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명동성당. 쌀쌀한 날씨를 헤치고 정오쯤에 찾아간 명동성당앞 계단길에는 불과 대여섯채의 농성텐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에 진을 치고 있는 텐트는 한총련을 비롯하여 만도기계노동조합, 한국조폐공사노동조합 등 5개 단체. 예상대로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그곳은 묘한 적막과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요?" 한총련 농성단장에게 이곳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어보았더니 아주 정색을 하며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날씨가 추워질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고 투쟁의 열기가 겨울과 함께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입니다."라며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한다.

이곳의 텐트들은 현재 성당과 신자들로부터 철거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미 성당측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라도 철거하겠다고 공고를 받은 상태고 전기마저 끊긴지 오래다.
만도기계의 한 아저씨는 그 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성당측에서도, 주변가게에서도 우리한테 전기를 대주었어. 그런데 성당측에서 우리를 껄끄럽게 본 이후로 전기를 대주면 우리를 인정하는 거라면서 전기를 끊어버리더라구. 그 후에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 주변가게들도 못 주겠대."

한총련 농성단장은 "강제철거를 하려고 하면 우리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힘없고 약한 이의 권익을 보호해 주는 곳이 성당 아닙니까"라며 분노를 터뜨린다. 또한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인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와보니 영 '아니'라고 말한다.

텐트에 난로가 있으면 다행, 없어도 할 수 없고 하루 2끼 식사에 몇 개의 랜턴만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지만 아직 도중 하차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이들의 결속력은 강하다. 그러나 이들을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신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명동성당은 그 이름값이라도 하듯이 사회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신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이 양분됨을 느낀다면서 그들은 자본의 권력성을 다시 한번 통감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서 조차 그 피해가 자기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그들을 보며 한없이 슬퍼짐을 느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은 하루일과를 성당 화장실 청소로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성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며 더욱이 쓰는 건물이라고는 화장실밖에 없다는 그들. 그런 이들에게 있어 누구의 소유도 아닌, 그래서 세금조차 내지 않는 성당이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아닌지, 올해는 농성단에게 삭막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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