10일 개막식에 이어 11, 12일 양일에 걸쳐 콸라룸푸르 시내에서 약 10여개의 포럼이 동시
에 진행되었다. 노동, 인권, 민영화와 금융탈규제, 원주민, 환경, 여성, 식량안보와 농업, 이주
노동자, 교육, 미-일의 군국화 등의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각 포럼은 주제발제, 분야별 발제를 하고, 세분화된 워크샵으로 나뉘어 토론시간을 갖고,
공동의 행동지침을 논의한 후 행동결의를 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양일간의 토론을 마친
후에는 13, 14일 전체회의를 통해 각 포럼의 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대해 전체토론을 거
쳐 민중회담의 전체 결의문을 내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캣恝된??금융의 탈규제施?관한 포럼에서는 보건의료, 교육부문의 민영화와 초국적 금융
자본에 대한 대안모색, 민영화와 금융의 탈규제 시대에 시민사회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발
제와 토론이 이루어졌고, 참석자들은 보건의료, 교육,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고, 나아가서 지
배, 통제하려는 국제적 자본의 어떠한 시도에도 저항할 것임을 결의하였다.
둘짼날 있었던 금융규제, 시민사회와 국가의 역할, IMF 지배와 민중들의 대응에 대한 토론
은 주체 자체의 무거움으로 워크샵 토론을 통해 사실상 공동의 의견을 모야내기는 많은 어
려움이 있었으며 IMF와 민중들의 대응부분에서는 한국, 멕시코, 태국의 사례가 발표되었다.
도시빈민 포럼의 경우 50명의 참가자들이 무담점거 지역인 추바닥 마을을 방문하였다가 이
를 저지하며 참석자 명단을 빼앗으려고 하는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92년에 투옥된 동티모르의 지도자인 크사나 구스마오의 석방 캠페인을 벌이기
도 했다.
총회 둘째날인 14일 현재, 각 포럼의 결의문을 모아 아펙에 대항하는 민중회의 결의문 초
안을 토론하였으며,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오전 11시 아펙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콸라품푸르
KLCC(Kuala Lumpur Cultural Center)빌딩 앞에서 컨仄맬??반대하여 민중권리를 되찾자?
는 주제 이래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집회를 가졌다.
콸라룸푸르에서도 이와같은 실상을 직접적으로 접할 기회나 다양한 행동프로그램들이 부족
하고, 민중들의 실상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최국의 상황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번 민중대회는 교수, 학자, 정부 관련 인사 등으로
참여영역이 확대되고 각 부문에서 전문적인 의견과 경험들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이었음에는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저항의 힘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것은 말레이시아의 진보진영이
독재에 맞선 캣适鹿와 캅냘鰍투쟁이 아직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데서 오는 한계때문일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